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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1장 4절 ~ 9절
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서게 되리라. 네가 다시 네 작은 북으로 단장하여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춤추는 데로 나올 것이라. 4)
Again I will build thee, and thou shalt be built, O virgin of Israel: thou shalt again be adorned with thy tabrets, and shalt go forth in the dances of them that make merry. 4)
adorn 1.꾸미다 2.…을 매력적으로 하다 3.(임석하여) 광채를 더하다 4.장식하다 cf. DECORATE 5.…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다
tabor 1.테이버 2.작은 북 3.치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는 때는 그들이 끌려간지 70년이 지난 후 였습니다. 몇년 뒤에 바로 돌아가길 소망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소망은 하나냐와 같은 거짓선지자의 주장으로 나타났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차분히 보지 않으면 70년이라는 기간을 인지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벌하시고 바로 또 축복하시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70년 지난 후에 남은 자들을 위의 말씀처럼 축복하신다는 것을 모르면 안됩니다. 그리고 올해가 한국전쟁 종전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북한의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고난으로 지낸 기간 만큼의 시간이 채워졌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합당한 공의로 볼때 지금의 김부자 우상숭배 아래에 고통받는 북한의 성도들에게 위의 말씀과 같은 축복이 주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한반도의 큰 변화가 생겨서 북한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도 놀랄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마지막때가 오기 위하여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들인 것입니다.
마지막시대의 징표는 짐승의 표만이 아니라 압제자에게 억눌려 복음의 기회조차 받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의 공의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14절
그래서 마지막때가 가까울 수록 하나님을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거부하는 사람들의 차이와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시대의 세상의 모습은 암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쁜 모습도 섞여 있는 것입니다. 얽매였던 사람들이 주의 공의로 복음을 마음껏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는 기쁨의 시대인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 주민들이 작은 북으로 단장하고 춤추며 나아오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도 마지막때의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너는 사마리아의 산지에 포도나무를 심을 것이며 심는 자들이 심고 평범한 것으로 그 열매들을 먹으리라. 5)
Thou shalt yet plant vines upon the mountains of Samaria: the planters shall plant, and shall eat them as common things. 5)
평범한 것으로 그 열매를 먹는다는 의미는 값이 싸다는 뜻도 되지만 그보다는 포도나무의 열매 즉 복음의 열매를 평범하게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심한 기독교 핍박 국가인 북한에서 좋은 설교자가 세워져 북한 사람들이 좋은 설교를 당연하게 들을 수 있고, 성경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보여집니다.
말씀보존학회는 평범한 것으로 그 열매를 먹으리라. 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shall eat them as common things 의 의미는 그 포도나무의 열매를 평범한 것처럼 먹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말씀보존학회의 번역에는 것으로라는 표현때문에 싼값(평범한 가치)으로 그 열매를 먹는다는 필요없는 거래의 의미가 섞여있습니다.
포도나무의 열매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값없이 얻게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범한 것으로 복음을 얻게 된다라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네가 여전히 사마리아의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으리니 심는 자들이 심고 평범한 것들을 먹듯이 그것들을 먹으리라.
킹제임스 흠정역 예레미야 31장 5절
킹제임스 흠정역의 번역이 KJV성경에 나타난 의미가 바르게 전달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개역개정 예레미야 31장 5절
개역개정은 KJV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므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씀보존학회처럼 필요없는 의미가 들어가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는 에프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들이 외치는 한 날이 있을 것임이니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주 우리의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6)
For there shall be a day, that the watchmen upon the mount Ephraim shall cry, Arise ye, and let us go up to Zion unto the LORD our God. 6)
에프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야곱의 아들이며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의 아들들중에 차남이름이 에프라임입니다. 에프라임은 야곱 할아버지가 그가 장자가 아니면서 그의 유업을 감당하였던 것처럼 그 야곱의 축복을 장자인 므낫세가 아닌 차남인 에프라임이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에프라임이 속한 북이스라엘이 타락하여 헬라인들과 섞여 결혼하고 그들의 풍습을 따라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남유다인들은 사마리아사람들을 경멸하였습니다.(시온 언덕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처럼 에프라임이라는 도시이름은 사마리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은 예수님의 초림당시에도 유지되어 우물가의 사마리아여인은 예수님께서 말을 걸자 어찌하여 유대인이 사마리아여인에게 말을 거냐며 대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경멸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의 사람의 의도, 죄도 모두 같은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을 받은 에프라임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낙인을 찍힌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위계질서는 사람안에 것이며,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파수꾼들이 이러한 에프라임 산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외침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지금 시대로 보면 하나님에게서 가장 멀리있던 사람들이 복음을 회복하는 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교회를 오래 다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를 믿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돌이키게 되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들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들로 먼저 될 자들이 많으리라.
