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러브스토리
퇴계 이황이 스무 살 때 장가들어 첫날밤을 맞이했는데, 이튿날 신방에서 나오는 딸을 붙잡고 장모가 은근히 물었습니다. “신랑이 귀여워해주더냐?” 이에 대한 딸의 대답은 “말도 마이소. 개입디더.” 였습니다.
어느 날 퇴계의 제자들과 율곡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두 스승의 방사 장면을 차례로 훔쳐보았는데요. 근엄한 율곡과 달리 퇴계는 매우 난잡했습니다.
실망한 제자들에게 퇴계는 “남녀, 음양이 교합하는데 어찌 조용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도덕군자라 해도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낙(樂)이 있어야 하는 법, 특히 여자는 밤이 즐거워야 탈이 없는 법이라네.” 하며 껄껄 웃었다고 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민담에서 전해져오는 우스개소리이지만, 그럼에도 이황이 본능을 억제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황은 상대가 누구든,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둘째 부인이 사망하자 전처 소생들에게 3년상(시묘살이)을 치르도록 하고, 자신 역시 암자를 짓고 1년여를 기거하며 애도했습니다.
또 다른 여인 첩이 죽은 후에도 그 아들을 자신의 호적에 올려 후대에 적서차별 받을 것을 예방했고요.
특히 이황과 기생 두향과의 러브스토리, 가슴아픈 사랑이 유명한데요. 단양 군수로 재임할 때(둘째 부인을 잃은 후) 만난 두향은 시와 음률에 뛰어난 데다 매화를 잘 길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강선대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으며, 서로간의 애정을 키워 나갔는데요. 퇴계와 헤어진 후, 두향은 기생을 그만두고 산에 움집을 짓고 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21년 후 퇴계의 부음을 듣고는 200릿 길을 혼자 걸어 멀리 상가가 보이는 산기슭에서 소복 차림으로 망곡하며 하룻밤을 지새웠습니다.
세상을 하직할 때, 퇴계의 마지막 말은 “매화(두향매?) 화분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는데요. 이듬해 두향은 거문고와 서책 등을 모두 태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녀의 유언은 “생전에 퇴계와 노닐었던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퇴계의 후손들은 퇴계의 제례를 지낸 후, 반드시 두향의 묘를 참배한다고 하는데요. 2017년 단양군은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을 주제로 하는 '퇴계와 두향' 스토리텔링 공원을 두향묘가 보이는 장회나루 언덕에 조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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