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1.<순교자 성월> 연중 제22주일(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4,1-2.6-8 야고1,17-18.21ㄴ-22,27 마르7,1-8.14-15, 21-23
하느님 중심의 참 좋은 사람들
“경청, 실천, 순수”
“주여, 당신 장막에 묵을 이 누구오리까
거룩한 당신 산에 살을 이 누구오리까
허물 없이 살아가며 의를 하는 이,
마음 속에 진리를 품은 사람이외다.”(시편15,1-2)
오늘 화답송 시편이 누가 주님 장막에 묵을 수 있을지, 주님 거룩한 산에서 지낼수 있을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게 합니다.
“왜 전부 일본만 가노,
제발 좀 오세요.
심지어 동해도 폭망, 거품이 빠져도 이정도까지!”
새벽 열어본 한 동영상 제목에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구호로가 아닌 실력을 키워 일본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건 국수적인 사고가 아니라 애국심의 발로입니다. 우리의 관광지를 이용해 주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일본은 언제나 경계해야 합니다. 일본관광을 선호하는 까닭은 우리가 불친절한데 저들은 친절하고, 우리가 바가지 요금인데 저들은 정찰제이고, 우리가 불결한데 저들은 청결하다 하니 반성해야 합니다.
고려, 조선 역사를 보면 왜구의 침입은 일상적이었습니다. 임진왜란시 성웅 이순신 장군이 버텨주지 못했다면 조선은 물론 명나라의 중국도 위태했을 것이며, 2차 대전시 중국이 버텨주지 못했다면 미국도 큰 곤경에 처했을 것입니다. 청일전쟁에서는 청나라를, 러일전쟁에서는 러시아를 이긴 일본은 지금도 늘 경계 대상 1호입니다. 참고로 일본 국적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31명입니다. 작금의 의료대란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호소도 절절합니다.
“어느 여당 인사의 말이다, 국가를 이루는 3요소가 ‘국민, 주권, 영토’인데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주권이 없었기에 나라가 없었으므로, 8월15일은 건국절이란다. 인용하기에도 민망한 말이라 잠시 주저해 보지만 그럼 지금은 국민이 있는가 묻고 싶다. 국민이 없는 의료정책을 펼치는 이 시국에 과연 나라가 존재하는가?”
오늘은 9월 첫날, 달력을 넘기는 순간 참 많은 과제를 부여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참사람되어 사는 보람과 기쁨을 충만히 느끼는 9월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바야흐로 9월은 수확의 계절,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10월, 묵주기도 성월, 11월, 위령성월에 이어지는 대림시기, 참으로 풍요로운 영적수확을 위해 부지런히 성실히 치열히 살아야 할 날들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은 특별히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 103위와 순교 복자 124위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굳은 믿음을 본받고자 하는 달이요, 특히 순교 성지 순례를 권하고 싶습니다. 순교적 삶에 항구하는 것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자랑스런 의무이기도 합니다. 제 고향집 충남 예산의 구암리 카페 인근의 솔뫼성지, 해미성지, 신리성지, 그리고 수덕사와 윤봉길 의사 생가와 추사 김정희 생가가 볼만합니다.
교황님의 9월의 기도지향도 절박합니다. “우리 각자는 지구와 환경재해와 기후변화의 희생자들의 울부짖음을 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세상의 보호를 위해 온갖 개인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도지향입니다. 또 오늘 9월1일 첫날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기도 합니다. 열정에 넘치는 교황님의 담화문 극히 일부만 소개합니다.
“피조물과 함께 희망하고 행동하십시오. 피조물이 진통을 겪으며 탄식하는 가운데 기다리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역사속에서 우리 지상의 삶만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주인이시며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사랑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우리의 미래, 지극히 복된 종말, 평화 가득한 낙원인 지구가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자 예수님 안에서 참으로 성부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거룩한 삶을 삽시다. 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에, 우리 삶은 하느님을 위한, 인류를 위한, 피조물과 함께 피조물을 위한 사랑의 시가, 노래가 될 수 있고, 거룩함으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에 우리에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과제가 부여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랑의 시로, 사랑의 노래로 사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랑하는 하느님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부를 때 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 있느냐?”
그대로 오늘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이 더욱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도록 우리를 북돋웁니다.
“내가 너희에게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도 안되고 빼서도 안된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모세에 이어 야고보 사도의 거듭된 경청과 실천의 충고가 참 은혜롭습니다. 우리의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단숨에 읽혀지는 금과옥조의 말씀입니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빛의 아버지께서 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의 본질은 진리의 말씀 입니다.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과 하나될 때 참사람이 될 수 있고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없는 신심을 지니고 살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도 이런 신심의 은총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오늘 몇 현자의 말씀입니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기보다 남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도록 마음을 지키라.”<다산>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그 이유를 살피고, 그가 만족하는 바를 관찰하라.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수 있겠는가? 어떻게 숨길수 있겠는가?”<논어>
“‘존재하는 것은 나타내는 것이다.’ 히브리 철학자이자 신비가 아브라함 헤쉘의 말이다. 한 인간의 존재는 본인이 알든 모르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그의 언행이 그대로 어김없는 자기증언인 것이다.”<어느현자>
답은 단 하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만든 조상들의 전통이나 관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이요 말씀입니다. 참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오물통과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다음 어리석은 무지의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의 위선자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하느님을 참되이 섬기는 것은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 심어진 진리의 말씀을 공손이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부단한 말씀을 통한 정화은총이, 성화은총이 마음을 순수하게 합니다. 주님의 오늘 복음 말씀이 참 통쾌합니다. 우리를 더럽히는 것들에 대해 번호도 달아봤습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1.나쁜 생각들, 2.불륜, 3.도둑질, 4.살인, 5.간음, 6.탐욕, 7.악의, 8.사기, 9.방탕, 10.시기, 11.중상, 12.교만, 13.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오물통같은 마음이요 이런 오물들이 배설될 때 세상은 악취 진동하는 오물통같은 세상이 됩니다. 이런 주님의 진리 말씀을 깨달아 실천해 가면서 날로 정화되어 순수해지는 마음에, 자유로워지는 마음입니다. 세상은 우리 마음의 축소판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영어 말마디입니다.
“As you are, so is the world(네 정도만큼의 세상이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나를 탓해야 합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그만큼 변합니다. 참으로 부단한 하느님 중심의 말씀공부와 실천의 생활화가 절박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물통 세상을 탓할게 아니라 오물통 마음의 정화와 성화가 우선이요,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마음의 정화와 성화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