마태복음 19장 30절
지금의 이런 현상이 바로 먼저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된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백신 사기극기간에 교회안에는 큰 변화가 없어보이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던 세상 사람들중에서는 백신의 기만으로 이 세상이 커다란 기만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말씀을 목격한 사람과 달리 직접 현상으로 말씀이 이루어짐을 목격한 사람들로 이들의 믿음은 교회 의존적인 사람보다 믿음이 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위 말씀처럼 이러한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를 외친 것입니다. 백신 사기극 와중에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불이익과 비난을 감수하고 백신에 대한 진실을 외쳤습니다. 그 소수의 사람들의 99%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본질의 파수꾼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겉모습은 다양하여 의사, 자영업자, 학생, 직장인이었지만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여겨서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이기고 파수꾼의 본분을 감당하여 외쳤던 것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쁨으로 노래하고 민족들의 우두머리 가운데서 소리지르며 너희는 공표하고 찬양하며 말하기를 "오 주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7)
For thus saith the LORD, Sing with gladness for Jacob, and shout among the chief of the nations: publish ye, praise ye, and say, O LORD, save thy people, the remnant of Israel, 7)
주의 축복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이전 글에 작성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조건적인 사랑의 모습인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인내로 거부하는 자들도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또 내가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는데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니라. 이는 실로 그들은 자기들의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요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따를 것임이라."고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13장 13절
위의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위의 예레미아서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들은 침략에서 남은 자들이기 때문에 "이제 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는 계시록의 말씀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는 짐승의 표의 시대를 거쳐야하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자신의 권력, 명예, 재물, 건강에 대해서 내 자신이 죽어야만 짐승의 표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오늘부터라고 생각하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저 또한 매일을 세상의 유혹에서 흔들리지 않아야하는 현실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작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서, 짐승의 표를 거절할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근심에 싸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날의 재앙은 그날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그들을 북쪽 지방에서 데려올 것이요, 땅의 지경들로부터 모으리니 그들과 함께 소경과 절름발이와 아이 밴 여인과 아이로 산고하는 여인을 모을 것이요, 큰 무리가 그곳으로 돌아오리라. 8)
Behold, I will bring them from the north country, and gather them from the coasts of the earth, and with them the blind and the lame, the woman with child and her that travaileth with child together: a great company shall return thither. 8)
thither ① (고어) 그쪽으로 ② (말하는 사람이 보아) 저쪽의 ③ 거기에(there) ④ 반대쪽의
이스라엘이 70년만에 회복이 되어 돌아오는 와중입니다. 이는 전쟁이 일어나 바빌론이나 다른 나라로 떠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이 돌아오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 밴 여인과 산고하는 여인이 언급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후손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은 모습이 느껴집니다. 왜냐면 그들의 파수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라고 외치고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이 종전된것이 1953년입니다. 그러니까 올해가 딱 70년이 되는 해이며, 올해부터 북한이 회복이 된다면 지금의 북한 성도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을 것으로 느껴집니다. 종전당시의 성도들은 거의 모두 사망하였겠지만 그들의 후손이 남아 성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울며 올 것이요, 내가 간구함으로 그들을 인도할 것이며 내가 그들로 물 있는 강가에서 바른 길로 걸어가게 하리니 그들이 넘어지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가 이스라엘에게 아버지이며 에프라임은 나의 첫태생임이니라. 9)
They shall come with weeping, and with supplications will I lead them: I will cause them to walk by the rivers of waters in a straight way, wherein they shall not stumble: for I am a father to Israel, and Ephraim is my firstborn. 9)
에프라임이 나의 첫태생이 됨의 의미는 매우 큽니다. 에프라임은 먼저 요셉의 장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에프라임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장자가 아니지만 장자로, 혼혈되어 소외된 민족이었지만 구원에 제일 앞에 내세우시겠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말씀대로 먼저된 자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국이 갑자기 통일이 되어 북한의 성도들이 남한으로 내려온다면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남한의 성도들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북한 성도들이 계시록에 나오는 이제부터 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는 세상을 살아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때에는 짐승의 표처럼 슬프고 비참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공의에 따른 회복됨의 기쁨도 동시에 존재할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때에 저와 당신은 북한 성도들의 믿음을 배워서 주안에서 죽을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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