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46] 겨울 파리[寒蠅]
겨울 파리 벽 위에 딱 붙어
날개 접고 마른 송장 되었네
소란만 일으켜 미움받아
앵앵대고 성가셔도 못 잡았던
찬바람에 다 죽었나 했더니
따뜻한 방에서 다시 날아올라
더 이상 살아나지 말라며
가시나무 손에 쥐고 혼쭐 냈지
더위엔 호기롭고 장하더니만
찬 서리에 풀 죽어 설설 긴다네
단청 기둥에 점 하나 되고
흰 벽 위 까만 사마귀 점 되어
쓸모없는 얇은 날개로
모퉁이에 천한 흔적 하나 남겼거늘
때 얻었다 방자하지 마라
권세 다한 뒤 그 누구를 원망하랴
-김시습(金時習 1435∼1493)
(최명자 옮김)
겨울 파리-김시습(金時習 1435∼1493)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오언절구 한시. 2행에서 날개를 접고 벽에 붙은 파리를 마른 송장이라 하더니 마지막 행에서는 세력이 다한 권신에 비유해 일침을 날렸다. 수미상관하고, 진부한 구석이 없고 묘사가 치밀하고 적확하다. 오백 년 전 그때는 가시나무로 파리를 잡았구나! 고것 참 편리하겠다. 살충제처럼 독한 성분이 없어 친환경적이며 돈도 안 들고…. 그 한 몸 겨우 뉠 소나무 오두막에 살면서도 김시습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생육신 김시습의 시에 배어있는 어떤 정서, 불우한 지식인의 환멸과 체념의 몸짓이 때로 지겨웠는데 ‘겨울 파리’는 신선했다. 날 웃게 만든 사람을 어떻게 미워하나.
10행에 “풀 죽어 설설 긴다네”의 원문은 “不自由”다. 찬 서리에 자유롭지 못하다를 쓰면서 시인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시의 서정적 자아에 대해 생긴 의문: “소란만 일으켜 미움받아 앵앵대고 성가셔도 못 잡았던” 그는 누구일까? 시인 자신이 투영되어 있지 않나.
寒蠅 [겨울 파리] (시 원문)
寒蠅倚壁上 戢趐作枯殭 變亂人多嫉 喧煩臂莫攘
風寒如殄瘁 室暖又飛翔 勿復重蘇活 深呵止棘章
溽暑多豪壯 淸霜不自由 畫梁加剩點 粉壁受黥疣
薄趐容無地 寒蹤貼一隅 得時須勿恣 勢盡欲誰尤
#최영미의 어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