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옹달샘 - 김선우
먼 뱃길 선유도 민박 든 뱃사람 집 뱃사람은 없고,
쪽마루 천장에 알전구 말간 밤이었네 팔월이었고,
마당에 모깃불 지펴놓고 쪽마루에 나와 앉은, 아직 젊어 입술이 유도화 같은 섬여자가, 그을린 이마 무색토록 희게 드러난 왼쪽 젖을 아이에게 물리고, 무릎에는 눈썹이 까만 네살배기 아이를 누이고, 느리게 느리게 자장가를 부르는 밤이었네
깊은 산속/옹달샘/누가 와서 먹나요/새벽에 토끼가/눈 비비고 일어나/세수하러 왔다가/물만 먹고 가지요
바지락밭에서 노래에 취하던 홀시어머니
이른 밤잠에 시든 몸을 기대어보려 하네
문지방 곁엔 한되들이 백화수복 병하나 찰방이는 밀물 위에 끄덕끄덕 조올고,
물비린내 적요로운 달밤이었네
옹달샘 너무 맑아 세수는 못하고,
입술만 살풋 대고 갔다는 흰 토끼의 새벽길이 꼭 오늘 밤 같았을까
나도 왠지 기척을 낼 수 없어 손톱 속 옹달샘을 말가니 들여다보았네
느릿느릿한 자장가 문간방을 열고 내 두 귀를 만져 주었네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중 문학과 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시인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했다.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 (당선詩 : 피어라, 석유!)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중에 있다. 주요 저서로는 첫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작과비평사, 2000 ) , 첫 산문집『물밑에 달이 열릴 때』(창작과비평사, 2002) , 시집『도화 아래 잠들다』(창작과비평사, 2003) 등 이 있다.
[출처] 깊은 산속 옹달샘 - 김선우|작성자 파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