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롬 9:14-18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롬 9:14-18 / 그러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15)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ㅁ)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한없이 돌아보고 어여삐 여길 사람을 한없이 어여삐 여기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ㅁ. 70인역 출33:19) 16) 하나님의 자비는 누가 그것을 얻으려 결심을 했다거나 노력을 하였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풀고자 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17) 애굽의 바로의 경우가 그 한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말씀한 대로 애굽 왕국을 그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힘을 그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온 세상에 ㅂ)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퍼지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ㅂ. 출9:16) 18)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완고한 마음대로 버려 두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는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모세와 바로 왕의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14-16)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는 개인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질문이 생겨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린다면 불의한 것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문은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실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공로에 따라 그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시켜 하나님의 선택을 받으려 한다면 모든 사람은 심판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기초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보여주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택이 갖는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공로나 출신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을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통해 바울은 개인의 공로에 의지할 때 실패한다는 것과 오직 그에게는 복음이 필요할 뿐이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요구되는 것도 율법주의 사고에서 떠나 복음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17-18) 모세와 바로 왕은 서로 대비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면 바로 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인물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막았던 바로 왕을 예로 들어 앞의 두 경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긍휼을 나타내시는 것과 그를 완악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로 왕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전파되게 하는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이용하신 것은 바로 왕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교만과 완악함이었습니다. 바로 왕의 교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왔고, 그에 합당한 결과를 받았습니다. 이와 대조되는 모세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는 원리입니다. 부르심의 기회는 동일하게 주어질 수 있으나 거기에 대한 반응은 서로 다릅니다.
적용: 하나님은 성도의 삶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요구 앞에 모세와 바로 왕 중에 어떤 모습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을 비롯해 모든 창조물들은 하나같이 같은 목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바요 또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비밀
로마서 9:11-16 / 김호식 목사
로마서 9장 11~16절, 21절
여러분을 오랜만에 뵈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여러분 혹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혹은 자기가 선택한 시간에 자기가 선택한 방법으로 죽는 사람 있습니까? 여러분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싶어서 가지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일신은 여러분이 선택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부모, 성, 국적 모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the given',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의사를 물어봄 없이 우리의 결정을 기다림 없이 깜깜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생 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날아와 안겨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금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우르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사람 가운데 자기의 뜻에 맞는 사람을 골라서 "부모와 집을 떠나라"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랐지만 하나님께서는 야훼신 을 확립시키려는 뜻이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을 우리는 뒤에 알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아 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두라 몸에서 난 아들을 제외하고서는 이스마엘과 이삭을 두었는데 이스마엘은 몸도 더 건강하고 똑똑하고 그리고 맏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 님의 선택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이삭이 시원찮은 인간인고 하니 이삭이 마흔 살이 된 주제에 자기가 함께 살 부인을 자기가 먼 곳으로 선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색시가 천리만리를 선 러 오는 형식으로 결혼하게 됩니다. 