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향적봉에서 바라본 덕유주릉, 맨 뒤가 남덕유산
이 산의 근원은 조령(鳥嶺)에서 말미암아 속리산(俗離山), 직지산(直指山), 대덕산(大德山)을 거쳐 초재(草岾: 초
점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솟아 거창(居昌)의 삼봉(三峯: 삼봉산)이 됩니다. 이것이 이 산의 첫 번째 봉우리입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뻗어 대봉(臺峯)이 되고 또 서쪽으로 뻗어 지봉(池峯: 못봉)이 되고 서쪽으로 뻗어 백암봉(白巖
峯)이 되고 서쪽으로 뻗어 불영봉이 되고 서쪽으로 뻗어 황봉이 됩니다. 그리고 백암봉에서 북쪽으로 돌면 이 봉
우리가 됩니다. 이 봉우리(향적봉)가 가장 높고 황봉(남덕유산)이 그 다음이며 불영봉(무룡산)이 또 그 다음입니
다. 이것이 이 산의 대략입니다.
(是山之根, 由鳥嶺而俗離而直指而大德, 至草岾西起, 爲居昌之三峯, 卽是山之第一峯也. 自是西迤爲臺峯, 又西迤
爲池峯, 西迤爲白巖峯, 西迤爲佛影峯, 西迤爲黃峯. 自白岩北轉而爲此峯. 此峯爲最而黃峯次之, 佛影峯又次之. 此
是山之大槩也)
―― 갈천 임훈(葛川 林薰, 1500~1584), 「登德裕山香積峯記」」
주) 유정열(대전대학교 H-LAC, 강의전담교원)의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峯
記)’ 연구」에서 인용
▶ 산행일시 : 2023년 1월 15일(일), 흐림, 안개, 눈
▶ 산행코스 : 안성탐방지원센터, 동엽령, 백암봉, 중봉, 향적봉, 향적봉대피소, 중봉, 오수자굴, 백련사, 구천동,
삼공리 주차장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9.3km
▶ 산행시간 : 7시간 2분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26명) 우등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번 출구 전방 200m 스타벅스 앞 차도변( ~ 07 : 08)
07 : 24 - 죽전정류장( ~ 07 : 35)
08 : 29 - 옥산휴게소( ~ 08 : 50)
10 : 13 - 안성탐방지원센터, 산행시작
10 : 31 - ┣자 칠연폭포 갈림길
11 : 44 - 동엽령(冬葉嶺, ~ 11 : 54)
12 : 37 - 백암봉(白岩峰, 1,503m)
13 : 01 - 중봉(中峰, 1,593.7m)
13 : 29 - 덕유산 향적봉(德裕山 香積峰, △1,614.2m)
13 : 45 - 향적봉 대피소, 점심( ~ 14 : 00)
14 : 15 - 중봉
14 : 50 - 오수자굴(吳秀子窟)
14 : 55 - 계곡
15 : 36 - 백련사(白蓮寺, ~ 15 : 45)
16 : 27 - 구월담(九月潭)
17 : 00 - 월하탄(月下灘)
17 : 20 - 삼공리 주차장, 산행종료, 저녁
18 : 00 - 버스 출발
19 : 05 - 신탄진휴게소( ~ 19 : 15)
20 : 45 - 양재역
2. 덕유산 지도
▶ 동엽령(冬葉嶺)
이 비가 산에서는 눈으로 내릴까. 겨울 장마처럼 비가 내리기에 덕유산에서는 눈으로 내린다면 폭설일 것 같아
수시로 덕유산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입산을 통제하는지 확인하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눈꽃을 찾아
간다. 캄캄한 새벽에 우산을 받치고 집을 나선다. 전철에 동승한 등산배낭 맨 사람들을 보면 반갑다. 동지다. 양재
역과 20분에 들를 죽전정류장이 북새통이다. 눈꽃을 보려고 겨울 산으로 이름난 덕유산은 물론 계방산, 태백산,
민주지산, 선자령 등지로 가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덕유산 가는 고속도로도 비가 내린다. 우등버스 윈도우브러시는 빗물 훔치느라 바쁘다. 날씨가 푹하여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그래서인지 날이 더디 샌다. 요 며칠 동안 계속 내린 비로 차창 밖 산중의 눈은 다 녹았다. 안성
탐방지원센터 앞 주차장까지 버스가 들어간다. 어쩌면 덕유산 가는 버스들이 많아 그 수백 미터 전부터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했다. 차안에서 스패츠 매는 등 산행준비를 마쳤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동엽령을
향하여 걷기 시작한다.
