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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의 홈구장 몬주익 올림픽 스타디움의 겉모습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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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에서 설기현 선수를 본 우리 일행은 잠시 파리에 들렀다가 이천수 선수 경기를 보기 위해 스페인으로 발길을 옮겼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여장을 푼 우리들은 바르셀로나 버스 터미널에서 이천수 선수가 뛰는 누만시아의 연고지인 소리아로 가는 버스가 아침 9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소리아가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당일 아침에 가도 충분히 버스를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버스 티켓을 미리 예약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여겨 소리아행을 예약하지 못한 것이 곧바로 큰 재앙으로 다가왔다. 당일 8시 30분에 여유롭게(?) 도착한 우리 일행은 티켓 박스에서 소리아행 버스를 사려고 했다. 그러나 직원의 대답은 "Today's bus is full"이었다. 당황한 우리들은 인포메이션에서 바르셀로나 기차역에는 소리아행 기차표가 없는지 문의했으나 기차 티켓 역시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숙소로 돌아온 우리들은 소리아까지 갈 방법이 전혀 없다는 판단 하에 이천수 선수 경기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외국에 나가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결과치고는 너무 가혹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결국 바르셀로나를 연고로 하는 두 팀,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에스파뇰의 경기 중에 한 경기를 관전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알아본 결과 FC 바르셀로나는 원정 경기를 치르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에스파뇰이 홈구장인 몬주익 올림픽 경기장에서 오사수나와 함께 경기를 치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주저하지 않고 에스파뇰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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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과 오사수나의 경기가 열린 바르셀로나 몬주익 스타디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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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 사실 유럽 축구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터라 에스파뇰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바르셀로나에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바르셀로나로 와서 숙소인 한인 민박집 주인에게 물어봐서 알 정도였으니 유럽 축구에 웬만큼 관심이 있지 않다면 팀의 존재 여부조차 알지 못할 그런 팀인 것이다.
다만 에스파뇰이 바르셀로나를 연고로 한다는 사실을 민박집 주인에게 들었을 때, 언젠가 축구 잡지 기사를 통해 바르셀로나 더비에서 FC 바르셀로나의 상대팀이 에스파뇰이었다는 것을 읽은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만큼 까딸루냐 지방에서 주류팀인 FC 바르셀로나에게 항상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는 팀인 것이다.
레알 에스파뇰이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몬주익 올림픽 경기장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주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며, 경기장 맞은편에는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 올림픽 제패 기념탑이 건립되어 있었다. 여기서 황영조 선수의 기념탑을 볼 줄은 몰랐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알아보니 까딸루냐와 경기도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고, 경기도에서 이 기념탑을 세워준 것이었다. 어쨌든 올림픽 경기장인만큼 종합 경기장이며, 몬주익 언덕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기장이었다.
그러나 종합경기장이라는 단점이 있어서 그런지 서포터들은 새로운 경기장 건립을 위한 홍보물을 경기장 곳곳에서 관중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같은 연고지 라이벌인 FC 바르셀로나의 경우 멋진 전용구장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웬만한 팀들 역시 전용구장에서 경기를 하기 때문에 전용구장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경기 시작은 5시, 우리들은 4시 20분경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역시 예상대로 많은 팬들이 홈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모여들었다. 울버햄튼 때와 마찬가지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홈 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경기장 앞에서 인사를 주고받으며 오늘 경기에 대해 예상하는 이런 분위기는 거의 마을 축제나 다름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날씨가 추워서 유니폼을 입고 그 위에 점퍼를 많이 입었으나 거의 모든 관중들의 목에는 홈팀의 머플러가 매여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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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의 독특한 개찰 시스템 ⓒ이건
| 경기 시작 전까지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개찰 시스템이었다. 프리메라 리가 단 한 경기만을 보고 모든 개찰 시스템이 그러할지는 모르겠지만, 에스파뇰의 시스템은 무척이나 독특했다.
티켓을 보게 되면 바코드가 입력되어 있는데, 관중들이 들어갈 때 개찰구에 있는 바코드 리더기에 바코드를 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관중이 제대로 된 입구에 들어왔는지, 제대로 된 티켓을 가지고 왔는지 등이 자동으로 체크되며 관중수 역시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관중수에 대한 의혹이 적잖이 존재하는 국내에서 도입하면 정말 괜찮을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였다.
경기장에 들어서고 골대 뒤 3층 왼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우리 일행은 경기장에 60%정도 관중이 들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략 2만7천에서 3만명 정도 들어온 것 같았다. 관중들의 분포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었는데, 앞서 잉글랜드와는 달리 깃발을 가져온 관중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져온 깃발을 흔들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자리 앞에 있는 안전 지지대에 묶어서 팀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관중들이 많았다.
또한 잉글랜드와는 다른 점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서포터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있던 자리 맞은 편에 약 1000명 정도의 에스파뇰 서포터들이 있었다. 그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노래를 부르면서 팀에게 힘을 실어줬으며,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서포팅을 하였다.
리딩의 존재가 있어서 리더 한 사람이 확성기를 가지고 계속 서포팅 곡을 주도하면서 서포팅을 하는데 계속 듣고 있노라면 흡사 중동에서 경기할 때 항상 느끼는 바로 그것, 관중 한명이 마이크를 가지고 경기 중 내내 쏼라쏼라 부르는 노래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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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4-1로 홈팀 에스파뇰의 승리였다. 1골을 먼저 내주고 내리 4골을 넣어 이긴 역전승이기에 더욱 홈 관중들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비록 아는 선수는 에스파뇰의 9번 델 라 페냐 정도밖에 없었지만 확실히 수준 높은 경기여서 홈 관중이 아니었던 우리 일행들에게도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우리의 K리그가 격렬하고 화이팅이 넘치며 빠른 전개가 볼거리인 반면 세밀함이 조금 떨어진다는 지적들을 하는데, 프리메라 리가의 경기는 격렬함은 덜하지만 세밀함과 더불어 빠른 경기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라는 찬사가 헛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서포터들이 서포팅을 주도하면서 간간히 관중들과 대화하는 듯한 서포팅, 즉 서포터들이 뭐라고 크게 외치면 전 관중들이 다시 크게 화답하여 주는 - 콘서트 현장에서 가수가 "예!예!" 라고 하면 청중들이 똑같이 "예!예!"라고 화답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서포팅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역시 100년의 리그 전통에서 파생되어 나온 서포팅의 전통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경기 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몬주익 언덕을 따라 에스파냐 광장으로 내려오면서 에스파뇰 홈 팬들의 환희에 찬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어쩌면 까딸루냐 지방에서 에스파냐 사람들을 대표하는 에스파뇰의 대승이 지역사회의 주류로 있는 까딸루냐 사람들에 의해 맺힌 일종의 한을 풀어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FC 바르셀로나라는 거대 클럽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자신들의 팀이 목소리를 크게 한번 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의 환희가 아닌가 싶었다.
비록 그토록 보고 싶었던 FC바르셀로나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프리메라 리가의 경기를 보고, 그리고 앞서 보았던 잉글랜드와 또 다른 축구 문화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는 점에서 좋은 관전이었던 것 같다.
스페인에 이어 다음으로 우리가 찾은 곳은 히딩크 감독과 이영표,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이었다.
-> 3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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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k리그도 어여 전용구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