또 그 이삭은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에서는 맏이로서 장자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문화시대가 아닌 유목문화시대이니까 더욱 더 필요한 아들은 씩씩하고 야성적인 기운 센 에서가 더욱 더 선택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어미의 치마자락에 감싸여 사는 약하고 마마보이 사기꾼에 가까운 거짓말쟁이 야곱을 하나님께서 선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입니다. 야곱에게는 또 열두 아들이 있었는데 씩씩하고 잘생긴 맏이도 있고 계속 아들들이 훌륭했는데 하필이면 열한번째 아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축복의 파이프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에 작용하실 때 친히 앞장서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앞장 세웁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하늘의 축복을 땅에 내리게 하는 중간 파이프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런 사람은 고달프지마는 복의 근원이 되고 많은 인민들이 그를 통해서 복을 받게 되는데 약하고 연약한 마마보이도 그 선택의 줄을 그에게 넘기시는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므나세와 에브라함입니다. 므나세가 맏이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택의 라인은 둘째 아들 에브라함에게 내 갑니다. 그래서 야곱이 마지막 축복을 할때 아빠인 요셉은 맏이를 할아버지의 오른손에 갖다 놓았는데 할아버지는 손을 엑스자로 교차해 축복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여러분이 결정한 것이죠?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죠?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신비한 선택의 사가 있어서 여러분들이 지금 거룩한 직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에서와 야곱 가운 서 야곱을 선택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선악을 구분할수도 없는 아직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애미의 뱃속 태아에게 하나님께서 벌써 선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에레미아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점지하기 전에 즉 어미의 뱃속에 생기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였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뱃속의 아이가 하나님에게 점수 딸 일을 할 줄 압니까, 선한 일을 할 줄 압니까, 악을 부릴 줄 압니까? 아무런 판단 기준도 없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형은 동생을 섬기리라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 나는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 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나? 그래도 우주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공평하셔야지 이렇게 벽되고 편애하시고 불공평하신 분이 계신가? 그런 질문의 대답이 오늘 본문 15절에 나왔습니다. 내가 긍률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왜? 어쩔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절에 있다시피 토기장이가 한덩어리의 흙을 이등분하여 하나은 귀하게 쓰는 그릇으로 쓰고 하나는 천하게 쓰는 권한이 토기장이에게 없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인간은 알 수 없는 큰 선택의 비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은 혈통에 한 것도 아니요, 그 사람의 도덕적인 수준에 의한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력하고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라고 오늘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적인 사랑과 선택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민족은 못된 사람이 많지만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민족은 야곱과 같은 민족입니다. 야곱은 형도 속이고 아비도 속이고 장인도 속였습니다. 장인의 집에서 20년이나 머슴 노릇을 했다면 그래도 떠날 때는 장인에게 인사라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장인과 처남들이 저 멀리 3일거리가 되는 먼곳에 양털을 깍으러 간 사이에 아내와 재산 모두 가지고 몰래 야간 도주하는 이유는 그 행위 뒤에 뭔가 구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머슴이 어떻게 주인보다 더 부자가 됩니까? 부정 비리가 없으면 부자가 될리가 없죠. 야곱만이 아니라 그의 아내 라 도 거짓말장이입니다. 친정집 망하고 자기집 잘되라고 친정집이 대대로 섬겨오던 수호신을 훔쳐가지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장인과 처남들이 쫓아 온 것은 인사없이 떠난 것이 괴씸해서가 아니라 집안에 복을 주는 수호신을 찾기 위해서 뛰어온 것입니다. 장인과 처남이 물건들을 뒤지자 라헬은 낙타의 안장 밑에 수호신을 숨기고 치마로 가린 뒤 아버님에게 내려서 인사하는 것이 마땅하나 마침 멘스가 있어서 제가 내리지 못하니 이해해달라고 합니다. 그리곤 그들이 돌아가자 그 수호신을 가지고 도망을 갔지요. 우 는 야곱과 같은 사기꾼들입니다. 우리나라에 부정 비리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나라에 꽉 찼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장관시킬 사람이 없어서 대통령이 임명하면 뒤가 구린 것이 나와서 그만두고 그런 것이 몇번입니까? 법조계 비리, 병무행정 비리, 무기 구입 비리, 농협비리 축협비리 하다못해 장 자에게 주는 지원금까지 직원들이 빼돌리고 떼먹고 우리나라는 아브라함의 가족과 같습니다. 병원에 하면 74세된 할머니도 아기를 낳더군요. 그리고 아기 낳은 지 열흘만에 또 아기를 낳는 그런 곳이 우 나라입니다. 여러분 감기로 병원에 가실 때 정신병 환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되겠습니다. 고리 채업자에게 백만원 빌린 처녀가 이천오백만원을 갚고도 모자라서 신체 포기 각서를 썼다가 사창가에 아 넘겨지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인권 침해의 일을 말하라고 할 것 같으면 우리 교회 김동한 로님이 해가 지도록 하여도 다 못할 것입니다. 수재민에게 정부에서 도와주는 지원금을 직원들이 도 을 파가지고 가짜로 올리고 돈은 수재민들에게 안가고 자기들이 먹지 않았습니까? 우리교회 황덕남 사님이 신문에 쓰기를 병무비리가 있던 박원사가 잡히니까 조선일보에 쓰기를 이제 우리나라 고위 공 자들이 겁을 먹고 있다고. 겁을 먹기는 무엇을 먹어. 조사를 아무리 해도 고위 공직자 아무도 나오지도 않는데. 맨날 깃털만 잡히는 거죠. 