대로인 임도다. 임도는 칠연폭포(1.5km)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지금은 가랑비 혹은 진눈깨비가 내리지만 이곳에
도 많은 비가 내렸다. 통안천이 한여름 큰물처럼 흐른다. 하얀 포말 일으키며 호호탕탕 흐르는 물 구경하며 간다.
곳곳에 이름 없는 와폭이지만 명찰 붙은 문덕소 폭포보다 못하지 않다. 우리의 미소 진행대장님은 어제도 이곳에
왔었다며 칠연폭포를 들르지 말 것을 권고한다. 퍽 시시하더라며 괜히 아까운 시간 30분이나 허비하게 될 것이라
고 한다. 마치 나더러 들으라고 하는 얘기 같다.
수년 전에도 시시했기에 그 말씀을 존중하여 꾹 참고 지나친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지 않을까. 이름 없는 폭포들
이 저럴진대 칠연폭포는 얼마나 장관일까 하는 의심이 부쩍 일고 아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계류 물소리는 잦아들
었다가 다시 요란하기를 반복한다. 10시가 넘었는데 하늘 가린 숲속길이기도 하지만 워낙 안개가 자욱하여 주위
는 어둑하다. 그런 한편 흑백농담의 주변 경치가 어찌 보면 가경이다. 숲속 이리 보고 저리 본다.
눈발이 날린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진다. 정취다. 등로는 곳곳이 빙판이다. 조심스레 걸어도 발바닥에서 미끌미
\한 감촉을 느낀다. 무료히 걷는 것보다 얼마나 재미가 있는가! 가다 말고 아이젠 매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다른
여러 산악회에서도 이 길을 간다. 줄지어 간다. 내 걸음이 아니라 그들 걸음으로 간다. 동엽령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들에게 일부러 덕유주릉의 눈꽃이 어떻더냐고 묻지 않았다.
그곳의 눈꽃이 환상적이더라고 하면, 그새 스러질까봐 숨 가쁘게 줄달음하여 오를 터이고, 눈꽃이 이미 지고 말았
더라고 하면, 낙망한 발걸음 또한 무척 힘들 것이다. 아무렴 그곳 사정을 모르고 오르는 편이 백번 낫다. 동엽령을
0.6km 남겨두고 계류는 밭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긴 데크계단을 두 번에 걸쳐 오른다. 등로 주변의 나뭇가
지에 상고대 서리꽃이 움트기 시작한다. 사람들 수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리고 개활지에 올라선다.
동엽령이다. 여태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싸리나무에 새하얀 서리꽃이 끝 간 데 없이 만발하였다. 장관이고
대관이고 특관이다. 동엽령 오르는 사람마다 환성을 내지른다. 동엽령 층층 데크전망대(?)와 대피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데크전망대는 눈발이 흩날리고 짙은 안개로 무망이라 자리 펴고 점심식사 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보온물통에 담아온 더운 물 부은 컵라면을 먹는다. 나도 한쪽 비집어 배낭 벗고 찹쌀 꽈배기로 요기한다.
동엽령은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에는 이 고개는 양지(陽地)라서 볕이 따뜻하여 겨울에도 나뭇잎이 핀다는
의미로 유래하였다고 한다. 오늘의 눈부신 눈꽃을 보면 얼추 수긍이 간다. 그러나 디지털무주문화대전은 다음과
같은 다른 유래를 내놓고 있다. “이 고개를 지나는 길이 높고 멀어서 혼자 넘기 힘들어 여럿이 모여야만 올라갈 수
있다는 데서 동업령(冬業嶺)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3. 동엽령 가는 길
이때는 부슬비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니 끼어 어둑하였다.
4. 문덕소(問德沼)
요 며칠 전부터 이곳에도 많은 비가 내려 계류에는 큰물이 흐른다.
옛날에 도사가 등천을 하기 위해 올라가는데 소의 주변에 갑자기 서기가 비치더니 옥황상제가 "도사야 네가 지금
까지 인간 세상에 덕을 얼마나 베풀었느냐" 하며 물었으나 덕을 베풀지 못하고 오히려 노랑이 부자 집을 물에 떠
내려가게 하여 벌벌 떨기만 하고 있었으나 조용해져 다시 소를 지나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옥황상제가 도사에게
덕을 얼마나 쌓았느냐 하고 물어보았다 하여 ‘문덕소’라 한다.(향토문화전자대전)
5. 무명폭
무명폭이 이럴진대 칠연폭포를 들르지 않은 게 퍽 아쉬웠다.
