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 영성 제530차 기도모임
(2023년 1월 15일 - 21일)
- 주간 기도 : 「하느님 뜻의 역사 안에서의 영적 순례」를 기도하시고 기도하십니다.
2. 독서와 묵상
4) 천상의 책 제3권(p84-88)
3권 47장 : 하느님의 뜻을 따라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영혼의 능력
(1900년 3월 7일)
3권 48장 : 은총의 표상인 태양
(1900년 3월 9일)
47
1900년 3월 7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영혼의 능력
1 내가 자신의 몸 밖에 나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오늘 아침, 곳곳으로 두루 돌아다닌 후에야 비로소 복되신 예수님을 찾아내었다. 다행히 어느 성당으로 들어갔기에, 거룩한 제사가 봉헌되고 있는 거기 제대에서 그분을 찾아내었던 것이다. 나는 곧장 그분께로 달려가서 포옹하면서 이렇게 말씀 드렸다.
2 “드디어 당신을 찾아내었군요! 당신께서는 제가 피로해질 때까지 이리저리 찾아다니게 하신 채 바로 여기에 계셨군요!”
3 그분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느 때처럼 다정하신 어투가 아니었다). “이 아침에 나는 매우 슬프다. 괴로움을 완화하려면 징벌의 몫을 갈라 나눌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4 나는 즉시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 사랑이시여, 그건 별로 큰 일이 아닙니다. 지체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십시다. 그 쓰라린 고통을 제게 부어 넣으시면 당신께서는 거기에서 풀려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5 그러자 그분께서는 황공하게도 내가 말씀 드린대로 당신의 고통을 내 안에 부어 주셨다. 그 후에 나를 꼭 껴안으시고는 마치 무거운 짐에서 놓여나신 듯이 이렇게 덧붙이셨다.
6 “내 뜻을 따라 사는 영혼은 나의 능력 속으로 아주 깊이 들어오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꼼짝못하도록 나를 묶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기 원대로 내 노여움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그렇다, 너다. 바로 너다. 너야말로 얼마나 여러 번 나를 묶곤 했는지 모른다!”
7 이 말씀을 하시면서 그분은 평소처럼 인자하고 다정한 표정을 지으시는 것이었다.
48
1900년 3월 9일
은총의 표상인 태양
1 어떤 일 때문에 좀 당황한 나는 이 심적 동요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내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복되신 예수님께서 그런 내 뜻에 반(反)하여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
2 그래도 알고 싶다고 우기자 그분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떠돌아다니고자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내 뜻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빛을 벗어나서 어둠 속에 갇힌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3 그분께서는 내가 알고자 하는 것에서 주의를 딴 데로 돌리시려고 나를 몸 밖으로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 말씀의 주제를 바꾸어 이렇게 덧붙이셨다.
4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배은망덕하게 구는지 보아라! 태양은 그 빛으로 땅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두루 채우기에 그 빛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지역이 없으니, 그 은혜로운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고 투덜거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5 사실이 그러하니, 태양은 만인에게 빛을 주려고 만물을 채우면서 이를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태양의 손에서 빠져나가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사람만이 태양빛을 누리지 못한다고 투덜거릴 수 있다. 그런데도 태양은 자비로운 일을 계속하기에, 그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번쩍이는 섬광들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6 그와 같은 것이 나의 은총이니, 태양은 이 은총의 표상이다. 그것은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넘쳐흐른다. 가난하건 부유하건, 무지하건 똑똑하건,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가리지 않는다. 이를 누리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진리의 빛과 내 은총의 영향력이 한낮의 태양과 같이 온 땅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7 그러나, 눈을 감고 이 빛 속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이 빛을 벗어나 해로운 강물과도 같은 그들의 죄악으로 내 은총에 반항하면서 고의로 어두운 지역의 잔인한 원수들 가운데서 사는 사람들을 볼 때, 내 마음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그들은 수많은 위험들 속에 몸을 드러내고 있다. 빛 속에 있지 않으니 자기네가 벗들 가운데 있는지 적들 가운데 있는지도 확실히 모르고, 따라서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위험들로부터 몸을 피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8 오, 만일 태양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데 인간이 태양을 모욕한다면, (어떤 이들은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게도 태양을 성나게 하면서 그 빛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들 자신의 눈을 뽑아 버리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면 더 확실하게 암흑 속에서 살 것이니까). 태양은 빛을 보내는 대신, 탄식하며 슬픔의 눈물을 흘림으로써 대자연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9 그런데 인간은 구체적으로 보이는 빛에 반감을 느끼며 그런 짓을 하는 한편, 나의 은총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정도로 극단으로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내 은총은 언제나 친절하게, 그들의 무분별이라는 암흑과 어리석음 한복판에도 늘 섬광처럼 번쩍이는 빛을 보내곤 한다. 내 은총은 아무도 버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고의로 벗어나는 것은 인간이기에, 은총은 그 자신의 빛을 번쩍이면서 은총 안에 있지 않은 인간을 애써 뒤따라가기도 하는 것이다.”
