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自然)
박재삼
뉘라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사랑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 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시집 『춘향이의 마음』, 1962)
[작품해설]
이 시는 춘향전을 소재로 하여 현대적 변용을 가한 「춘향이의 마음 초(抄)」라는 연작시의 하나로 서정주(徐廷柱)의 「추천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가장 한국적인 시를 쓴다는 서정주의 맥을 정통으로 이은 박재삼의 대표적인 이 작품에서 시적 자아인 ‘춘향’은 「추천사」의 춘향처럼 현실 세계의 고뇌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꽃나무에 견주어 그것을 순수한 생명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랑은 억지로 의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나무 가지에서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과 같이 자시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으로부터 샘솟는 것이다. 시제(詩題) ‘자연’이 시사(示唆)하듯, 자연의 힘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고운 꽃을 피우게 된다는 춘향의 독백을 통해, 시인은 사랑의 실체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인간의 마음과 자연을 동일시하고 있다. 꽃나무가 햇살을 받아 새 싹을 틔워 성장하고 마침내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도 모르게 제 가슴속에서 자라난 사랑의 감정으로 말미암아 행복에 젖거나 불행에 빠지게 된다. 사랑을 이러한 자연 현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시인은 사랑의 표현을 ‘웃어진다’와 ‘울어진다’라는 피동형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작가소개]
박재삼(朴在森)
1933년 일본 동경에서 출생하여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성장
고려대학교 국문과 중퇴
1953년 『문예』에 시조 「강물에서」가 추천되어 등단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정적(靜寂)」, 시조 「섭리(攝理)」가 추천되어 등단
1956년 제2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1967년 문교부 문예상 수상
1977년 제9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82년 제7회 노산문학상 수상
1983년 제10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6년 중앙일보 시조대상 수상
1997년 사망
시집 : 『춘향이 마음』(1962),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밤』(1975), 『어린것들 옆에서』(1976), 『뜨거운 달』(1979), 『비듣는 가을나무』(1980),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거기 누가 부르는가』(1984), 『간절한 소망』(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박재삼시집』(1987), 『사랑이여』(1987), 『가을 바다』(1987), 『바다위 별들이 하는 짓』(1987), 『울음이 타는 가을 강』(1987), 『햇볕에 실린 곡조』(1989), 『해와 달의 궤적』(1990),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1991), 『허무에 갇혀』(1993), 『나는 아직도』(1994), 『다시 그리움으로』(1996),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1997), 『박재삼시선집』(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