나는 이사야가 피맺힌 목소리로 백성들에게 외친 그 목소리를 서울 한 복판에서 듣고 있습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여,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식이로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 더욱 더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 여졌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것이 없고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쇠로 맞은 흔적뿐이구나. 발바닥 서 머리까지 이것은 사람의 신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에서부터 지도자까지 다 상처난 사람뿐이다. 작년에 뉴욕에서 향린교회에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전자제품 중간도매를 하는 성공한 사업 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유태인만을 상대로 사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 말로는 유태인만큼 거짓말장이 사기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고 안심이 되 지 몰라 왜 남의 백성에게 사기꾼 거짓말장이가 많다는데 내가 왜 기분이 좋지? 아마 항상 우리가 세 에서 제일 못된 민족이려니하는 컴프렉스가 있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기분이 좋을 뿐만 아 라 안심이 다 되더라구요. 저런 백성도 하나님의 축복을 저렇게 받았는데 우리도 하나님의 선민이 될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태인들도 자기들이 못됐다고 인정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이스라 의 역사가운데 다윗도 있고 모세도 있고 솔로몬도 있고 훌륭한 사람 다 두고 자기 나라의 이름을 딸 때 왜 조상가운데서 최고로 악질이고 사기꾼이고 거짓말 잘하는 야곱의 이름 이스라엘에서 자기 국민의 름을 땄습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인정하는거죠?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을 그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기꾼 백성을 선민으로 선택해놓고 얼마나 고민을 셨는지, 얼마나 마음을 쓰셨는지. 하도 해도 않되니까 율법을 주어 봅니다. 율법을 지키면 내가 너희 을 구원하고 축복한다. 그것도 지키지 않으니 선지자들을 보내 회유도 하도 야단도 쳐봅니다. 그래도 을 듣지 않자 나라를 망하게도 해보고 국민이 외국의 포로가 되게하기도 하는 별별 수단을 써도 않되자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카드라 내놓은 이것도 유태 들은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못된 백성을 선민으로 선택하시고 고생을 너무도 하신다고 느 니다.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인 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우주는 하나님의 작품인 이상 결함이 있어서는 않됩니다.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작품이 아니죠. 그러므로 이 우주라는 은 아노미의 세계도아니고 아나키즘의 어떤 영역도 아니라고 봅니다. 뒤죽박죽된 케이오스의 세계가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엄연히 어떤 도덕적 질서가 있는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래서 죄지은 이스라엘에게 온갖 고생을 시련을 다 주었습니다. 왜? 죄를 짓지 않은 선한 민족으로 들기 위해서 풀무불에 넣어서 끓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죄 때문에 축복의 원칙을 바꾸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죄 때문에 선택의 원리를 바꾸시지 않는다는 이 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한국민족을 선민으로 만들어 놓고 육이오도 주시고 아이엠에프도 주시고 민족분단의 고통도 주시고 최근에는 김동한 장로님이 기도하셨다시피 비도 안주시고 가뭄도 주시고 으로도 우리는 많은 고통과 고난을 이스라엘 피플처럼 받아야 하리라고 봅니다. 예루살렘의 예레미아를 보면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벌을 받아 죽어도 쌀 그런 민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백성을 치시는 것은 다시 모으기 위함이요, 하나님이 때리는 것은 다시 어루 져 위로해 주시기 위하는 하나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아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셨 니다. 나는 너희가 죄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법대로 벌하였다. 너희의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으리라. 맞은 자리도 몹시 아플 것이다. 그러나 나 야외가 말한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 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의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88올림픽을 보고 계사람들이 많이 놀랐습니다만은 그 놀란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일본사람들이죠. 그들이 88올림픽을 고 불안을 느낀 것은 저들이 우리를 따라오면 어떻할까하는그런 걱정이였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이 끝난 6개월후 89년 봄에 각계의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조사단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한국을 조사하고 낸 리 트가 그 유명한 코리아 리포트입니다. 그 보고서의 결론인즉은 한국은 일본을 따라 올 수 없으니 일 은 안심해도 좋다는 그런 취지입니다. 특히 3가지 이유를 말하였는데 첫째 인구 문제다.하나의 경제 이클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인구가 있어야 나라가 발전한다. 그런데 자기들은 1억3천만인데 비해서 한국은 4천 5백만이다. 지금은 4천 6백만이 되었지만.북한에 2천2백만이 있지만 식생활도 제 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 카운트 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한국정부가 한국 전체 대학교에 지원하는 한국 과학 지원 연구비가 일본이 동경 대학교에 지원하는 액수와 같으니 이것은 소와 강아지가 겨루는 격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번째는 노사분쟁의 형태를 보니 일본은 안심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노동 운동을 두개의 부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영미식, 하나는 독일 유럽식이다. 일본은 다행이도 독일 유럽식인데 반해서 한국은 불행히도 영미식이다. 독일 유럽식은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노사정 3자의 합의에 의해서 임금이 오르는데 반해서 영미식은 노동 들의 투쟁에 의해서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한다. 투쟁에 의해서 상승하기 때문에 노사 분규가 격화되기 쉽고 격화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이 빨리 오르고 물가가 상승하고 물가가 상승하면 국제사회에서 쟁력을 상실한다. 그것이 코리아 리포트의 주된 이유입니다. 그렇게 자처럼 정확한 일본 사람들이 보 한 그 보고서의 내용이 그렇지 않다고 자신에게 말 할 수 있는 분이 계시면 지금 나오시기 바랍니다.