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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장비 사는 단계
1 단계 : 등산화나 하나 사자
처음 하이킹에 입문하는 경우는 대부분 주위의 권유 때문이다.
친구나 친지들이 산이나 한번 가자고 하는 것이다.
회사나 동호회 따라나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따라 나선 게 하이킹의 시작이 된다.
그 밖에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스스로 집 주위를 걷거나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는 주위에 물어 보고 듣고 등산용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입고 산에 가야하는지 모르니까, 뒷산에 가는데 뭘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답변은 뻔하다. 대충 차려 입고 나서면 되는데 등산화는 사라고 한다.
그래서 동네 등산용품점을 찾아간다. 혹, 백화점을 찾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전문 샵에 가보니 거기에 있는 신발이니, 배낭이니, 옷이니, 하는 것들이 눈이 튀어나오게 비싸다.
그 순간 언뜻 생각나는 곳이 마트나 할인매장이다.
마트나 할인매장에서 5~6만원짜리 등산화를 하나 사 온다.
모양은 여타 전문 등산화와 다를 바가 없다. 뿌듯하다.
다음날 페트병에 물을 담아 곧바로 걷기나 뒷산을 오른다.
숨은 조금 차지만 산에 오르니 괜스레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다.
흐뭇! 집에 돌아와서 큰소리도 한번 친다. “아... 운동 좀 했더니 좋네.”
2 단계 : 어? 이거 미끄러지네?
처음 하이킹을 시작하면 걷거나 산을 오를 때 숨이 마구 찬다.
그러다가 몇 번 산을 오르면 이젠 숨쉬기가 조금 편해진다. 그리고, 뒷산이 시시해진다.
한, 두 시간짜리 하이킹은 가볍게 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제 어느 어느 산에 사람들이 등산을 많이 간다더라 는 소문을 듣게 된다.
함 가봐야지 하고 있는데, 마침 주위에서 북한산(또는 관악산)을 간다는 말을 듣고 같이 가기로 한다.
산을 오르는데, 어? 여긴 동네 뒷산과 다르다.
바위가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바위를 척척 오르는데 난 자꾸 미끄러진다.
무릎도 까지고 손바닥도 멍이 든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청바지를 입고 온 사람은 나 혼자뿐 인 것 같다.
다들 멋진 색상의 옷에 혼자 왕따를 당하는 것 같다. 쪼금 쪽 팔리기도 하다.
티셔츠도 모양이 내가 입고 있는 것과 다르다. 아이고… 이거 기가 죽는다.
게다가 배낭이 없으니 목이 말라도 참아야 한다.
아까부터 목이 말라 가져온 페트병에 들어 있던 물은 다 마신 지 오래이다.
도저히 못 참겠으면, 지나가던 사람에게라도 물 동냥을 해야 한다.
날은 더워지는데 산에서는 대책이 없다.
혼자 생각한다. 으음…. 배낭도 물통도 필요하구나.
하산 후 귀가를 하여, 집사람을 조른다.
“여보, 등산하니까 건강도 좋아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은데, 바지랑 배낭이랑 좀 사 주라.”
집에서 맨날 담배나 피우고 소파에서 뒹굴며 TV나 보던 사람이 산에 간다니까 부인은 기쁘다.
그래도 가정 경제를 걱정하는 마음에 묻는다.
“얼마나 하는데?” “엉, 마트 가니까 몇 만 원 하더라.” 그래서 마트에 가보니, 배낭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산에서 보니 다들 배낭이 멋지던데……할 수 없이 등산점에 방문한다.
점원에게 물어본다. “어떤 신발이 산에서 안 미끄러집니까?” “릿지화를 신으면 됩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릿지화? 그게 뭐지? 설명을 들어도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좋다고 하니까 일단 하나 산다.
가격도 GTX 같은 암호가 붙은 신발보다 저렴하다.
그리고 배낭도 하나 고르고, 그 점포에서 가장 저렴한 바지도 하나 산다.
내가 엄홍길도 아닌데, 비싼 건 필요 없지”하면서… 계산을 해보니 전부 20만 원이 넘는다.