6. 동엽령 가는 길
계류는 이 이후로도 계속된다. 계류는 동엽령 0.6km전 까지 소리 내고 흐른다.
7. 동엽령이 가까워지고 상고대로 주변은 볼만했다.
8. 동엽령 주변
짙은 안개 속이라 어두울 텐데도 싸리나무에 상고대 서리꽃이 피어 주변이 환했다.
9. 백암봉 가는 길
상고대 서리꽃 터널을 지난다.
11. 진달래에 핀 서리꽃
12. 일목일초가 모두 상고대 서리꽃 피웠다
▶ 중봉(中峰, 1,593.7m), 향적봉(香積峰, △1,614.2m)
백암봉 가는 길. 설국이다. 일목일초가 경염하듯 화사한 눈꽃을 피웠다. 그런 터널을 이슥히 지난다. 미소 대장님
이 그렇게 말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 오고 볼 경치가 없어 지루한 하루였다고. 오늘은 비록 안개 속이지만 눈꽃
원로를 지나는 행렬이 피안을 찾아가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1,378.2m봉을 두드러진 봉이라 의식하지 않
은 채 넘고 느긋이 올라 백암봉이다. 옛적 선인들의 덕유산 산기(山記)에는 으레 들먹이는 봉우리인데, 지금의
국토정보지리원 지형도에는 노브랜드인 봉우리다.
백암봉 돌탑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백암봉 갈림길 오른쪽은 백두대간으로 이어진다. 그쪽 눈길은
조용하다. 곧장 중봉을 향한다. 등로 주변의 바위틈에 핀 진달래 하얀 눈꽃은 봄날 연분홍보다 더 화려하다. 여전
히 원경은 짙은 안개로 가렸지만 근경은 화사한 눈꽃 화원이라 발걸음이 전혀 휘휘하지 않다. 중봉 정상에 임박해
서는 길고 가파른 데크계단을 오른다. 중봉.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는 ‘제2덕유산’이라고 한다. 조망을 따지자면
향적봉 못지않다.
중봉 ┣자 갈림길 오른쪽은 오수자굴을 경유하여 백련사로 간다. 그쪽으로도 눈길은 잘 났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향적봉 정상이 평평하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섰다. 향적봉 가는 길의 눈꽃은 여
태의 그것보다 더욱 화려하려니 기대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날씨가 잠풍하여 상고대 눈꽃이 졌다. 향적봉 가는
길은 덕유평전 평탄한 숲속길이다. 비닐쉘터가 유행이다. 곳곳 비닐쉘터 안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부럽다.
향적봉대피소를 들르지 않고 직등한다. 100m 빙판길 가파른 오르막이다. 향적봉. 정상 표지석 주변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내가 ‘등산객’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라고 한 것은 대부분 곤도라 타고 온 관광객이기 때문이다.
내 적어도 열 번은 넘게 온 향적봉이지만 오늘처럼 많은 사람들을 본 건 처음이다.
나의 바람이 감응했다. 여태 캄캄 닫혔던 덕유주릉이 열린다. 아주 조금이지만 이 한 장면으로도 오늘 산행의
보람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옛 선인의 덕유산 행적을 살펴본다.
이 산에 ‘덕유산’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정확한 유래는 아직까지 미상이라고 한다.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은 임진년(1652) 4월 하순에 덕유산을 오르면서 중들을 동원하여 그들로 하여
금 가마를 매게 하여 오르지 않고 스스로 올랐다. 그의 「유여산행(遊廬山行)」의 일부다. 여산은 바로 금산(錦山)
안성현(安城縣)에 있는 덕유산(德裕山)의 또 다른 이름이다.
