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이성개조선에 목매다는 자들은 책이나 그림에 나오는 지엽적인 것에 꽂혀 그것을 확대 해석해서 상상과 추론을 거듭하다가 결국 대륙을 이성개 조선이 차지하고 있었고, 현재 이 땅에 있는 이성개조선의 증거들은 일제 등 제국주의 자들이 대륙에서 가져와 이식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유물과 유적, 사람, 기타 모든것을 더구나 이 땅에 존재하는 이조실록등 대부분의 문헌들도 일제가 조작 교열등을 해서 새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래 증거를 보면 저들이 얼마나 상상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이것은 대표적인 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저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망상속에 꽂혀 있는지 바로 드러난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이 땅에 억조로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음에도 지명 몇개 표현이 좀이상하다 등의 아주 먼지보다 작은 것들을 뻥튀기해서 대륙이조선 괴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는 대륙이 아니라 지구전체가 이성개 조선의 강역이었다고 하며 조작날조해서 퍼뜨리고 있다. 이들은 열도 왜구 극우파들 보다 더한 심각한 국수주의에 입각해 있는 것 같다.
위 인골은 왜구들이 인종조사목적으로 홋가이도 모 대학에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지금은 전주의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시기, 농민군의 지도자로 밝혀 졌다. 저 인골 뒤 편에는 '동학당 수괴'라고 쓰여져 있다. 그리고 '진도'에서 가져왔다고 써 있다.
동학농민군이 마지막까지 싸우다 왜군에게 전사한 전라북도 대둔산 항전지, 거기에 추모비를 세웠다.
전라북도 대둔산 항전지에서 마지막까지 싸운 동학농민군을 학살한 왜군의 탄두와 탄피다. 위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위 탄두와 탄피는 당시 왜군이 사용한 무라다/스나이더 소총의 탄약으로 밝혀 졌다.
현재 일본에 보관되어 있는 위 소총들이다. 실탄을 넣고 닫고 방아쇠를 당기면 노리쇠가 뇌관을 때려 발사된다. 현재의 소총구조와 기본적으로 같다.
위 일본기록과 실제 동학농민군이 밀려나며 학살되는 길과 일치한다. 동학농민전쟁이 대륙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대륙이조설 대표주자 김종윤은 위 실사를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저 문서도 아마 나중에 꾸며낸 것이라고 할 것이다. 저렇게 학살계획을 잡은 이유는 동학농민군이 러시아 지역으로 가서 러시아에게 병기를 지원 받으면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지고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것을 미리 예방하고자 한것이다.
저것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그런데도 대륙이조선 망상가들은 저것도 일본이 나중에 다 대륙에서 열도로 이주해 오면서 가짜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청일전쟁의 원인은 반도에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해 달라고 이조선 민비정권이 청군을 불러 들임으로써 일본군이 천진조약에 따라 반도에 들어오면서 발발했다.
위 사진은 동학 지도자들이 모여 작전을 짜고 계획을 수립했던 가옥이다. 최시형, 손병희등....다른 것은 다 변했지만 마루 바닥은 그 때 그대로 남아 있다. 김중구씨가 전해오는 당시 이야기를 진술하고 있다.
왼쪽의 논은 원래 그위 산소가 있는 곳 처럼 언덕진 곳이었다. 땅 주인이 중장비로 파서 논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바로 옆 언덕과 다르게 흙이 시커멓고 기름지다고 했다. 알고보니 여기에 끝까지 항전하던 수많은 농민군을 학살하여 매장한 곳임이 밝혀 졌다.
현재 일본 모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는 당시 동학농민전쟁을 보도한 신문이다. 현대식 소총으로 무장한 왜군에 심지달아 쏘던 화승총이나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왜군 한사람당, 동학농민군 2~3백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왜군은 원래 비올 우비모자로 쓰던 저 주저리를 동학농민군에게 씌워 태워 살륙했다. 지금도 전해내려오는 생생한 증언이 전라도 강진일대에 산재해 있다.