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일본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보지 못한 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한국의 교회를 못 보았고 또하나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하는지를 보지 못하고 갔습니다. 왜 조사단 가운데 크리스찬이 없으니까. 신명기 7장7절에 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선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가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작은 이유 임이라. 선민이 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을 갖춰야합니다. 하나는 모든민족보다 작은 민족이여야 되고 또하나는 조상때부터 계속해서 외세에 의해서 고난 당하고 국내에 의해서 고난 당하는 고난의 피플이여야한다. 이 두조건을 만족시키는 두민족이 지상에 있습니다. 하나는 중동에 있고 하나는 극동에 있습니다. 1967년 중동전쟁이 일어났을때 6일 전쟁이라고 흔히 했죠. 그때에 이스라엘 국내에 있는 국민이 이백오십만이였습니다. 이백오십만이 아랍 세력권 일억 이 만과 맞붙어서 싸웠습니다. 이백오십만은 서울 시민의 사분의 일도 안되는 인구입니다. 그러니 세계사 들이 말하기를 이제 이스라엘을 졌다 지구상에서 나라도 없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겨도 6 만에 이겼습니다. 지금 세계 노벨상의 삼분의 일을 그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28.9%를 유태인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부의 삼분의 이에 유태인들이 직접 간접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6일 쟁이 일어났을 때에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은 다이안이라고하는 눈하나 없는 장군이였습니다. 그가 t.v에 나와서 3가지를 말하였습니다. 첫째 우리는 이 전쟁을 먼저 일으킨 것이 아니다. 아랍국가들에 의해서 하는 수 없이 인볼브되었다. 둘째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이긴다. 우리는 남이 모르는 최신 무 를 가지고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이안장군도 거짓말쟁이 아닙니까? 그래서 세계의 많은 무기상들이 저들이 언제 최신무기를 계발했나 의심을 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기자들이 이제는 그 최신무 를 공개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곳의 모든 장군들이 크게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그리고 오 손을 높이 들어서 자신들의 왼쪽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였습니다. 성경이 그들의 최신 무기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숫자로 세계의 선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숫자로 모든 것을 다 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중국에 백발백중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운동을 해도 중국에 이기는 종목이 많이 있지요. 일본에 이기는 종목도 많습니다. 일본은 한국교회를 얏볼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라 하는 것이 자기가 데리고 사는 부인과 마찬가지입니다. 집 서 보면 불만스럽고 나가서 보면 대견스럽습니다. 그와같이 한국교회가 안에서 보면 시원치 않고 분 도 많고 비리도 많고 밖에서 보면 한국교회가 괜찮은 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의 협 장로가 교회가 망해야 예수가 산다라는 책을 쓰지 않았습니까? 한국인의 신화라는 책에는 한국은 일본을 이길수있다라는 내용 가운데 7가지 조건을 들었는데 그중 한가지를 말하면 그것은 국민의 기질론인 것입니다. 우리는 북방 기마 민족의 후예이고 일본은 남방 농업 민족의 후예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업민족 몬슨지역에 사는 이들은 일단 기후에 순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손이 필요하므로 우두머 에 복종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회사 사장이 우로봐했을때 사원들이 모두 우로보는 민족은 일본밖에 없다고 합니다. 20세기에는 일본이 올라가는 세기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20세기는 하드워커 일 열 히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기였고, 동물에 비교하면 개미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드워커가 뜨는 때가 아니고 하드팅커가 뜨는 때입니다. 농업민족은 아주 순종적이고 집단적입니다. 그 데 기마민족은 거칠고 집단적이지 못합니다. 21세기는 거미의 시대이다. 21세기 하드팅커는 순종적인 농업민족에게서가 아니라 독불장군과 같은 말 안듣는 기마민족에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선교학에서는 한국교회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교과서를 쓸 수 없습니다. 7년전 엘에이의 어느 신학교에가\도서관에 박사학위논문을 보았는데 거의 다가 한국교회의 성장비결에 대한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였습 다. 한국교회가 없으면 박사학위도 못받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장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적으로 큰 교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의식화된 교회가 한국에 있습니다. 우리 강남향린교회는 제일 양적으로 큰 교회는 아니더라도 제일 의식적으로 개화된 교회에 속할 것입니다. 한국은 복음대국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세계의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서울 는 8500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단에 속하지 않은 독립교회가 600여개가 더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주변 즉 메트로 서울에는 15000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이래 한 도시가 가장 많은 회를 소유하는 기록이 될 것이고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외국인이 쓴 세계 20 교회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아시아편에 보면 1위부터 6위까지가 한국교회입니다. 세계 50대교회 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한국교회24개가 나와있습니다. 새벽기도 드리는 교회는 한국교회뿐입니다. 일조 드리는 교인이 400만이나되는 한국교회입니다. 미국, 일본 ncc 총무를 한국사람이 했습니다. 나다 연합교회의 총회장을 한국사람이 했습니다. 미국 ncc의 총회장을 지금 한국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세계 인구가 60%가 사는 인구 조밀지역입니다. 그러나 이지역 사람들은 서구 선교사들이 져온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이유는 서구 선교사와 함께 식민지화를 함께 하였기 때문 니다. 