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검초(銀劍草)1)
조상의 땅2) 중에서 가장 신성한 할레아칼라3)
분화구 오름 목 차디찬 암석들 사이
미끄러지듯 화산재를 딛고 서있는 외계인,
해발 3천 미터 극한 속에서 한 방울 이슬로 목을 축이고
온몸에 형형한 은빛이 스밀 때까지 오직 돌아갈 별을 생각한다.
끈적끈적한 것들은 다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꽃과 나무와 풀은 물댄 동산의 말처럼 왕성하고 요염하지.
아무리 아름다울지라도 아랫것은 더럽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오염원이지.
오를수록 메마르고 오염을 허락하지 않는 태양의 집,
구름 위의 황막한 영토,
태우고 태워 남은 재 또는 광물질들만 모여 사는
요요한 멸절의 옥(獄),
그곳이 은검초 서식처인 걸.
아래로부터 온 너희 젖은 손으로 그를 만지지 마라.
언젠가 죽을 너희를 위해 그가 죽으리라,
반드시 죽으리라.
오직 한 번 그의 별에 보내는 불꽃신호,
대형원통 꽃을 피우고,
자진(自盡)하리라.
은빛 칼은 처음부터 예비한 것이다.
―――
註
1) 은검초(銀劍草, silver swords) : 하와이주 마우이섬 할레아칼라 화산 분화구 주위 해발 2,500m 이상에서 자생하는 희귀식물로 잎은 은빛 칼 모양. 몸체보다 몇 배 큰 원통형 꽃이 피고 사람 손 이 닿으면 죽는다고 전해짐.
2) 하와이, 하와이는 조상의 땅이라는 뜻
3) 태양의 집이라는 뜻. 하와이 마우이 섬 위치 세계최대의 휴화산(높이3,055미터, 미 국립공원)
-----------------
장충길 / 1951년 경남 밀양 출생. 경북고, 그리스도대학교 졸업. 2005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바람의 사람』. 현재 KBS 선임프로듀서.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