“등산하면 돈 안 든다던데, 그건 거짓말이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부인에게 해명할 일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다행히 집에 들어와서 어부인에게 보고하니 한 번 씨익~ 보고는 그냥 방으로 들어간다. 다행이다.
3 단계: 아직은 잘 모릅니다….
돈을 제법 들였으니, 부인에게 욕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을 가야 한다.
작심삼일이란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북한산에 갔는데, 등산화가 바위에 쩍쩍 달라붙는다.
캬~하~ 역시 전문화는 다르네?…라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 오른 후 하산을 하는데, 이젠 발바닥에 불이 난다. 그리고 무릎도 약간 시큰거린다.
어~어 이건 또 뭐지?? ...집에 돌아오니 무릎이 걱정된다.
그래서 산을 잘 탄다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산을 내려오는데 무릎이 시큰거리던데 어쩌면 되냐?”
친구는 “스틱을 쓰면 좋아진다. 요즘은 산에 갈 때 반드시 스틱을 가져가야 해.
스틱을 쓰면 오를 때도 힘이 덜 들고, 내려올 때 무릎이 아픈 것도 좋아져.”라고 한다.
스틱? 음…..이것도 필요한 것이구나…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묻는다. “어떤 스틱이 좋냐?”
친구는 대답한다. “레키나 블랙다이아몬드가 좋은데 좀 비싸.” “얼마나 하는데?”
“어 한 세트로 15만원 정도 할걸?” “뭐가 그리 비싸냐?”
“비싸면 국산도 쓸 만하니까 등산 점에 가서 한 셋트 사라.” 등산 점에 가보니 국산도 있다. 그래서 한 셋트 사 들고 온다.
4 단계 : 기능성에 빠지기
봄에 시작한 하이킹이 이제 여름에 접어든다. 제법 높은 산도 오른다.
근데, 셔츠니 바지니, 팬티가 펑펑 젖는다. 심지어 바지가 똥꼬를 먹기도 한다.
수건을 목에 걸고 가도 수건 마저 펑펑 젖으니 대책이 없다.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 다니지?
하산 후 주위 사람에게 물어본다. “땀이 안 나시나 봐요. 저는 땀 때문에 미치겠던데…”
대답은 간단하다. “전 속건성 쿨맥스 티를 입어요. 그럼 땀이 적게 흐르고 잘 말라요.”
음.. 쿨맥스가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물어본다. “바지도 땀이 잘 마르는 게 있어요?” “쉘러 바지가 좋아요. 뽀송뽀송합니다.”
엥? 쉘러는 또 뭐야? 영어가 자꾸 나오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물어나 본다
어디서 파는지. “ 등산 점에 가면 다 팔아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등산 점에 들린다.
쉘러 바지 값을 물어 본다. 무려 20만 원이 넘는다. 쿨매스 티셔츠도 8만 원이 넘는다.
이런 이런, 왜 이리 비싸? 등산용 팬티도 보인다. 이것도 3만 원이나 넘게 한다.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다녀 보지만, 대충 가격은 거기서 거기이다.
어부인 걱정은 되지만, 일단 카드로 끊고 본다.
어떻게든 메꾸겠지.. 머. 담 달에 보너스 나오면 조금 삥땅을 쳐야겠다고 생각한다.
5 단계 : 메이커에 빠지기……
이제 산을 오르는데 ‘세상이 이런 옷이 다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별로 덥지도 않고 땀이 나도 금방 마른다. 역시, 돈 값을 제대로 한다. 하이킹이 더 잘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이제 등산용품 메이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퇴근길에 등산 점에 가끔 들르는 게 취미가 된다.
그리고, 코오롱, 에델바이스, 밀레, 노스페이스, 컬럼비아, 블랙야크, K2 등의 메이커 이름을 줄줄 외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제 어떤 게 비싼 건지 싼 건지 알게 된다.
게다가 산을 다니다 보니 귀동냥으로 어떻게 해야 싸게 사는지도 알게 된다.
