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초등학교 보안관으로 재직중이다.
잘 버티고(?) 있던 옛 일터를 정년으로 만기 출소하고(?) 과거의
화려한(?) 경력에 따른 나의 인맥에나 관심이 있는
유사업종의 스카웃을(?) 마다하고, 30년간의 넥타이족으로 살았지만 나이 40이 넘어 15년 이상 지속한 마라톤
으로 단련된 강인한 신체와 잔나비의 손재주를 바탕으로 몸으로 떼우는 일을 택했다.
건설현장 잡부, 택배화물 상하차, 자전거수리… (예상과는 달리 젊은 사장은 수리업무보다는 자전거 대여소 광고
찌라시 돌리는 일을 더 원하기에 별수 없이 공원
내방객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했다. 주말에는 외국인도 제법 내방하는
공원이어서 해외 비즈니스 경험을 살려
그들도 상당수 유치하기도 해서 젊은 사장에게 기쁨을 안겨 주기도 했다. ㅎ)
대단치도 않은 장삼이사일 뿐인데 무슨 자전적 수기라도 쓰는 것 같아서 더 이상의 인생역정(?)은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어찌어찌 해서 초등학교 보안관으로 취업이 되어 금년이 햇수로 3년차이다.
그런 직업이 있었나 할 정도로 전혀 모르던 분야였는데 막상 해 보니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편인 나에게는 적성에 맞는
듯하다.
이제는 상당수의 어린이들의 이름과 학년 반을 외울 정도로 환경에 친숙해진 상태이고 순진한 어린이들과 자주 접촉하다
보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동심의 세계는 나 같이 속물근성에 익숙한 세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어린이들과의 대화 중 나를 당황하게 만든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
1)
저학년 남자 어린이 : “아저씨, 아저씨는 어릴 때 학교
보안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나 : …… (잠시 침묵)
오잉~ 이거야…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하나 … 속으로는 “야, 이 놈아, 이게 얼마나 박봉의 노가다 직업인데…
미쳤냐? … 라고 대답해 줄 수도 없고 ㅎ …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
"으응, 아저씨가
어릴 때는 학교 보안관이라는 직업이 없었어. 그러니 보안관 꿈을 꿀 수가 없었지…" 라고 대답하여
간신히 위기모면
…ㅎ
(사례
2)
6학년 여자아이: “아저씨, 나 이제 곧 졸업하면 앞으로 아저씨 보기가 힘들 터인데
언제까지 여기서 근무하실꺼예요?
나: …… (또 잠시 침묵할 수 밖에)
속으로는 야, 이놈아, 이
놈의 직업… 1년짜리 계약직으로 파리목숨이야. 내가 더 일하고 싶다고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야 …라며 동정이라도(?) 받고싶은 심정인데 그렇게 말은 못하겠고 …. 억지(?) 웃음 띄우며 …
"응, 너 시집갈 때까지 근무할 테니 자주 놀러오렴 … "
이렇게 대답해 주었더니 여자아이답게 까르르
웃는다 … 역시 간신히 위기모면 …ㅋ
(사례 3)
작년 여름, 가뭄 걱정이 한창일 때 반가운 단비가 내리고 있던 날, 반쯤은 망가진 우산을 덜렁덜렁 받쳐들고 등교하는
4학년쯤 되는 어린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 : “옷 많이 젖었겠구나. 괜찮니?”
어린이 : “괜찮아요, 비 좀 계속 왔으면 좋겠어요.”
나 : “어어, 이놈 봐라. 너 참
기특하구나. 우리나라가 가뭄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네가 잘 알고 있구나!”
어린이: “아저씨, 그게 아니고요. 요즈음 너무 더워서 그래요”
그야말로 한방 제대로 맞았다.
성인나이였다면 실제의 속마음은 뒤로
숨기고 “그래요, 걱정 많이 되니 어쩌니…” 하며 이중적인 발언을 하였을 것이고
나 또한 그러한 이중성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새삼 반성하게
만들었으니...
고맙다. 이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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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근무하는 초교의 졸업식이
있었다.
희끗희끗한 깃털이 섞인 병아리는 빠져나가고
갓 부화된 노오란 병아리가 새로 들어오면서 교정은 다시 이전의 평균적인
노란색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나의 머릿속의 해묵은 미련과 추억도
정기적으로 배출시키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는 희망과 미래로 다시
채워 넣어서 항상 푸르름을 유지하고 싶은데 …
마음만 굴뚝일 뿐이니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오늘, 교정을 떠나는
6학년 어린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니 이런 저런 과거의 소회가 떠오르기에
몇 글자 끄적여 보았다.
첫댓글 초등학교 보안관..