충청도에서는 동학농민군을 저 작두로 목을 잘라 죽였다. 동학농민군 4명이 잡혔는데 한 사람에게 나머지를 저 작두로 잘라 죽이면 살려주겠다고 해서 그리했는데, 나중에 그도 왜구가 작두로 머리를 잘라 죽였다. 그 살륙현장이 저 목네미샘이다. 저 이름이 어떻게 붙여 졌냐 하면, 목을 자르니 머리가 그대로 살아서 톡톡 튀면서 저 웅덩이로 들어가더란 것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학 농민전쟁때 제3자가 쓴 당시의 생생한 일기다. 왜군의 만행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동학농민군의 유골이 저 전남 진도군 진도읍 솔게재에서 죽은 사람의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김정호 원장이 당시 학살 상황과 시신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증언하고 있다. 위 공동묘지처럼 묘가 여러게 보인다. 당시 주변에 널려 있던 학살당한 농민군 시신을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아 솔게재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경남 하동군 대곡리 고성산에서도 마지막까지 항전하던 동학농민군이 무수히 학살당했다. 그 처참한 현장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과 후손들이 그 혼을 달래기 위해 일명'고시랑'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노래가 지금까지도 마을 원로들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구슬픈 가락은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고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 원혼들이 산에서 떠돌아 '고시랑, 고시랑'소리가 났다고 한다.
저런이야기 뿐만 니라 대륙이조선론자들이 대륙 항주만 일대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임진왜란에 관련한 생생한 이야기들이 이 땅에 넘쳐나고 있다. 유물과 유적도 일치하고 현재 일본열도에도 임진왜란 유물 유적과 이야기,문서등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이런 것을 모두 날조해서 만들어 반도와 열도에 심었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신이라고 해도 그렇게는 못할 거라는게 상식이다.
대륙이조선론자들은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등 19세기 후반 주요 사건들이 대륙에서 일어났고 이성개조선이 대륙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저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증거가 이 땅에 지금까지 살아 있다. 그러나 대륙이조선자들은 이것도 간단한 말 한마디로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저 촌로의 증언이 반도 이성개조선을 부정하는 자들을 심판할 것이다.
이것 외에 이 땅에는 반도이성개조선이 개국하고 종친 증거들이 억조로도 헤아릴 수 도 없이 많다. 그런데 대륙이성개조선론자들은 이 모든 것도 일제와 서구 열강이 이식해서 조작한 것이라고 간단하게 무시해 버린다. 이런 자들하고 무슨 대화를 하겠으며, 역사를 빙자하여 종교화 하고 신앙화 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를 하는 게 아니라 종교신앙하고 있다. 기독교 광신도 보다 더 심각한 증세를 보인다.
다음편에서는 민영환이 을미사변이후 1896년 아관파천등 일제의 고종암살공포속에서 고종의 명을 받도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에 가는 여정과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를 통해서 반도이성개조선의 실체를 증명한다.
첫댓글 초딩교과서 수준의 이런 글 너무 식상해~~~~~~~~~~~~~~
오바이트 쏠린다!!! 맨 이런 식이야~~
ㅎㅎ 유치원 3학년 수준에... 초딩 수준은 너무도 고차원의 담론이겠지요.^^
아~~ 저 허허벌판에 유구한 역사의 현장을 담아내고 있구나!!!!!
금자야~~ 선생님 흉내내고 다니면 안돼!!
니입에 고차원 담론 이런거 올리면 안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깜놀햇따 증말!!
액션가면 안들키게 잘쓰고 다녀~~ 아니지 다 알지만 다 속아주는거야~~ 짱구엄마의 심정으로 자라나는 학상 기죽이기 싫어서~
저런 촌로들의 슬픈 노래가사도 일제가 조작 한것이군
갠적으로 전 전문가가 아니지만...
전에 다른 댓글에 다음과 같은 얘길 했어요
우리 시골에도 우마장, 봉수대,진터라는 지명과 당매(묘,뫼?)등의 사당(?)이 있습니다.
우마장은 몽골과 관계가 되는지 아님 조선정부가 말을 키우라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말을 길렀다는 곳이 있어서 소풍등은 거기를 많이 갔어요.그리고 당매는 말을 중앙정부에 싣고 가야 되는데 배가 전복이 되어 많은 말들이 죽었다고 하여 그곳에서 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당매를 세웠다고 하는 야그가 있어요..
근데 그곳엔 물살도 세지 않고 말들이 수영을 엄청 잘 하는데 무슨 말이 얼마나 죽었다고 당을 지어 영혼을 달래려 했을까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진터라는 곳은 전에도 얘기 했듯이 배가 정박할 곳도 아니고 진을 칠수 있는 장소가 전혀 아닙니다.