물론 인터넷을 뒤지는 것도 상습화된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가격부터 알아보는 게 몸에 배게 된다.
폼에 신경 쓰는 시기가 되는 거다.
이 단계가 바로 위험한 등산용품 사재기의 바로 전 단계이다.
때 마침 가을도 되고 해서 설악산으로 제법 긴 산행을 가게 된다.
날씨도 좋고 해서 평소처럼 자신 있게 나섰는데 정상에 가 보니 안개가 끼고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땀에 젖어서 바람을 맞아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개 떨 듯이 떨어 보고 나니 방풍 재킷은 꼭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게다가 바위에 붙던 등산화가 여기에선 발바닥에 불을 낸다. 게다가 밑창도 다 달아 간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 돈 쓰는 일만 남았다. 여기저기 인터넷도 뒤지고 해서 지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제 눈이 높아져 싼 건 눈에 차지 않는다. 결국 남들이 알아주는 유명 메이커 제품으로 한가득 사게 된다.
GTX라는 암호가 붙은 등산화도 장만하고, 고어텍스 재킷도 하나 사고, 배낭도 조금 큰 걸로 장만하고…
근데, 이걸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진다. 사무실에 며칠 두고 있다가 결국 집으로 들고 들어간다.
당장 어부인이 그거 어디서 난 거냐고 묻는다.
“퇴근길에 샀어.” “얼만데?” “엉……얼마 안 해, 재킷 하나에 3만 원 줬어.”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실제로는 30~40만 원도 넘게 준 옷이다...ㅠㅠ
이 단계에서는 산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뭔가 등산용품이 하나 손에 들려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브랜드가 하나쯤은 생긴다.
그래서, 내 브랜드가 좋니, 니 브랜드가 좋니 하면서 말싸움도 가끔은 한다.
6단계 : 마구 사재기
제법 메이커가 있는 멋진 옷을 입어 보니 역시 뽀대가 남 다르다.
게다가 엄홍길처럼 산도 잘 타지는 것 같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 번씩 쳐다봐 주는 것 같다.
그래! 이 맛이야~! 이젠 단순히 인터넷 서핑으로 싼 물건을 찾는 게 아니다. 유명 쇼핑몰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30% 세일이라는 문구만 보면 눈이 번쩍 떠진다.
“저게 한국에선 얼마인데, 저긴 저렇게 싸네! 하면서 이른바 사재기에 들어간다. 살 때마다 돈을 번 것 같다.
그리고 저걸 안 사면 손해를 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카드 결제액은 무작정 늘어가고, 자동차 트렁크에 온갖 등산용품이 넘쳐난다.
집에 들고 들어갈 수도 없다. 일단 택을 떼고 한번 입은 다음에 집에 가지고 간다.
집에 가서는 이렇게 말한다. “중고장터에서 만원 주고 샀어.”
이 단계에 들어가면 평상복은 입지도 못 한다. 뭔가 찝찝하다.
산에 가지 않을 때도 기능성 옷을 찾게 되고, 그것만 입고 다니게 된다.
청바지니 카키 바지니 하는 것들은 장롱에서 썩고 있다. 폴로셔츠도 맘에 안 찬다.
대신 등산복 티셔츠가 훨씬 좋게 느껴진다. 이제 핑계가 또 하나 생겼다.
집에 다가 이야기 한다. “내가 등산용품 사는 대신에 다른 옷은 안 사자나”.
7 단계 : 특이한 것 찾기
이제 더 이상 등산용품을 집에 둘 곳이 없다. 자기 방뿐만 아니라 베란다에도 한 가득이다.
안사람도 잔소리를 마구 한다.
제발 좀 그만 사라고… 그래도 습관처럼 산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는 뭔가 특이한 것, 남이 안 가지고 있는 것에 눈길이 간다.
평생 들어 보지도 못한 해외 수입 제품들 인 아크테릭스니 클라트뮤젠이니
몬츄라니 시에라니 피엘라벤이니 블랙다이아몬드니 하는 것 들에 눈길이 간다.
저걸 함 입어 주어야 한다. 죽을 때 갖고 갈 것도 아닌데, 살아서 하고 싶은 건 해봐야 할 것 같다.