崢嶸更指冢頂路 가파른 정상 향해 다시 걸음 옮기니
爲眼不計雙脛薾 구경 위해 두 다리 아픈 것도 불고하고
褰衣直上仰脇息 옷을 걷고 올라가니 옆구리에 숨이 차서
十步回頭五步歇 조금 가다 멈춰 쉬고 잠시 걷다 돌아보네
左揖伽倻右芚岳 왼쪽에는 가야산 바른편에는 대둔산
頭流橫亘天南末 저 하늘 남쪽 끝에 가로놓인 두류산이
蒼然盡入一望中 모두가 푸르르게 한눈에 들어오니
無數峰巒似蟻垤 무수한 봉우리가 개미집과 유사하네
한편, 갈천 임훈은 그의 「登德裕山香積峯記」」에서 향적암 주변에 향나무(香木) 숲이 있으며, 향적봉이라는 이름
이 그 식생으로 인해 유래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西有香林櫛立, 峯之得名以此.)
13. 백암봉 가는 길
가도 가도 짙은 안개 속이다.
18. 백암봉 가는 길
구도의 순례자들 같다.
19. 등로 주변의 진달래
20. 구도의 순례자들
22. 중봉 등로 주변
▶ 오수자굴(吳秀子窟)
근년에 김장호는 그의 『韓國名山記』 ‘덕유산’에서 다음과 같이 향적봉 오른 감회를 적고 있다.
“그러나 아아, 대덕유, 지금은 거기 ‘산악인의 집’이란 대피소도 섰지만, 그때만 해도 퀭하게 버려진 이승가녘의
둔덕, 그 정수리에 올라서서 부르는 쾌재는 내가 밟은 산줄기를 메아리처럼 감돈다. 누가 일러 이 산을 한반도의
속고갱이라 했던가, 아랫배에 힘을 모아 질러대는 소리는 이미 소리가 아니라 실실이 흩어지는 구름조각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여기서도 하기야, 칠봉(1,161.2m)을 거쳐 이 산 종주를 완결할 수도 있다. 한술 더 뜨면 또 북으
로 두문산(1,051m)을 넘어 북서쪽 단지봉(768.5m)과 적상산으로 치오를 수도 있다. 거기 적상산에는 바위가 용
립하여 이 산 육산만 밟아 느슨해진 발다리의 힘줄에 꼬챙이를 심어주리라.”
나는 한때 욕심을 부려 한술을 더 떴다. 오지산행에서 ‘육적종주’를 감행했다. 육십령에서 적상산까지다. 6년 전이
다 되는 2017년 5월의 일이다. 도상 35.9km. 16시간 34분 걸렸다. 그때 함께 산행한 30명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
도 즐겁다.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캐이, 산정무한, 사계, 상고대, 선바위, 진성호, 바람부리, 열정, 두루, 맑은,
향상, 신가이버, 해마, 오모육모, 불문, 대포, 무불, 자유/버들, 영희언니, 스틸영, 화은, 수담, 메아리, 구당, 승연,
가은.
그때 동엽령에서 향적봉까지 4.3km를 1시간 45분 걸렸다. 오늘 그때와 1분 1초도 다르지 않은 1시간 45분 걸렸
다. 산행속도 내기는 봄철보다는 러셀 할 일이 없다면 겨울철이 훨씬 더 좋다.
운해가 좀 빠진다면 덕유주릉을 더 두드러지게 볼 수 있겠고, 멀리 지리연릉까지 보련하고 한참을 서성였으나
그럴 가망이 없다. 줄지어 대피소로 내린다.
대피소 밖의 대기는 차디차다. 어둡지만 대피소 긴 식탁 한 모서리에 자리 잡는다. 늦은 점심밥 먹는다. 이대로
백련사로 하산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중봉에서 향적봉에서 본 조망을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중봉에서는 어쩌면
그동안 운해가 빠져 더한 비경을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중봉으로 뒤돌아가자. 멀지만 거기서 오수자굴을 거쳐
백련사로 가자. 말릴 이 없는 홀로 산행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중봉 가는 길. 역행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중봉에서 향적봉을 오른다. 그런 대세에 밀려 마주치는 길을 양보
하자니 시간이 천연된다. 중봉. 운해가 빠지기는커녕 더 들어찼다. 남덕유산이 망망대해 한가운데 고도다. 미련
없이 오수자굴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눈길은 많은 사람들이 다녔다. 등로 주변의 상고대 눈꽃은 빙화로 열매를
맺고 있는 중이다. 완만히 내리다가 1,470m봉을 넘고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바윗길을 심심찮게 내린다.
가파름이 수그러들고 사면 돌 즈음에 오수자굴(吳秀子窟)이다. 북한산의 ‘거북샘 굴’ 모양이다. 안내문의 설명이
다. “16세기 문인 갈천 임훈 선생의 향적봉기에 계조굴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오수자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득도했
다는 전설이 있어 오수자굴로 불린다.” 갈천 임훈의 향적봉기를 찾아보았다.
