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정윤희 이제는 환갑이 넘었네요~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 왕년의 아시아 최고 핫걸
정윤희가 수수한 동네 아줌마로 변하다니.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지난 2011년 미국 유학생이던 막내 아들이
약물사고로 돌연사한 아픔 때문일까?
조규영 회장과 정윤희 부부의 결혼식 모습
정윤희는 조 회장과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지만
40대 초반 무렵까지는 방송이며 연예계 행사 등에
간간히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후부터 지금껏 연예계와는 발걸음을 끊은 상태.
어쨌건 마지막 연예계 활동이었던 40대 초반까지도
한창 때의 미모를 잃지 않았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은퇴 후 30대 후반 무렵의 정윤희
아래는 30대 후반 무렵 한국 배우협회가 주관한
‘영화인의 날’ 행사에 초청받았을 때 모습
40대 때의 정윤희
40살 무렵 여성지 인터뷰 사진(위)과
은퇴 후 드물게 CF에 출연(아래).
이 광고를 끝으로 정윤희는 전업주부로 살면서
불우이웃을 돕는 등 사회봉사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아줌마로 변해버린 정윤희에게서는
세월을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받아들인 여인에게만 있는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정윤희의 이런 모습은 요즘 세태에서는 분명 보기 드문 아름다움이다.
뼈를 깎고 생살을 잘라내어 인위적으로 미모을 만들고
의술을 빌려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여인들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
2012년 카메라에 포착된 정윤희
혹자들은 정윤희를 김태희나 수애와 비견한다.
하지만 정윤희를 그들과 단순 비교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이들에게는 없는 아우라가 정윤희에게는 있다.
우리 아버지들과 삼촌들이 정윤희를 떠올릴 때면
아릿하고 먹먹해지는 것은 그녀와 함께 했던
빛바랜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윤희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1954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1974년 해태 전속모델로 데뷔해
이듬해 주연으로 첫 영화를 찍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유지인, 장미희과 트로이카 전성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두 여배우에게 정윤희는 넘사벽같은 존재
정윤희(가운데) 데뷔 무렵. 왼쪽은 유지인, 오른쪽은 훗날 신격호 롯데회장의 부인이 된 서미경
얼굴 되는 배우가 연기는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정윤희는 달랐다.
색녀부터 백치역까지, 정윤희 만의 연기가 관객을 홀렸다
그래서일까?
정윤희는 1980년~81년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2년 연속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1981년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정윤희와 3편의 영화를 만든 임권택 감독은 “유일하게 정윤희 만이
어느 각도에서도 완벽한 여배우”라고 극찬했다고 하고
당시 일본의 한 유명 영화감독은 “일본 최고의 여배우 3명을 합쳐도
정윤희의 매력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던가.
첫댓글 세월 가면 젊음도 가고 ~ 인생 무상 ~
누가 막겠습니까,,,,,세월의 흐름을,,,,,
자연미인이죠.....
마니 변했네요그당시 최고의 미인이였습니다옆에 같은 배우들이랑 여러번 함께 봤었는데 단연 돋보였습니다..
닥수궁돌딤길에서 만났는데 얼굴이 작으면서 아름다웠던 기억이 나는 저녁입니다.
첫댓글 세월 가면 젊음도 가고 ~ 인생 무상 ~
누가 막겠습니까,,,,,
세월의 흐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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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 변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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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같은 배우들이랑 여러번 함께 봤었는데 단연 돋보였습니다..
닥수궁돌딤길에서 만났는데 얼굴이 작으면서 아름다웠던 기억이 나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