이때쯤이면, 등산용품의 전문가가 된다. 집구석에 없는 게 없다.
더 이상 둘 곳도 없고, 더 이상 살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사고 싶은 게 생긴다.
이제는 욕심보다는 남에게 이런 걸 샀다는 보여주기 똥 가오가 생기는 것이다.
8 단계 :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사재기가 한참을 지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지 않게 된다.
사는 재미도 없고 그게 그러라는 걸 느끼게 된다.
오히려 있는 걸 중고장터에 내다 판다. 아니면, 남는 걸 주변 사람에게 하나씩 선물한다.
그리곤 꼭 필요한 것만 몇 가지 남겨 둔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별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금, 중저가 실용적인 목록으로 눈이 돌아간다.
멋진 새 용품을 봐도 어지간하지 않으면 흥미가 없다.
하산 길에 매번 들리던 등산점도 들리지 않는다.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는 것도 이젠 하지 않는다.
싸게 사는 것도 관심이 없다. 그냥 그때 그 때 꼭 필요한 것만 가까운 샵에 가서 그냥 산다.
싸게 산다고 여기저기 들여다보는 것도 귀찮아진다.
이제 등산복과 장비들을 입고 사용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정상에 올라 봤으니... 이젠 하산을 한다.
*
해외 유명 등산 장비들도 유행의 흐름이 있는 것 같다. (등산화는 제외)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몬츄라. 아크테릭스 등이 처음 들어와 마니아들 사이에 반응이 좋아
북한산에 가면 등산객 반 정도가 이 제품들을 착용하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그 제품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시들해지더니 (아직 마니아층은 많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제품들(하그로프스 등)이 나타 나 인기를 끌더니
몇 년 전부터는 클라터뮤젠, 룬닥스, 피엘라벤 같은 북유럽권 모델들이 등장해
고가에 판매되며 아웃도어 시장에서 프리미엄 의류군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흐름들은 수입상들의 마케팅 전략에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아웃도어 용품 전문가의 말...)
그러나 이런 제품들은 북유럽 추운 동네이고 우리나라 처럼 경사가 험한 산이 많은 나라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추운 지방의 평지 트레킹이나 하이킹에 맞춰 개발된 쟈켓이나 팬츠로
실제로 우리 나라 환경과 그다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리하기가 불편한 제품임에도,
비싸다는 이유로, 또는 예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입는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유행 흐름 현상은 몇 번 입고는 중고 시장에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 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첫댓글 소설책 읽듯이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ㅋㅋ
맞어 !! 맞어 !!
공감하시는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걷자님^^
맞어 !! 맞어 !! ....공감하시는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이 댓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ㅎ
고맙습니다....허브님
헉. . 왜 제 얘기를 쓰시나 했어요 ㅋㅋ
감사합니다.
아...청풍명월님이 시작 한지 얼마 안되셨으니..이 글에 딱 맞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제가 감히 조언, 충언,고언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격적으로 험한 산에 다니지 않을 것 같으시면
괜히 비싼 돈 낭비 하면서 고가의 장비들을 구입 할 이유가 없지 싶습니다.
적당한 가격 선에서 장비들도 좋은 것 많으니 그 중에서 잘 선택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장비 구입 할 때....궁금한 점 질문하시면
조금 앞선 경험자로서 최선을 다 해 도와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필요할 때 상담 드리겠습니다. 꾸뻑.
산에 다닌 세월이 조금 돼다보니(대청봉에서 캠핑하던 ^^) 공감돼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대청산장 앞에서 눈퍼다가 라면끓여먹고 추억팔이 하는 회원입니다.
대청산장이 흔적없이 .... 봉정암앞에 있던 소청산장은 이전하여 신축하고, 소청이나 1275에 매점이 있었고 비선대 산장건물도 사라지고 내추억도 하나 둘 사라집니다.
대청봉에서 텐트치던 시절...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젠 그런 기억들을 추억으로만...그때가 참 좋았는데....
(갑자기 마구 슬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