오늘은 세계 선교주일입니다. 이제 세계를 누가 교화해야 되는가? 우선 한국입니다.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지 않았던 한국입니다. 남의 나라를 식민화하지 않았던 한국이 이제 아시아를 세계를 교화할 차례를 맡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21세기는 아시아 태평양시대라고 합니다만은 특별히 젓가락을 사 하는 민족이 흥황하는 세기라고 합니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중국 한국 일본 중에서 내가 하나님이라면 기독교를 누구에게 맡길까? 중국은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일본은 불교국가입니다. 한국은 1500년동안 불교가 500년동안은 유교가 뿌리를 박았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독교를 한국민족에게 맡기셨다고 봅니다. 세계 종교가 태어난 제자리에서 성장한 이슬람 종교와 같은 것이 있고 또는 생겨난 곳에서 다른 나라로 가서 꽃핀 종교도 있습니다. 제나라에서 나서 꽃핀 종교는 가장 배타적이고 가장 후진적입니다. 그러나 여러민족을 거친 종교는 여러민족의 혼이 승화되어 있으며 그 가슴속에 용해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보다 더 너그러운 생각을 가져야 될 때입니다. 해외 선교사를 교단의 지원을 받고 나간 선교사가 6000명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지원 또는 자비로 간 선교 가 2배가 넘습니다. 그러니까 약 2만명의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한국교회를 바라보고 습니다. 우리는 이제 정말 세계교회의 중심지로 서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해외교포가 가장 많은 순 로 보면 1위가 중국, 2위가 이스라엘, 3위가 이태리, 4위가 한국입니다. 중국사람은 해외 나가면 비지 스합니다. 일본은 해외나가면 우동장사합니다. 한국사람은 물론 비지니스를 하지만 5사람만 모이면 회를 세웁니다. 그러므로 영국은 영토로서 해가 지지않았던 때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교회로 보아 계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민족이 썩었다해도 다 썩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 모든 사람들이 바알에게 절할 때에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7천명을 따로 뽑아 숨겨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그 썩지아니한 참신한 7천명을 통해서 이어가시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모두 다 부 했습니다. 그러나 각성한 교회도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예언자라고 하는 것은 전 국민이 되어서는 됩니다. 온나라에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각성한 사람이 한나라에 몇사람만 있으면 나라를 구할수 있는 것입니ㅏㄷ. 역사의 저울과 물리학의 저울이 다릅니다. 물리학의 저울은 양쪽에 메어 달리는 분량에 라서 저울의 기울기가 달라지지만은 중세의 역사의 저울에는 한쪽에는 카톨릭교회라는 막강한 세력이 달려있고 다른 한쪽에는 마틴 루터라는 작은 개인이 외롭게 매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편을 마틴루터라는 작은 개인에게 기울게 하셨습니ㅏㄷ. 강남향린교회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숫자는 적으나 그러나 여러분들의 각성함 신앙 깨어있는의식 그것이 우리 나라를 구할 것이고 아시아를 또한 구하게 될 것입니다. 한 나라에는 악의 전문가가 있다고 봅니다. 마약 밀구 유괴만 하는 사람들 반대 에 나라가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한쪽에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손해를 보면서 목숨을 걸고 라 붙는 소수가 있어야 이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부정과 나쁜 것으로 가득찬 미국이 바로 할 것 같습니까? 모든 세계의 악의 집합소 악의 생산지가 미국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쓰러지지 않고 티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고 하나님 앞에 나라를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어떤 소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아메리카 정신사를 연구하는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게 오늘 성령이 임하시어 성령강림 2번째주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긍휼
롬9:14-18 / 유재명 목사
오늘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는 것 아닌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면 사실 하나님께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도의 답변이 단호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입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시고 감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창1:26절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의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무엇인가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하나님의 작품으로 창조되었습니다. 땅에 충만하여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지난주에 있어졌던 말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잇어 오직 은혜이다 하나님의 주권섭리이다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무어라 합니까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합니다. 인간은 감히 왜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하나님의 불의하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한 사람은 미워하고 한 사람은 택하시고 한 사람은 버릴 수 있냐는 것입니다.