“계조굴이라는 곳은 백암의 북쪽에 있는데, 큰 집 한 채가 들어갈 만한 굴이다. 분명히 계조라는 스님이 살았기 때
문에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경사(冏師)가 하향적에 살면서 늘 말하기를 ‘이곳은 분명 구천둔의 터였을 것
이다’라고 했다. 지금 이 골짜기를 보면 비록 깊고 아득하기는 하지만 다 사람의 발자취가 닿는 곳이라서 숨을 만
한 곳이 없다. 옛날의 일설에 ‘사방에 자취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는데, 경사의 말 또한 옳은지도 모르겠다.”
(所謂戒祖窟者。在白岩之北。石广可容一大宇。必是戒祖者居之而名也。冏師居下香積。常云此必九千屯基也。
今觀此洞雖邃。皆人跡所到。無可隱伏處。古說所稱四方之迹不差。冏說亦或然也。)
23. 중봉에서 뒤돌아보았다
멀리는 남덕유산이다.
24. 중봉에서 바라본 향적봉
향적봉 정상에 표지석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줄지어 있다.
25. 진달래, 산호초 같다.
26. 향적봉 가는 길에서
27. 향적봉
29. 향적봉에서 바라본 덕유주릉, 오른쪽 뒤가 남덕유산
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 덕유산 산행은 그 값이 충분하다
32. 왼쪽부터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산 동봉과 서봉
▶ 백련사(白蓮寺), 구천동(九千洞)
오수자굴에서 완만한 사면 길을 0.4km쯤 내리면 계곡이다. 이제 계곡 길을 간다. 빙판이라 여간 미끄럽지 않다.
계류 물 구경하는 탓도 있어 몇 번이나 넉장거리한다. 구천동천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갈천의 「登德裕山香積峯
記」에 의하면 구천동의 유래를 다음과 들고 있다.
“여기가 구천둔곡(九千屯谷)이라는 곳이다. 옛날 이 골짝에 거주하며 성불한 이가 구천 명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였다.”(此所謂九千屯谷也. 昔居此谷成佛功者九千人, 故名之.)
백련사 가는 계곡 길이 엎어지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따분하다. 안개는 몰려왔다가 몰려가기를 반복한다. 등로
는 계류 가까이 다가갔다가 멀어지곤 한다. 산죽 숲 지나고 계곡이 넓어지고 백련사 앞 대로 갈림길이다. 백련사
는 가파른 빙판 언덕바지 150m쯤 올라가야 한다. 향적봉에서 곧장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수인사가 이 시
간에 향적봉을 오르시느냐 이다. 백련사 절집을 구경하러 갑니다 하고 대답한다.
산사에 들르는 이유는 여러 현판과 주련을 보기 위해서다. 그 멋들러진 글씨를 감상하고 주련의 거룩한 뜻을 헤아
려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운 일이다. 백련사 첫 건물은 우화루(雨花樓)이다. 현판은 탄허(呑虛, 1913~1983) 스님
의 글씨다. 우화루 앞의 노거수인 돌배나무와 아주 잘 어울리는 누각이고 글씨다. 한상철 시인의 「백련사(白蓮
寺)」라는 시가 백련사를 함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우화루(雨花樓) 돌배 꽃비
번뇌를 쓸어가고
돌종이 우는 계단(戒壇)
북치는 부도(浮屠) 덕에
구천 명 생불(生佛)이 나와
흰 연으로 피나니
구전에 의하면 신라 839년(흥덕왕 5) “백련 선사가 숨어 살던 이곳에서 백련이 솟아 나왔다”고 하여 ‘백련사’라
하였다 한다. 백련사 본전은 대웅전이다. 대웅전 현판은 보기 드문(?) 우리나라 명필인 석봉 한호(石峰 韓濩,
1543~1605)의 글씨다. 다음은 원통전의 주련이다. 선시(禪詩)가 어렵다. 원각(圓覺)은 ‘부처의 깨달음’이라고
한다.
