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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1935년 12월 19일, 평양신학교의 학생 부흥회에서 주기철 목사님께서 ‘일사각오(一死覺悟)’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일사각오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말합니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에게까지 큰 감동을 주었는데. 그 설교의 원고는 일본 경찰에 압수당하여 분실되었으나 훗날에 그 자리에서 설교를 들었던 김린서 목사님께서 줄거리를 살려 가필한 내용이 남아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예수를 따라서 일사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를 버리고 사느냐? 예수를 따라 죽느냐? 예수를 버리고 사는 길은 정말 죽는 길이요, 예수를 따라 죽는 길은 정말 사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 가장 솔직하였던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자”고 일사 각오를 하였습니다.
둘째는 남을 위하여 일사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자신을 위하여 사신 것은 하나도 없었고 순전히 남을 위해 사셨던 일생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신 자체가 남을 위한 것이었고 십자가에 죽으심 또한 죄인을 위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예수를 믿는 자들의 행위도 역시 남을 위한 희생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을 희생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지만 기독교는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구원하는 신앙입니다.
셋째는 부활 진리를 위하여 일사 각오해야 합니다.
부활의 복음이 우리들에게 이르기까지 피로써 전하여 왔습니다. 로마제국의 잔혹한 박해 아래 50만 성도가 피를 흘렸고. 로마 교황의 핍박 아래 100만 성도가 피를 뿌렸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피로써 쓰였고 피로써 전하여졌습니다. 피로써 전하여진 부활의 복음을 우리 또한 피로써 지키고 전하여야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여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내 평안과 내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내가 준 그 고난의 잔을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하여 져야할 이 십자가, 주님이 주신 이 십자가를 내가 피하였다가. 주님이 이 다음에 "너는 내가 준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내가 어떻게 주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겠습니까. 오직 나에게는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주기철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한 그의 신앙대로 신사참배를 거절하다가 다섯 번의 옥고와 온 몸이 망가지고 찢어지는 고문을 받고 일사각오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선택이요, 결단입니다. 예수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세상을 선택하느냐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증인으로 사느냐,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사느냐의 결단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한국 교회에 앞서 간 선배 주기철 목사의 신앙을 이으며 스데반집사의 결단을 본받아 일사 각오(一死覺悟)의 신앙을 다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일사각오의 위대한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면서 에베소 교회에 남긴 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도바울의 일사 각오의 신앙 고백을 함께 나누면서 은혜받는 시간되실 축원합니다.
첫째, 복음 전파하기 위해 일사각오 해야 합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피는 히브리적 표현으로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바울은 피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연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 에스겔3:18절을 이해할 때 자세히 알수 있습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 중에 아주 악해서 망할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런 못된 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그 피 값을 그 선지자에게서 찾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증거했습니다. 내 생명을 가지고 피를 쏟으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떳떳함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웃 가운데 시장도 함께 보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도 하고, 힘든 세상사도 나누면서 이웃 사촌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다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피 값을 여러분에게서 찾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친척, 내 형제, 내 이웃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하지 않으면 그 피 값을 바로 우리가 물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시 한 번 복음 전하는 일에 일사각오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올해도 우리 전도특공대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일사각오로 모여 전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은 직장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시장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일사각오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를 떠나는 선교팀도 일사각오로 선교를 준비하고 복음을 몰라 방황하는 세계 영혼들을 품고 섬길 수 있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우리 교회가 일사 각오로 복음의 사명을 다할 수 있길 축원합니다.
둘째,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일사 각오해야 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사도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에베소 교회에 장차 일어날 시험과 환난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영지주의자들과 거짓 선지자들로 인해 영적 혼란을 자주 겪었습니다. 그들은 교묘한 거짓말로 할 수 만 있으면 성도들도 미혹하여 실족시키려 했습니다.