10 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 인자하신 예수님께서는 극도로 우울해지셨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분을 위로하면서 당신 고통을 내 안에 부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11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덧붙이셨다. “내가 너에게 부담을 주더라도 나와 함께 참아 다오. 때때로 나는 인간의 배은으로 인한 비탄을 내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말로 털어놓을 필요를 느끼곤 한다. 이들로 하여금 극도의 모욕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고 있는 내게 보속을 바칠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12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주님, 제가 바라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주님 고통의 한몫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13 여기서 좀더 말씀드리려고 했으나 그분께서 모습을 감추셨고, 나는 내 몸속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묵상 후나눔의 댓글을 꼭 남겨주시기바랍니다.기도와 묵상을 함께 동참하여 나누고,출석의 표식이며,미사 봉헌의 은총을 받으시게됩니다.
- 직접 모여서 기도 모임을 할 때 천상의 책을 읽고 묵상하며 간단하게 나눔의 시간을 가지는 곳은 이곳입니다. 다른 곳(수난의 시간들, 동정마리아, 영적 순례)에서는 느낌을 나눌 때도 있지만 시간이 없으므로 기도와 읽기만 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갑니다. 온라인에서는 혼자서 기도를 하니 수난의 시간들, 동정마리아, 영적 순례를 읽고 묵상 후 느낌을 댓글로 적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가 나눔을 하는 ‘천상의 책’에서는 댓글을 꼭 남겨 나눔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곳에 댓글을 남기신 기도모임 회원께서는 ‘천상의 책’에서 다시 댓글을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댓글을 남기신 것으로 출석의 표식과 미사 봉헌의 은총을 받으시는 것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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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에 있는 모임의 끝맺음-마침기도로 가시어 마침기도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첫댓글 6 “내 뜻을 따라 사는 영혼은 나의 능력 속으로 아주 깊이 들어오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꼼짝못하도록 나를 묶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기 원대로 내 노여움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그렇다, 너다. 바로 너다. 너야말로 얼마나 여러 번 나를 묶곤 했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영혼은 에수님의 능력속으로 아주 깊이 들어가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곰짝못하도록 하는 소중한 뜻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사랑합니다!하느님의 뜻이시여,오셔서 저의 정신 안에서 생각하소서.
어머니를 통하여 에수님께 저희들을 새롭게 봉헌합니다.
하느님께 사랑과 흠숭,찬미와 감사,기쁨과 영광을 드립니다.
12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주님, 제가 바라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주님 고통의 한몫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 또한 기꺼이 받아들이렵니다. 특히 당신께서 겪으시는 고통의 쓴 잔에서 단 한 방울이라도 마실 수 있게 되기를 청합니다. 부디 당신의 그 허다한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게 되기를! 피앗!
“3-47,6 내 뜻을 따라 사는 영혼은 나의 능력 속으로 아주 깊이 들어오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꼼짝못하도록 나를 묶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기 원대로 내 노여움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그렇다, 너다. 바로 너다. 너야말로 얼마나 여러 번 나를 묶곤 했는지 모른다!””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하느님 뜻 안에 녹아 들어가 있는 영혼이기에, 우리들도 예수님께 피앗 미히를 즉시 자주 끊임없이 하면서 하루 빨리 하느님 뜻 안에 녹아 들어가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고통과 노여움을 잠재우게 되기를 봉헌합니다.
9. 내 은총은 아무도 버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