圓覺山中生一樹 원각 산중에 살아있는 한 그루 나무가 있는데
開花天地未分前 천지개벽이 있기 전부터 꽃이 피었다
非靑非白亦非黑 꽃은 푸르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고
不在春風不在天 봄바람 속에도 없고 허공 속에도 없다
백련사 절집을 나와 구천동을 간다. 일주문(현판은 탄허 스님의 글씨다) 옆이 옛날 백련사 터라고 한다. 삼공리
주차장까지 대로 6.4km. 전혀 지루하거나 따분한 길이 아니다. 구천동 33경을 구경하려 하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바쁘다. 구천동천도 큰물이 흐른다. 담(潭), 폭(瀑), 탄(灘), 대(臺) 등의 33경을 다 찾아볼 수는 없고 도로 변에
설치한 안내판을 보고 나서 그 아래 실경을 확인한다. 계류 건너편 산자락에 ‘어사길’이라고 하여 테크로드를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는 꽃피는 봄날에나 다녀봄 즉하다.
대로 아래로 계류 가까이 다가가 비경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데크로드를 설치하였다. 들락날락한다. 우리는 구천
동 33경을 월하탄(月下灘, 제15경)에서 마감한다. 삼공리 먹자동네 나오고 주차장이다. 33경 그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가? 김장호가 그의 『韓國名山記』에서 안타까운 사정을 밝히고 있다.
“백련사에서 설천까지 70여리, 25km에 걸치는 이름자대로의 구절양장(九折羊腸), 무주구천동은 세상이 다 아는
그 33경으로 더욱 이름난 골짜기다. 삼공리를 중심으로 설천까지 하류를 하구천동이라 하고, 그 상류 쪽을 상구
천동이라 한다. 사실 이 길은 죽려장 빗기 짚고 한가하게 걸으며 즐겨야 했다.
(…) 1969년 국민관광단지가 되고 이어 75년 2월 1일자로 둘레 219평방킬로에 걸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길
이 넓혀지고 호텔이 들어서고 식당이 늘어나고 하더니, 마침내 33경은 그 그윽함을 거두어 산상으로 쫓겨나고,
삼공리 아래로는 더구나 구정물 도량이 되고 말았다. 마치 가야산의 농산정(籠山亭)이 산속에 갇혔다가 하루아침
에 산 밖으로 쫓겨난 축산정(逐山亭) 꼴이 되었듯이, 이제는 마음을 씻기는커녕 걸레도 헹궈내지 못할 하수도가
되고 말았다.”
오늘은 저녁 먹을 시간이 넉넉하다. 우리의 미산대장님이 추천한 음식점에서 또 추천한 비빔밥(혼자일 경우)을
주문하여 독작으로 하우스 동동주를 곁들인다. 18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얼근한 기운에 오늘 산행 길을 되새
김 하며 졸다 보니 서울이다. 서울의 밤은 눈발이 날린다.
35. 뒤돌아온 중봉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36. 남덕유산이 망망대해 고도다
아무리 기다려도 더 나아질(운해가 빠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37. 맨 왼쪽은 백두대간 지봉
38. 상고대 서리꽃이 빙화로 변한다
39. 백련사 우화루(雨花樓)와 일주문(德裕山 白蓮寺) 현판
탄허 스님 글씨다. 일필휘지다.
40. 대웅전 현판
우리나라 명필 한석봉 글씨다.
41. 구천동 33경 중 제21경인 구월담
월음령계곡과 백련사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하고 쏟아내는 폭포수가 담을 이룬 구월담은 형형색색 무니의
암반이 맑은 물에 잠겨 조화를 이루고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면 더욱 아름답다.(안내문에서)
42. 구천동 33경 중 제16경인 인월담
무주 구천동 3대 명소로 꼽힌 장소답게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진 너른 반석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안내문에서)
43. 구천동 33경 중 제15경인 월하탄
월하탄은 선녀들이 달빛 아래 춤을 추며 내려오듯, 두 줄기 폭포수가 기암을 타고 쏟아져 내려 푸른 담소를 이루
는 아름다운 곳이다.(안내문에서)
첫댓글 전 육년전 중포했음다 ㅜㅜ
설경이 본전생각 안나게 해주네요 ㅎ
그떄 점심으로 상제루 식당에서 우동을 드셨으니 힘을 쓰지 못하시는 건 당연하지요.ㅋㅋㅋ
역시 덕유산 설경이 대단합니다. 중봉에서 남덕유산이 웅장하게 보이지요...
전날 토요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안개가 자욱하여 볼거리가 없더라고 하더군요.
눈꽃과 물 구경이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