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하는 삶
시편 133편 1-3절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이 옷깃까지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네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헐몬(3절)’ : 아모리 인들은 헐몬 산을 ‘세나르’ 라고 불렀고 시돈 사람들은 ‘시리온’ 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백두산을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 이라고 하는 데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약속의 땅’의 북쪽 경계로 표현되었습니다. 팔레스틴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이슬(3절)’ : 다윗은 형제가 교제함으로 축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이슬의 이미지를 빌리고 있습니다. 높은 산이나 낮은 산이나 똑 같은 이슬이 내린다는 사실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 신분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형제가 공동체 일원이 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편의 첫 구절은 결혼한 형제들에게 계속해서 부모 집에서 함께 살도록 권유하는 내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는 절기 때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들의 모임을 축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꽃이 아닙니다. 해와 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 만물도 매우 아름답지만 최고로 아름다운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함께 동거하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시편에서 형제가 함께 동거하며 교제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선언합니다.
2. 아름다운성도들의 교제.
다윗은 성도들이 교제하는 모습을 두 가지 은유를 사용해서 표현합니다.
첫째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부어졌던 기름입니다.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공동체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통하여 귀한 기름과 같은 사랑과 우애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헐몬의 이슬입니다.
초점은 ‘이슬’입니다. 높고 고상한 헐몬 산 위에서 내리는 똑같은 이슬이 낮고 작은 시온에도 내린다는 사실에서,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형제들이 동일한 사랑을 입는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성도들의 교제 속에는 영생의 복이 있습니다.
다윗은 성도들의 교제 속에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명하셨다는 것은 수여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복은 다름 아닌 영생의 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생을 형제들과의 교제 속에서 확인하며 누릴 수 있습니다. 영생은 꼭 죽어서만 누리는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형제들과의 사랑의 교제 속에서 현재 누리며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과의 교제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그곳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맺는 말
켈리포니아의 스퀘어 나무는 300피트 정도의 높이까지 무성하게 잘 자랍니다. 특이한 것은 이 거목의 뿌리가 얕고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군집을 이룬 이 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뒤엉켜 거센 비바람에도 잘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해주기 때문에 거대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힘으로 해결하여 하기보다는 스퀘어 나무들처럼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아픔을 나누고 중보 기도로 도우며 상부상조한다면 능히 견디고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성도들 간의 교제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 신앙생활하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지체들의 연합체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신앙생활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기를 거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형제들과 연합하여 함께 교제하며 사랑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