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터-제국식' 혼합 측정법, 70년대 저항 운동의 산물
미터법 강제에 반기 든 시민들... "측정법은 자유의 척도"
멀루니 정부 출범 이후 강제 정책 중단... "다양성 인정한 결정"
캐나다인들이 날씨는 섭씨, 요리는 화씨, 체중은 파운드, 자동차는 킬로그램으로 측정하는 독특한 문화는 1970년대 정부와 시민 간 벌어진 '미터법 전쟁'의 결과물이다.
1970년 피에르 트뤼도 총리의 자유당 정부는 '미터법 전환 백서'를 발표하며 캐나다를 완전한 미터법 국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당시 정부는 미터법을 채택하지 않으면 '인치-파운드'에 갇혀 국제 무역에서 뒤처질 것이라 경고했다.
연방 정부는 '미터법 위원회'를 설립해 11개 운영위원회와 60개 부문위원회로 구성된 방대한 조직을 통해 인치, 파운드, 갤런 등 영국식 단위를 완전히 없애려 했다. 처음엔 야당인 보수당도 이를 지지했지만, 실제 시행 과정에서 국민적 반발이 커졌다.
특히 1975년 환경부가 화씨 온도 제공을 중단하고 도로 표지판이 마일에서 킬로미터로 바뀌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표출됐다. 결정적으로 1981년부터 정부는 휘발유, 식품, 가구 등을 영국식 단위로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른바 단호하게 정책을 시행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차가운 칠면조 전략(cold turkey strategy)'을 통해 미터법만 허용하려 한 것이다.
이에 중부 프레리 지역 농부들을 시작으로 전국적 저항이 확산됐다. 캘거리의 카펫 상점 주인은 야드와 미터로 동시에 카펫을 판매하다 1,0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자 이를 거부하며 정부에 감옥행도 불사하겠다고 도전했다.
일명 '미터 경찰(Metric Police)'은 온타리오주 피터버러의 한 정육점에서 파운드 표시 저울에 테이프를 붙여 사용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킹스턴의 철물점 주인은 "고객이 원한다면 모자 가득 눈덩이로도 팔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 규제에 맞섰다.
가장 상징적인 저항은 37명의 진보보수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운영한 '측정의 자유(Freedom to Measure)' 주유소였다. 이 주유소는 정부 규정을 무시하고 리터 대신 갤런 단위로 휘발유를 판매했으며, 일부 고객들은 8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미터법 논쟁은 1984년 브라이언 멀루니 보수당 정부 집권과 함께 전환점을 맞았다. 멀루니 정부는 미터법을 폐지하진 않았지만, 영국식 단위 사용을 처벌하는 강압적 정책을 중단했다. 정부 기관은 미터법을 계속 사용했지만, 일반 시민과 기업의 영국식 단위 사용을 금지하지 않았다.
결국 캐나다는 두 측정 체계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됐다. 현재 RCMP(연방경찰)는 실종자 수배 시 키와 체중을 각각 피트와 파운드로 표시하는 등 미터법 위원회가 가장 원치 않았던 상황이 현실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혼합 문화는 오히려 캐나다의 다양성과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독특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