제법 인간은 정의를 말하며 하나님께서 감사함으로 문제를 찾아 보려 합니다. 하나님이 불의 하신 것 아닌가입니다. 구원은 조건이 아닙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이것을 말하는데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합니까 인간안에서 인과관계의 논리가 나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즉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런 사상이 구원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하려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에 6-13절에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택하시고 이스마엘은 버리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함께 리브안에서 잉테되어 있는 중에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신 이야기도 나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구원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결정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의 백성 삼으신 것은 행위이전에 결정난 은혜의 사건입니다. 이것를 불가항력적인 은혜 또는 예정론 혹은 선택교리라 합니다.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만세전에 구원자를 선택하셨다는 교리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택교리는 인간의 이성을 당혹하게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말도 안된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러실 수 있냐는 것입니다.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은 선택이 예정되었듯 버림도 예정되었고 천국가는 것이 결정되었다면 지옥에 가는 것도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선택과 유기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이중예정이라 합니다. 문제는 잘 지어진 인간들이 이 말씀을 그대로 수긍하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두 방향입니다. 그냥 믿어야 된다는 것과 무슨 말이냐 어느정도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장로교와 감리교사이의 교리적 이질감이 있는 것입니다. 이미 결정났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불의하신 것 아니신가? 여기에 사도는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까요?
잘난 인간인 내가 이해해야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 이해하고 삽니까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자동차를 다 이해하고 살지 않듯이 믿음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살리시고 한 사람은 죽이시고가 아닙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랑의 대상입니다. 다 죽어 있습니다. 일렬로 세워놓고 너는 살고 너는 죽고 너는 천국 너는 지옥이 아닙니다. 그냥 죽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미 진노의 대상이며 죽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구원의 은혜를 입히신 것입니다. 그 구원을 받고 보니 감격인 것입니다. 왜냐고 물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보면 다 믿어지고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무어라 합니까? 14-16절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역이며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원해서도 아닙니다. 달음질한다함도 아닙니다. 인간의 수고도 아니요 재주가 좋아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이니 이것을 믿으면 겸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입술에 고백이 있어집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있어져야 할 3대 고백은 주님에 대하여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나에 대해서는 나는 죄인입니다. 구원 받은자로서는 사명의 고백과 헌신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선택교리와 예정론은 인간의 이성으로 풀 수 없는 난제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믿어지고 감사가 나오며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미리아십니다. 야곱을 미리 아셨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바로를 먼저 아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모르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선택을 믿으면 모든 신앙은 주님이 이루신 결과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행위를 강조하며 이룰려 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구원역사는 하나님의 사건이고 하나님안에서만 믿음으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도 모세도 세움을 입은 자로 15절에서 말씀합니다. 구원의 역사에 동참자로 모세를 방해자로 바로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출생이나 바로의 출생도 하나님이 미리 관여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대한 구원사역 앞에 나는 어떤 자로 설 것인가
레위남자와 레위여자에게서 모세를 출생하게 하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세에게 은혜를 입히셨습니다. 긍휼을 입은 자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는 구원의 가치를 압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해서도 하나님을 부정하며 불신앙으로 빠져들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이 백성들을 광야에 전염병으로 죽게 만들겠다하자 모세는 이 백성을 멸하시면 이방인들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여호와의 신이 자기 백성을 버렸다하지 않겠습니까 하며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기념책에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 하며 영혼을 걸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양보하십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9:15절의 말씀입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이 여기리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많은 일들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어떠했습니까 여호와가 누구냐 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강팍해질데로 해진 바로에게 하나님은 열가지 재앙을 통해 바로를 굴복시킵니다. 18절은 말씀합니다. 바로를 강팍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악해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바로를 강팍하게 하셨다는 말은 못되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 강팍한 상태로 하나님이 유기하셨다는 의미가 더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성향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버려두면 악하고 강팍해집니다. 내안에 가인이 있고 내안에 야곱이 있고 내 안에 바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은혜를 주셔서 그 마음에 더 이상 강팍해지지 않도록 관여하십니다.
