김삿갓면, 김정숙군을 아십니까?
국민 MC 송해(본명 송복희) 옹이 지난 10일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95세로 타계하기까지 34년 동안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고인은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신바람과 애환을 남겨준 ‘딴따라’이자 ‘일요일의 남자’였습니다.
왜 대구일까? 황해도 재령이 고향인 고인이 남한에 오자마자 통신병으로 근무한 곳이 대구이고, 그곳에서 결혼까지 해 처가와 연(緣)이 닿은 곳입니다.
고인은 송해공원과 함께 영원히 이곳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송해 옹은 살아생전에 ‘송해길’(서울 종로) ‘송해공원’ 등 이름을 새긴 족적을 남겼으니 저승에서도 “천국~노래자랑”을 목청껏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적폐청산’ ‘역사소환’이라는 명분으로 이미 있던 지명까지 파내는 현실을 직시해온 터라, 국민들은 편견 없이 고인의 소박하고 정감이 넘쳤던 생전 모습들을 더욱 생생하게 되새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 이름이 새겨져 있는 곳이나 대상은 많습니다. 동네 이름, 도로명, 학교·회사 이름, 공항·항모, 법률, 상(賞), 동상, 화폐, 동식물 학명(學名), 당사자의 업적에다 병명(病名)에까지 등장합니다.
이름을 새긴 명소나 명물로 동양에는 충효와 학문적 업적을 세운 이들이 많고, 서양에는 국가 위상을 높인 지도자, 과학 분야 연구개발 성과가 뛰어난 선구자, 항로 개발과 식민지 개척 탐험가들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 인촌로, 레닌그라드···지명에도 정치 입김
서울 용산의 청파동(靑坡洞)은 세종 때 청백리 기건(奇虔 ?~1460)의 아호 ‘청파’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강동구 둔촌동(遁村洞)은 고려말 공민왕이 개혁 명분으로 측근에 둔 요승(妖僧) 신돈의 전횡을 논박하다 수배를 받고 피신하던 이집(李集 1327~1387, 아호 둔촌)이 숨어들었던 곳입니다.
길 이름으로는 서울 남산 주변의 소월로(素月路; 시인 김정식金廷湜 아호 ), 서울 종로와 파주·강릉에 있는 율곡로(栗谷路; 이이李珥 아호), 서울 성북구와 전북 고창의 인촌로(仁村路; 김성수金性洙 아호), 수원의 박지성로, 천안의 이봉주로 등이 있으나 서울의 인촌로는 그가 친일파라 하여 길 이름이 ’고려대로‘로 바뀌었습니다. 광주광역시 용봉동엔 탈북민으로 대형 냉면집을 낸 전철우사거리가 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의 동지 이름을 딴 김책시(성진시) 김형직군(후창군) 김형관군(풍산군)과 부인 이름이 든 김정숙군(신파군)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외국의 도로명으로는 코페르니쿠스거리(폴란드) 레닌그라드(러시아, 레닌 사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개명) 마리퀴리거리(프랑스)가 눈에 띕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특성을 살려 내방객을 끌기 위해 특정인의 이름을 차용한 지명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영월군은 2009년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바꿨습니다. ’방랑 시인‘으로 더 잘 알려진 김병연(金炳淵)의 은거지라는 사실을 근거로 그의 별호 김삿갓(金笠김립)을 지명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가 운명하기 전에 살았던 전남 장성·화순 등지에서 김삿갓 묘소, 김삿갓문학동산을 조성해 홍보하는 데 대한 반작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월군은 이어 동강 곡류(曲流) 지점이 한반도를 닮은 서면을 ’한반도면’(2009년), 무릉(武陵) 도원(桃源)리가 있는 수주면을 ‘무릉도원면’(2016년)으로 개칭했습니다.
# 노벨, ‘죽음의 상인’에서 노벨상으로 환생
세계 각국의 공항 이름은 정치인 화가 배우 가수 탐험가 종교지도자 과학자 이름을 고루 따왔습니다. JFK(케네디, 미국) 드골(프랑스) 벤 구리온(이스라엘) 수카르노(인도네시아) 칭기즈칸(몽골)공항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탈리아) 존 웨인(미국) 존 레논(영국) 호메이니(이란) 테슬라(세르비아)공항 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가덕도 신공항 명칭을 문재인공항이나 노무현공항으로 하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버거씨병 파킨슨병 루게릭병은 의사와 환자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레이건과 조지 부시(아버지)는 항공모함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광운대 상명대 스텐퍼드대나 종근당제약은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가장 극적으로 불후의 이름을 남긴 사람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1833~1896)입니다.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박사 사망. 가장 빠른 방법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 떼돈을 번 인물, 어제 사망하다.” 1895년 파리에서 한 신문이 낸 자신의 사망 기사를 읽은 노벨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기사는 형 루드비히의 사망을 잘못 보도한 오보였지만, 자신을 ‘죽음의 상인’으로 치부한 사실에 엄청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세상에 기억될 것인가?” 살아있는 노벨의 부고 기사는 그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참된 삶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된 노벨은 그 자리에서 유언장을 썼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로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 분야에 공헌한 사람에게 해마다 상을 주라고. 노벨은 그로부터 1년 뒤 사망했습니다. 그의 유언대로 유산을 기부받은 스웨덴 과학아카데미는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상인이 평화의 사도로 환골탈태했습니다.
권력과 재산과 영예를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가질 수는 있어도 영원히 누릴 수는 없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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