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05) -평창에서 싹트는 굴기와 평화의 메시지
10여 년 전 초여름에 동문부부들과 평창을 찾았다. 아직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전, 그때 적은 소묘는 이렇다.
‘HAPPY 700(평창군의 BI로 해발 700미터 지점이 가장 행복한 고도라는 의미)이라 내세운 평창은 천혜의 지세와 주변 환경이 이에 걸맞게 쾌적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먼저 찾은 곳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갖가지 화훼들이 잘 가꾸어진 허브나라,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꽃들의 정원에서 향이 감미로운 허브차를 마시고 꽃밭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줄을 서는 모습이 평화롭다. 첫 번째 코스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메밀 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생가와 문학관을 돌아보았다. 강원도는 메밀과 감자의 특산지인데 때에 맞춰 아름답게 핀 감자 꽃이 눈길을 끌고 소설 속의 무대인 봉평 장터 이웃마을에는 메밀이 잘 자라고 있다. 1907년에 태어나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효석의 생가를 둘러보고 광장으로 나오니 소설 속의 소금장수 허생원이 타고 다닌 당나귀가 힝~ 소리를 지르며 자기들도 보고가라고 순례자를 붙잡는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고 적힌 소설 속의 표현기법을 익히면 좋으리라고 여기면서 문학관을 나섰다. 12시 반, 문학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봉평 막국수집이 우리를 부른다. 음식점에서 내 놓은 편육과 동동주, 수북하게 담은 막국수로 점심식탁이 푸짐하였다.’
이처럼 평화로운 고장에서 온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는 겨울올림픽이 연일 화려한 무대를 펼친다. 각기 102개의 금⸱은⸱동메달이 걸린 이곳은 세계를 주름잡는 청년들의 불꽃 튀는 경연장, 폐막을 나흘 앞둔 현재 각 80여개의 메달 주인공들이 가려졌다. 그중 21일 현재 노르웨이가 13개, 독일이 12개의 금메달을 가져가고 캐나다가 뒤를 잇는다. 인구 500만의 노르웨이가 세계의 강호들을 제치고 선두에 나서는 모습이 놀랍고 대한민국은 금 4, 은 3, 동 2개로 종합 8위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첫 금메달을 딴 남자 쇼트트랙 1,500미터 임효준 선수의 의젓한 포즈가 자랑스럽고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험하고 좁은 산비탈 코스를 빛의 속도로 활강하여 통쾌한 금메달을 명절 선물로 안겨주었다. 갓 20세의 최민정이 여자 쇼트트랙 500미터 은메달 실격의 아픔을 딛고 1,500미터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이 당당하고 3,000미터 여자 쇼트트랙 계주에서 명승부를 펼친 끝에 금메달을 획득한 다섯 명의 낭자들이 아름답다. 다른 곳에서 이를 지켜본 아내는 감격에 겨워 전화를 걸어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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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쇼트트랙 3,0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자랑스런 낭자들
두 번이나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미터를 제패한 이상화 선수가 일본의 고다이라 마오 선수와 선의의 경쟁 끝에 은메달을 따 전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과 혜성처럼 나타난 차민규 선수가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미터에서 금메달에 100분의 1초차로 뒤진 은메달도 값지다. 중학교 때부터 서로를 의식한 이상화와 고다이라 마오가 치열한 접전 후 어깨를 감싸 안으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진한 우정을 선보인 것도 흐뭇하다. 한일의 지도자들이 이런 모습을 본받으면 좋으련만.
예선에서 1위로 4강에 오른 남자 팀추월 선수들은 준결승에서 뉴질랜드를 꺾고 결승에 올라 유럽의 강자 노르웨이와 숨 막히는 접전 끝에 소치 대회에 이어 연속 은메달의 기염을 토하였다. 세 번 연속 올림픽 메달을 딴 베테랑 이승훈과 10대의 신예 김민석, 정재훈의 찰떡 팀워크와 거침없는 질주를 바라보며 앞날을 짊어질 젊은 세대의 희망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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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팀워크를 과시한 팀추월 멤버들
여자 컬링에서 8승1패의 뛰어난 실력을 과시하며 10개국 중 1위로 준결승 진출의 쾌거를 일군 의성 낭자군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준결승 상대는 일본, 10년을 함께 닦았다는 끈끈한 팀워크로 결승에 올라 큰일을 내기 바란다. 뉴욕타임스는 20일 한국 컬링 성지 의성 주민들의 체육관 합동응원 현장을 이렇게 전했다. “갈릭 걸스(Garlic Girls)가 올림픽을 사로잡았다. 대표 팀의 고향 의성도 사랑에 빠졌다.” 온 국민이 사랑에 빠졌다.
평창, 조용하고 평화로운 고장에서 도도히 피어오르는 젊은이들의 굴기와 포효가 예사롭지 않다. 당나귀 힝~ 울고 산허리 온통 메밀밭이던 산골에 초고속 열차 타고 온 손님들이 붐비고 때에 맞춰 북녘에서 내려온 선수단과 응원단의 함성도 뒤섞인다. 이를 바탕으로 짙게 드리운 한반도의 전운을 걷어내고 온 세계에 참된 평화와 우정, 행복의 디딤돌 쌓으라.
* 1960년대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북한의 한필화 선수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한반도 최초의 은메달을 딴 적이 있는데 이번에 참가한 북한선수들의 메달소식은 감감하다. 남북이 하나 되어 더 많은 감동을 누릴 수 있으면 좋으리라. 팀워크가 생명인 여성 팀추월의 왕따 논쟁은 옥의 티, 칼바람 속 미화원들은 방한복도 없이 추위를 견디는데 고가의 롱 패딩을 걸친 선량들의 허세가 볼썽사납다. 전통시장이 인기 있고 대회운영도 매끄럽다네. 걸림돌은 사라지고 디딤돌은 불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