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환의 명시감상] 백야 -남길순.
백야
ㅡ남길순.
나와 같은 몸을 쓰는
또 다른 나와 마주칠 때가 있다
호텔에 누워 듣는 개 짖는 소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멀다
밤이 왔으나 죽지 못하는 태양
낮 동안
카프카의 무덤을 찾느라 묘지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카프카를 만났다
검은 묘비들이 살아 돌아오는 밤
클라이맥스로 짖어대다가 일순간
고요해지는 하늘을 본다
유대인 묘지 끄트머리쯤에
내가 찾는 카프카는 누워 있었다
그를 찾아야만 하는 간절한 이유라도 있는 듯
각혈하는 장미 한 송이 놓고
돌아설 때
한동안 잠잠하던 병이 도진다
이 불안의 시작이 어디인지
여름밤은 스핑크스처럼 창문 앞을 지키며
돌아가지 않는다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소리는
밤새 끙끙거리고
곁에 누워있던 누군가 황망히 떠나간 것처럼
몸을 웅크리며 너는
이불을 둘둘 말고 있다
지구의 한 귀퉁이
주소를 모르는 이곳에서
/《현대시학》2016년 3월호에서
■이 세상에는 백야白夜와 극야極夜라는 두 극지의 계절 현상이 있다. 백야란 밤이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현상을 말하고, 극야란 한낮이 되어도 해가 떠오르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분명한 한국에서 그 두 현상을 설명한다면, 한국이 여름일 때 북극에서는 백야 현상이 나타나고, 남극에서는 극야 현상이 나타난다. 이와 반대로 한국이 겨울일 때, 북극에서는 극야 현상이 나타나고, 남극에서는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힘든 노동 뒤에는 휴식이 필요하듯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자연의 리듬(생체 리듬)이지만, 그러나 극지에서의 인간의 삶은 그것이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루종일 해가 지지 않으면 조용한 휴식과 잠을 자기가 힘 들어지고, 하루종일 해가 뜨지 않으면 힘찬 일터의 생활과 그 어떤 오락활동도 어렵게 되어 있다. 극지는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고, 그 사나운 추위 때문에, 최악의 생존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때는 하루종일 해가 지지 않고, 어떤 때는 하루종일 해가 뜨지 않는다. 일조량도 적고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길다. 비옥한 대지와 다양한 농산물은 커녕, 대부분의 농작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고, 한번 눈이 내리면 몇 미터씩 쌓이고, 이웃 마을과 이웃 마을 사이의 통신도 끊어져 버린다. 가난과 빈곤, 추위와 불면증, 알콜중독과 우울증, 그리고 언제,어느 때나 죽음의 공포와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극지는 불모지대이며 유형지이고, 이 세상의 삶에서 끊임없이 떠밀려난 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백야 현상과 극야 현상을 다같이 관찰할 수 있는 곳은 폴란드,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영국, 아일랜드, 벨기에, 체코, 우크라이나, 독일, 카자흐스탄, 몽골, 캐나다, 알래스카, 그린란드, 칠레, 아르헨티나 등이지만,그 기간은 수많은 편차가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6개월 동안이나 그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유대계 독일인으로 태어났고,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는 프라하 대학을 졸업한 후 보험회사에 근무를 하면서 소설을 썼고, 1917년 폐결핵이 발병한 후 오랜 고생 끝에 1924년 4월 오스트리아 빈 교외의 킬링요양원에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향년 41세로 그 비극적인 생애를 마감한 것이지만, 그의 {변신}, [유형지에서], {성}, {심판}, [굶는 광대], {시골의사} 등은 실존주의 문학의 금자탑으로 장 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사상적(이론적) 전거가 되어주기도 했던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유럽적 사건이 아니라 세계적인 사건이었던 것이고, 그는 인간의 체험을 사생결단식으로 밀고 나가, 궁극적으로는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의 애벌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레고리 잠자는 가장의 임무를 띤 영업사원이었고, 반인륜적인 사형장치가 폐기처분될까봐 전전긍긍하던 [유형지에서]의 장교는 다만 한 사람의 직업군인이었으며,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그들의 직업을 위해서는 언제, 어느 때나 그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던‘굶는 광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직업은 생명이고, 밥이며, 운동이다. 직업은 오락이고, 휴식이며, 평화이다. 직업은 돈이고, 명예이며, 권력이다. 영업사원을 한 마리의 애벌레로 변신시킨 것도 직업이고, 인간을 미치광이 장교나 굶는 광대로 만든 것도 직업이다. 우리는 직업 때문에 살고, 우리는 직업 때문에 죽는다. 이 직업의 중요성을 사생결단식으로 밀고 나가, 인간 존재의 모순과 그 실존적 비극성을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끔찍하게 보여준 것이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세계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야다. 백야는 전율과 공포와 그 끔찍한 살풍경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극사실적으로 펼쳐 보인다. 남길순 시인의 [백야]는 이중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데, 첫 번째는 자연적 의미로서의 그것이고, 두 번째는 실존적 의미로서의 그것이다. 자연적 의미로서의‘백야’의 무대는 체코의 프라하가 되고, 실존적 의미로서의‘백야’는 프란츠 카프카와 그 분신인 시적 화자가 된다. 밤이 왔지만 죽지 못하는 태양이 있고, 낮 동안 카프카의 무덤을 찾아 헤맸지만 수많은 카프카들만을 만났다. 호텔에 누워도 이방인을 쫓는 개 짖는 소리만 들리고, 유대인 묘지 끄트머리쯤에서 카프카의 무덤을 찾았지만, 그러나 장미꽃마저도 각혈을 하고 있었다. 유대인도 폐병쟁이고, 시적 화자도 폐병쟁이고, 이 폐병은 더욱더 악화되어 불안만을 가중시킨다. 불안은 요상한 괴물인 스핑크스가 되고, 프란츠 카프카와 시적 화자는 그 스핑크스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불안을 떨쳐버리려고 끙끙 앓아도 소용이 없고, 이불을 둘둘 말고 호텔방에 숨어봐도 소용이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이 불안을 극복하고 영원히 인간답게 살 수가 있는 것일까? “나와 같은 몸을 쓰는/ 또 다른 나와 마주칠 때가 있다”라는 시구에서처럼, 나는 이미, 내가 아니고, 나는 영원한 타자로서 존재한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독일 국적의 소유자였고, 그는 독일어로 말하고 독일어로 글을 쓰는 독일인이었지만 체코에 사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체코에서 태어나 체코에서 밥을 먹고 살았지만, 끝끝내 오스트리아 빈의 교외에서 객사한 이방인이었다. 백야다. 백야는 불모지대이고 유형지이며, 최하천민인 영원한 이방인들만이 살고 있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도 없고, 남길순도 없다.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영원한 타자이자 이방인이라는 유령들만이 살고 있는 것이다.
멀다, 낯설다. 멀다, 낯설다.
장미가 붉디 붉은 피를 토하고,“한동안 잠잠하던 병이 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