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금강산
신좌모(申佐模)
우뚝우뚝 뾰족뾰족 괴상하고 기이하여
사람과 신선, 귀신과 부처 모두 모여 있는 듯
평생에 금강산 위해 시 짓지 못함 애석했는데
금강산에 와서는 시 쓰는 일 그만두었네
長安寺(장안사)
矗矗尖尖怪怪奇(촉촉첨첨괴괴기) 人仙鬼佛總堪疑(인선귀불총감의)
平生詩爲金剛惜(평생시위금강석) 及到金剛便廢詩(금도금강편폐시)
[어휘풀이]
-長安寺(장안사) : 강원도 회양군 장양면 금강산 장경봉에 있던 절.
-堪疑(감의) : 의심해 볼 만하다.
-廢詩(폐시) : 시 쓰는 일을 그만두다.
[역사이야기]
신좌모(申佐模:1799~1877)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춘추관편수관으로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은퇴한 후에는 향리에서 종친과 후진들을 훈육하여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좌인(左人)이며, 호는 담인(澹人)이다. 충청도 청원(淸原, 現 청주시)에서 태어났다.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입격하고,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원릉별검(元陵別檢)·성균관전적·병조정랑·종부시정(宗簿寺正) 등을 역임하고,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849년 사헌부집의를 거쳐 사간원사간 등을 지내고, 1855년(철종 6) 진위진향사(進慰進香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에 이조판서에 올랐다. 은퇴한 후 1862년 향리에 화수헌(花樹軒)이라는 정자(亭子)를 짓고 종친과 후진들을 교육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2004년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의 연구원이 강릉시(江陵市)의 한 개인 소장자의 서가(書架)에서, 대원군이 임오군란 직후 청나라에 끌려가 유폐(幽閉)되었을 때 그에게 보낸 간찰(簡札) 57장을 찾아냈다. 시문집에《담인집》이 있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