이단은 영적 '암세포'라 할 수 있습니다. 암세포는 다른 조직을 가지고 있는 가짜 세포입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시작하여 결국은 생명까지 빼앗아 가는 사악한 세포입니다. 이 세포는 중앙의 통제와 신경의 지시를 받지 않고 다른 세포와 조화도 이루지 않고 독자 적으로 활동하며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 다른 세포를 파괴하여 죽입니다. 이단도 처음에는 다정하게 들어와 슬그머니 유혹하고 이간질합니다. 목사의 통제도 받지 않고 가르침도 거절하며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자기 세를 구축하고 교회를 이간시키며 연약한 양떼들을 잡아 먹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
오늘날 교회의 최고 위험이 무엇입니까? 그래도 노출된 이단의 세력은 경계가 되고 많은 성도들이 이를 대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암이 암인 줄 모르고 있다가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암이 발생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을 일으키는 주범 담배를 보면 담배는 기호 식품으로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데 한 번 맛들이면 끊기 어렵고, 어린 청소년들에겐 이것이 무슨 성인이 되는 하나의 멋으로 받아들이고 흉내 내기부터 시작하다가 결국 중독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고기와 같은 고지방 음식은 맛이 좋습니다. 결국 비만을 촉진하고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며 암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귀를 달콤하게 하고 우리의 입맛을 순간 돋구며, 영적 긴장을 풀고 우리의 사고를 느슨하게 하는 말들과 사상과 놀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스스로 세속 주의에 빠져 들어가서 오늘과 같은 '일사각오'와 같은 주제의 설교는 얼마나 우리를 부담스럽게 하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양육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닮아 살아가려는 한 사람의 영적 지도자를 만들어 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흉악한 이리는 교회에서 제자들을 끌어 내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배출되지 않도록 하려고 얼마나 경계하고 방해하는지 모릅니다. 제자까지 끌어 내리려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무너뜨리고 부흥을 가로 막으며 무력화 시키려 합니다.
우리는 이런 흉악한 원수의 세력과 계략에 말려들면 안됩니다. 과거 일제 시대 때 일본은 신사참배를 하도록 얼마나 간교한 술책과 달콤한 유혹으로 목사들과 교회지도자들과 성도들을 유혹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순간적인 안일과 편안한 삶을 보장 받기 위해 교회는 신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같은 순교자가 일사각오로 싸워 그는 죽었지만 결국 예수가 승리하고 교회가 승리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과 싸워 교회를 지켜야 됩니다. 성도들이 안일하게 신앙생활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몸에 안 좋은 초콜렛이나, 햄버거나 치즈같은 달콤한 것은 좋아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고 약이 되는 것은 싫어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교육이니 양육이니 훈련이니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래 두면 교회는 무너집니다. 암이 걸려 굳어집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서 일사각오로 교회를 지켜야 됩니다. 저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정신으로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도록 섬기기를 다하려고 합니다. 누가 무어라 하여도 이 일만은 꼭 감당하며 우리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도 2013년 한해 자신의 신앙생활에 파고드는 안일과 싸우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결단하고 또 결단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일사각오해야 합니다.
33-35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얼마나 대단한 자신감입니까? 그런데 왜 갑자가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는 일만큼 성도의 삶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영적 교훈을 한가지 얻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의 삶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생활 속에서의 삶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1907년 길선주 목사님에 의해 전개된 평양 대 부흥운동의 영향력은 가히 대단했었습니다. 당시 평양의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어쩔수 없이 주일 성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상인들이 토요일까지만 장사하고 주일에는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나라에서는 예수 믿는 성도가 고소당했을 때,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없으면 고소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이 명백한 죄인이 아닐 때에는 포승을 채우지 않고 체포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믿는 자들이 얼마나 생활에서도 본이 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주를 경외하고 온 나라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고 빛이 그 밝음을 잃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온통 세상은 캄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하나 제대로 사명 감당하지 않으므로 위기와 시험을 당한다면 주님께 얼마나 큰 죄를 범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나 하나 때문에 복음이 땅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전도의 문이 닫힐 수 있습니다. 바로 나 하나 때문에 예수의 이름이 가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의 빛과 소금 되기 위해 일사 각오합시다. 세상의 가치관은 섬김을 받고 권세를 쥐고 돈을 움켜 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그의 가치관으로 삼았던 사도 바울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사상을 붙들고 변화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 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즉 예수의 사상으로 바뀌어진 삶을 살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사 각오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제 치하 독립운동은 적어도 세자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당신은 총에 맞아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둘째, 당신은 굶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셋째, 당신은 추위에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그렇습니다. 독립군이 되기 위한 조건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부름 받은 영적 군사들이 독립군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웃과 친척과 형제들에게 '예수 믿으세요"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해서야 어떻게 주님의 부름받은 군사라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영적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워 나갑시다. 일사 각오의 신앙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켜 나갑시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합시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과 같이 생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성숙한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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