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나방의 차이
송재학
나방협회 문건의 요지는 내가 나방과 나비를 혼동한다는 것이다 나비만 너무 각광을 받았다고 비난했다 나비의 보호는 나방의 파멸을 부른 것이고 결국 인시류鱗翅類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경고장이다 나도 한때 야행성의 나방을 주목해왔다 나방과 나비 사이에 적대적인 시선 말고도 질투와 근친처럼 모자이크 처리된 말이 있다 나방은 무모하고 나비는 아름다운 걸까 하지만 나방의 단색은 내 취향이기에 그 부분만 답장을 보냈다
등불 주위를 맴도는 나방은 바로 등불의 주인, 나비에 대한 나방의 적의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은줄표범나비가 등쪽에서 날개가 수직으로 세워 합치는 매혹은 답장에 적지 않았다 의문은 있다 나방이 녹음 소리 내면서 나비였을까 돌연변이 나비의 야행성 때문에 나방이었을까 내 불온안 장자몽이 도착했을 때 분가루 떨구는 날갯 소리 들었다 나비 떼 솟아 나오기도 하고 나방 무리 한움큼 머리칼처럼 빠져나오기도 하는 나비 꿈
취산화서聚散花序*
수국 곁에 내가 있고 당신이 왔다 당신의 시선은 수국인 채 나에게 왔다 수국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잠깐 숨죽이는 흑백사진이다 당신과 나는 수국의 그늘을 입에 물었다 정지 화면 동안 수국의 꽃색은 창백하다 왜 수국이 수시로 변하는지 서로 알기에 어슬한 꽃무늬를 얻었다 한 뼘만큼 살이 닿았는데 꽃잎도 사람도 동공마다 물고기 비늘이 얼비쳤다 같은 공기 같은 물속이다
* 수국의 꽃차례는,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서 그 끝에 꽃이 핀다
― 송재학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문학과지성사/2019)
송재학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포항과 금호강 인근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198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한 이래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소월시문학상과 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 『진흙 얼굴』 『내간체內簡體를 얻다』 『날짜들』 『검은색』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등의 시집과 산문집 『풍경의 비밀』 『삶과 꿈의 길, 실크로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