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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바라본 PSV 아인트호벤의 홈구장 필립스 스타디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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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설정했던 지독한 알람 소리에 잠을 깬 우리들은 서둘러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오늘은 1월 22일, 아인트호벤으로 이동해 이영표,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PSV의 홈경기를 보기 위해서다. 짐을 싸고 숙소를 나와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향해 20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걸으면서 머리 속에는 단 하나의 걱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난 번 이천수 선수를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소리아로 이동했을 때의 일이 다시 일어나면 어쩌나하는.. 그 때는 소리아가 작은 도시라 방심하고 버스나 기차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갔다가 결국 교통편을 구할 수 없어서 이천수 선수의 경기를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현지 사람들의 말을 믿고,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막상 갔더니 표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약 40분을 걷고 난 후 도착한 암스테르담 중앙역. 표는 여유가 있었고, 표를 끊은 다음에 기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단 3분이었다. 우리는 그 짐을 들고서, 메고서 열심히 플랫폼을 향해서 달렸다. 다행히 기차는 출발하지 않았고 우리는 간신히 아인트호벤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담을 수 있었다. 기차 안에 앉아서 내가 했던 걱정이 기우였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침 겸 점심으로 준비했던 빵을 베어먹으면서 아인트호벤으로 달려갔다.
1시간 30분을 달려서 어느 정도 아인트호벤에 다다랐음을 느꼈을 때 차창 밖으로 커다란 경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경기장 곳곳에 걸려있는 PSV의 깃발들을 보고 단번에 PSV 아인트호벤의 홈구장인 필립스 스타디움임을 알 수 있었다. 유럽에 와서 몇 곳의 경기장을 다녀봤지만 뭔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 곳은 이 필립스 스타디움이 처음이었다.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뛰고 있으며, 월드컵 4강의 영웅 히딩크 감독이 맡고 있는 팀이라서 그러한 것인지도...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보통 매 시 58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1시간 반 동안 달리면 도착하는 아인트호벤은 생각보다 굉장히 작은 도시였다. 중심가를 돌아다니는 데에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히 다 볼 수 있었고, 30여분만 돌아다니면 도시 전체를 다 볼 수 있을만한 크기의 도시였다.
사람들은 거의 다들 친절하였으며, 특히 주요 관광지가 아니라서 동양인들이 별로 오지 않는 도시였기에 사람들이 다들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구가 20여만명이고, 그나마 넓은 지역에 걸쳐서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시내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인구는 더욱 적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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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porter’s Home에서 담소를 나누는 PSV서포터들 ⓒ이건
| 아인트호벤 역에서 필립스 스타디움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 역과 스타디움의 중간 위치에 숙소를 잡은 우리들은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인 5시 30분에 경기장으로 향했다.
숙소와 경기장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5분 거리. 경기 시작 2시간 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이 경기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을 보자 바로 “코리아”라면서 계속 말도 걸고, 이영표, 박지성 선수에 대한 칭찬을 계속적으로 해줬다.
특히 경기장 주변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바로 ‘Supporter’s Home’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서포터들의 모임 장소였다. 약 6~70여평 되는 공간에 맥주와 커피, 그리고 여러 가지 먹거리들을 팔면서 사람들이 PSV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자기들의 화합을 다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들어섰을 때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일제히 우리 일행들에게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앞에서 말했다시피 동양인이 드문 곳인데다가 축구를 보러 온 관광객이더라도 Supporter’s home으로 당당하게 들어오는 동양인들은 잘 없기 때문이었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우리에게 한국에서 왔냐면서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보통 유럽을 돌아다니면 현지인들이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냐고 묻는데, 한국인이냐고 물어오는 경우는 그곳이 처음이었다. 그러기에 이러한 분위기가 약간은 신기하면서도 박지성, 이영표, 히딩크 감독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쨌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Supporter’s Home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현지인들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바로 근처에 있는 PSV Fan Shop으로 자리를 옮겼다. 앞서 스페인에서 봤던 FC 바르셀로나의 공식 샵인 FCB Mega Store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였지만 여타 다른 샵들에 비해서는 컸다.
Supporter’s Home과 비슷한 규모의 Fan Shop은 PSV의 플래그, 머플러, 각종 유니폼에서 팬시 용품들까지 굉장히 다양한 물품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박지성 선수의 얼굴이 새겨진 머플러였다. 이미 이영표 선수 것은 다 팔리고 단 하나 남은 박지성 선수의 머플러를 사면서 이들이 선수를 이용한 마케팅을 얼마나 잘하며, 그리고 그러한 제품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회 분위기를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Fan Shop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히 자식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자식들보다 더 열을 올리면서 물건을 구경하고 구매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러한 모습들이 자식들에게도 자기 팀에 대한 애정으로 비춰지고 계속적으로 팀을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아끼는 모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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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V Fan Shop에 진열되어 있는 이영표의 유니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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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Shop에서 나온 우리들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미디어 룸으로 들어가서 노트북을 켜고 여러 가지 정리를 하고있던 우리들은 미디어 룸 앞쪽에 한 동양인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당연히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한국말로 말을 건 우리들은 상대방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시간에 대화를 나누느라 서로 통성명은 하지 못했지만, 이 일본인은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으며 일본 축구 잡지에 네덜란드 리그에 관해서 칼럼을 쓰고 있는 프리랜서 칼럼리스트였다. 이날 PSV의 경기를 보고 난 후에 바로 로테르담으로 이동하여 페예노르트의 경기를 보러 간다고 하였다. 덧붙여 일본에는 유럽 각국리그를 담당하는 프리랜서 칼럼리스트들이 다수 존재한다고 알려주었다.