우리는 시마다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로 살아왔는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합니다.
세상에 가장 큰 긍휼과 은혜를 입은 사람은 모세도 아니요 바로도 아니요 바로 나입니다.
그 은혜는 내 마음 내 생각하나까지 간섭하시고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결국을 볼때까지입니다. - 아멘 -
하나님의 주권
로마서 9:!4-18 / 이승현 목사
주권이란 어떤 영역 내에서 최고의 결정권이나 그 자격을 말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주 안에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대상29:11),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그 주권을 행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롬9:19-21).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이 독립된 절대적인 의지로써 우주와 만물에 대하여 임의로 행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원자존하시고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조와 통치의 하나님이시며, 우주의 최고의 주권자로서 최고 결정권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시며 섭리주요 소유주가 되시기 때문에 피조물에 대하여 최고의 주권으로 우주 안에 일어나는 일들을 계획하시고 지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권적으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결정권도 최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1.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만물을 창조하기 때문에 만물의 제1원인자시고, 만물의 소유주시며, 만물의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만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운행하시도록 유지하시고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다스리심에 복종할 때만이 평안과 안전이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히1:13에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지으신 세상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질서에 순응할 때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나 자연과의 관계에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와 불순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훼손시키고 인류에게 고통이 찾아오게 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주권 앞에 순응할 때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온갖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절대 주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십니다.
단4:35에는 “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만유의 주재이기 때문에 아무 간섭도 받지 않으시고 임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출애굽의 과정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으로 바로의 마음을 다스리시며, 홍해를 가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리시고 메추라기를 먹이시며, 바위를 깨트려 생수가 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는 영적인 세상 뿐 아니라 자연계도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앞에 순종할 때만이 창조의 질서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으로 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절대적 주권으로써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약4:14-15에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처럼 부르기도 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의 역사를 이어가는 과정에서도 장자 에서를 대신하여, 야곱을 이삭의 언약의 계승자로 세우시기도 하십니다.
잠16:9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길을 좌우하는 궁극적인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잠 19:21에도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혜와 경험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해도 결국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진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는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인간의 절대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화와 복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나옵니다. 인간의 ‘주’ 되심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여 창조의 섭리 가운데 예비 된 모든 복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은 절대주권으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역사를 자신의 주권적 의지로 이루어가십니다. 즉 그리스도의 고난(눅22:42, 행2:23). 선택과 유기(롬9:15-16), 성도들의 구원과 성화(빌2:13), 칭의(롬3:24), 성도의 고난(벧전3:17) 등을 임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역사도 주장하시지만 성경은 인류구원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에게 전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타락 이후 인류의 구원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구약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오시마고 약속하시며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권자이실 뿐 아니라,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주권자 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나의 유일한 주권자로 인정하는 삶을 살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어주시는 모든 은혜를 맘껏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만을 나의 유일한 주권자임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인정합니다. 성령님만이 인생길에 유일한 목자이심을 확신합니다. 오늘 한 날도 우리를 유일한 주님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월 가정의 달에 우리의 가정들을 세상의 우환질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평강만이 가득한 가정되게 도와 두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