저도 해보고싶은 일입니다..ㅎ
늘 일속에서 보람과 즐거움 넘치는 나날 되시길~~^^
은퇴후 재취업 업종으로는 직무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초교 보안관은 서울에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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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은 없고 서울 교육청에서 관리하는직종으로서
매년 1월1일 시작되어 당해년도 12월31일에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1년 계약직으로서
결원으로 인하여 중간에 채용되더라도 전임자의 잔여기간만 인정하기 때문에
익년도에 재계약을 못하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용 안정성은 매우 미흡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맞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규칙적으로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직종을 막론하고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안관"
이름 조차 멋있어요.
지난번 번개 때 소개 하시며
올해 환갑이라고
제일 막둥이라고 하셔서 기억에 생생합니다.
17명 참석자 중에 더더더 막둥이 많았거든요. ^^
15년 동안 마라톤으로 단련 된 몸 ..
그래 보였습니다.
나이보다 많이 젊어 보이셨구요.
그 비결이
함께 생활하는
어린 동심의 기를 받아 그렇기도 하겠어요. ^^
초등학교 "보안관"
혹시 여자는 안 되나요?
재미가 넘치는 좋은 글에
감사 드립니다. ~
1개 초교에 기본적으로 2명 또는 3명이 근무하며 서울 전역에 1,000 명 가량의 초교 보안관이 있는데
지난번 하반기 직무교육에 참가하니 여성분이 2명인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취객이나 불량 청소년들이 교정에 무단 진입하여 소란을 피우거나
음주, 흡연을 시도하는 사례가 있어서 이들을 여자분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침 등교시 예쁘장한 저학년 어린이가 밝게 웃으며 큰소리로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공손한 배꼽인사를 받으면 하루 종일 상쾌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건물 경비는 박봉에 심야근무, 새벽근무도 해야하는데다가 소위 "갑질"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맞닥뜨리게 되는 직종으로 알고 있는데, 님의 부친께서 힘든일을 하셨네요 ...
보안관
충분히 보람을 느끼실 수 있는
직업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연장되셔서
오래토록 멋진 보안관으로 남으시기 바랍니다
덕담, 감사드립니다 ...
초등학교에 보안관이 있다는걸 첨 알았습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포스가 남달라 보였는데
역시 보안관님이셨군요.
마라톤 하셨다면 혹시 써브쓰리?
"Sub-3" 란 용어를 사용하시는 것을 보니 님도 역시 마라톤과 인연이 있으신 모양이네요.
한동안 "Sub-3" 를 목표로 설정한 적은 있지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포기했습니다.
지금까지 풀코스 14번 도전해서 한번은 중도에 기권했었고 나머지 중 절반은
3시간20분대로 완주했습니다.
이것도 저의 연령대로서는 달성하기 쉽지 않은 기록이죠 ...^^
저는 해외에 거주하시는
분인줄 알았어요.
이색직업을 가지셨네요
홧팅요.
이색직업(?) 맞는 것 같습니다 ...
왜냐하면 정복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명색이 보안관인데도 ...
허리춤에 권총은 없으니까요...^^
보안관 직장 이미지도 좋고
글 흐름이 넘좋습니다.
자기마음을 달래가며 지혜있고
재치있게 살아가시는 귀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격려의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잘 아시네요...
직무성격 탓인지 대부분이 전직 경찰출신이 우대를 받고 그 다음이 군장교 출신과 전직 교사 순입니다.
저 같이 일반 기업체 출신은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제가 운이 좋았는지 학교장은 물론 학부모 대표까지 포함된 채용면접에서 통과되었습니다.
학교 보안관은 아이들 치안을 담당하나요?
제가 복지관에서 노인일자리 관리를 하던
경기도에는 학교 보안관은 없었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일자리는 있었습니다.
서울에만 있는 직업이라니 서울은 여러모로 참 좋습니다.
항상 싱싱하고 풋풋한 아이들과 함께 계시니
이젠백님은 덩달아 젊어지실 듯 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초교 보안관 제도는 그 끔찍한 어린이 성폭력 사건인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주 업무는 학교폭력 사전예방과 선도, 거동수상자의 학교 출입통제 및 등하교시의 교통안전 지도등입니다.
여자는 몇 살까지 일까요.
취객.불량청소년
넘어 뜨리는데 선수입니다.ㅎ
긍지를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당당한 보안관 .멋지십니다.^^
여장부이신 모양이네요 ...
매년 12월초,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의 보안관 채용공고를 눈여겨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요즘 애기들 많이 영악하지요.
인기가 좋으신가 봅니다.
극히 일부 아이들의 경우지만,
걸핏하면 보안관 초소로 찾아와 과자 사달라거나 용돈 달라고 떼쓰는 아이도 있습니다...
공원 보안관도 있던데요. 아이들과 놀면 늙지는 않겠습니다. ㅎㅎㅎㅎ
조심하이소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