우리 선수들이 뛰는 경기에 단 1명의 기자나 취재진들이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보았을 때 유럽의 각국 리그마다 칼럼을 쓰는 프리랜서 기자들이 다수 존재하며, 그들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대단한 관심을 보이는 팬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일본의 상황은 너무나 부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인 기자와 유럽에 나와있는 한일 양국의 선수들과 양국의 축구 현황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말과 문화가 다른 우리들 역시 축구로 하나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본인 칼럼리스트와 얘기를 나누고 경기 시작 시간이 다되어서 스탠드로 올라간 우리들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장 양쪽 상단 코너 부분만 빼놓고 가득채운 관중들은 모두 3만 1천여명이었다. 인구 20여만명의 도시에 3만여명의 관중들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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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경우 A매치를 하더라도 보통 3~4만명, 빅게임인 경우에나 5~6만명이 모이는데 특히 서울 같은 경우에는 6만명이 모이더라도 서울 전체 인구의 0.6%만이 모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이 경기의 경우에는 지역 전체 인구의 15%가 이 경기장에 모여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역민들의 열정과 관심은 비단 한 두 해에 걸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수 십년을 걸쳐서 내려온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사랑했고, 아버지가 사랑하고 아들이 사랑할 그러한 팀과 그러한 축구 문화. 바로 유럽 축구가 발전할 수 밖에 없는 큰 원동력일 것이다.
경기는 4-0. PSV 아인트호벤의 완승으로 끝났다. 네덜란드 리그는 팀간의 수준차가 많이 나서 대개 리그 우승은 PSV 아인트호벤, 아약스 암스테르담, 그리고 페예노르트 이 세 팀이 독식하다시피 하는데 객관적인 전력상 오늘 PSV의 상대인 NAC 브레다의 경우는 한 수 아래이기 때문에 경기의 승패보다는 얼마나 많은 골차로 PSV가 승리하느냐가 경기의 관건이었다. 이러한 경기에서 우리의 이영표, 박지성 선수가 공격포인트를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활발한 모습으로 공격 가담율이 높았던 이영표 선수는 공격포인트 쌓기에 실패하였으나 안정적인 수비와 위협적인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박지성 선수의 경우 오른쪽, 왼쪽을 오가면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으며, 후반 25분 위협적인 왼쪽 드리블 돌파 후 중앙으로 강하게 찔러준 공이 상대 수비수의 발에 맞으면서 팀의 세 번째 골을 견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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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기를 보여줬던 박지성 ⓒ이건
| 이 날 경기에서 모든 이의 시선을 끈 인물은 바로 PSV의 마르크 반 봄멜이었다. 이 경기를 보면서 우리 일행은 왜 그토록 세계의 명문 클럽들이 반 봄멜을 데려오기 위해 PSV에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공수를 조율하는 능력, 재치가 번뜩이는 플레이 하나하나 등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고, 관중들을 매료시켰으며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 나라에도 굉장히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반 봄멜 같은 선수들이 많이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이영표, 박지성 선수와의 인터뷰를 위해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 모든 PSV 선수들이 같은 선수단복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난 2002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로 하여금 선수단복을 입게 하여 팀웍에 보탬이 되게 한 모습이 PSV에서도 변함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믹스트존에 있으면서 특이했던 것은 지난번 울버햄튼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경기 후 홈팀 선수들의 퇴장 방식이었다. 우리 K리그의 경우, 홈팀 선수들이든 원정팀 선수들이든 경기 후 샤워를 하고 각각 구단 버스를 타고 함께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 유럽에서는 경기를 할 때 경기장에 오는 것도, 그리고 경기 후 간단한 샤워와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에도 원정팀은 당연히 함께 이동하지만 홈팀 선수들은 각자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장 입장할 때 마치 영화제 시작할 때처럼 많은 팬들이 그 선수를 보기 위해 기다리다 선수가 경기장으로 들어갈 때 응원의 메시지도 전달하고 힘을 북돋아 주며 경기 후에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팬들이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팬들에게는 굉장히 큰 기쁨일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들로 우리나라에서는 그러고 있지 않지만 큰 문제만 없다면 조금 방식을 바꾸는 것도 팬 서비스 측면에서 좋을 것이며, 팬들의 사랑은 결국 팀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영표, 박지성 선수 그리고 히딩크 감독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선수들이 뛰고 있으며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현지인들이 우리에게 잘해주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영표, 박지성 선수가 아인트호벤에서 보여주고 있는 멋지고 좋은 플레이들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하루를 마감했다.
네덜란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가 간 곳은 ‘축구의 엘도라도’ 이탈리아였다.
-> 4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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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크흐... 가보고 싶다. 여긴 정말 한국인으로서 친근해질 수 있을 것 같은..ㅠ.ㅜ 여긴 정말 당장 가보고 싶은..ㅠ.ㅜ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