그것도 의문이 가고...
봉수대는 왜구가 처들어 오면 제주도에서 봉화가 올라오면 다음 산에서 봉화를 올려 중앙까지 죽 그런식으로 소식을 알렸다는데 뭐 맑은 날은 제주도가 보인다는 말도 잇긴 합니다만 날이 좋지 않으면 불가능 하며 우리지역 봉화대에 불을 지핀다 해도 그다음 에선 전혀 보이지가 않아요 근데 어떻게 봉수대 역할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요즘 공부를 하다보니 아! 그럼 결국 일제가 대충 그런 지명을 만들어 이러이러한 곳이다라는 얘기와 함께 식민사관을 받아드린 선생들에게 주입시켜
가르켰구나 라는 강한 의심을 품게 되더라고요.
,, 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보는데 위의 글도 식민사관을 받아드린 그 일제시대의 선생들의 교육을 그냥 일제가 만들어 놓은 교과서 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런 의문점이 없는지 철저히 조사를 함 해보고 나서 그런 주장을 했으면 하는 바~ 입니다.
주장 하시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없어 뭐 특별히 반론은 못하겠지만
제 말을 귀담아 들으시고 한 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넘 적을 대하듯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가 위에 거론한 것처럼 그런식으로 받아들이니 별로 확 땡기지는 않습니다.
...등을 통해 많이 들었고
지금에 와서는 제가 주장하는 것 이상은 없습니다.
당신은 여지껏 이조대륙설을 주장하다가 반대편의 이런저런 논리와 증거 논거 등이 확실해지자, 슬그머니 한발 물러나서 변명을 해대는군. 그깐 자존심이 뭐라구! 너절하고 치사하구먼.
조선은 냅 두고
고려의 땅도 반도에 있었을까요??
그러니깐요!
파충류님이 제기한 네 가지를 하나하나 풀어봅니다.
1: 우마장= 예전에 소와 말처럼 덩치가 큰 동물을 사고팔던 시장터임.
2: 당매= 당매는 당뫼가 분명하고... 다른 말로 풀면 당산이 됨.
당산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것이고... 사당이라고 있는 것은... 서낭당(성황당)임.
3: 봉수대= 파충류의 한계가 보이는데... 제주도에 왜구가 출몰했다고 봉화를 올리면... 육지에서 곧바로 본 것으로 착각한 부분... 제주에서 뜬 봉화는 주변 섬들을 거쳐... 육지까지 도달했음.
4: 진터= 진이라고 하는 것은 만호진처럼 고정된 진이 있는가하면... 길목이라는 요충지에 임시로 설치한 진도 있음... 그곳을 진터라고 부른게 왜 이상함?
이것으로써 대륙조선설은 끝장났음.
@金子 개 풀뜯어 묵는 소린 그만 하고...
그 진터라는 말은 님의 야그대로 그래요 임시로 진을 친 자리라고 해요
근데 물살이 세고
배가 정박할 만한곳도 아니고
진 칠만한 장소도 아니고
제주도 에서 올라온 봉화는 우리고향 밖에 없씀돠
억지 부리지 마삼.
당매...
서울 안가본 사람이
가본 사람 여럿
이겨 분다든마...
우리동네 당매에 대한
전설을 나보다 더 잘 아니
할 말 없고..ㅋㅋㅋ
우마장이 ㅋㅋㅋ
시장터라고라
섬에...
기가차고 캐가 맥힙니다.
저렇게 아무근거 없이
순 거짓으로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는 수법이
꼭 뉴라이트
같습니다.
한심 합니다.
흔히 말하는 대륙조선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장대했던 대륙동이의 역사에 이조를 은근슬쩍 집어 넣는 것입니다..
실존증거들과 생민들의 셀수 없을 만큼의 생활증거들이 셀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치는 근대사까지도
출처도 모호하고 따지고 들어가면 거짓인 거짓증거들로 이조를 대륙동이에
은근슬쩍 집어넣는 행위는 식민사관 못지않은 반민족적 행위입니다..
왜 자꾸 이조라고 하죠?
무슨 이유가 있나요?
왜 이조죠?
조선 아닌가요?
왜 자꾸 이상한
말을 만들어 내는지
이해를 못 하것네요?
답을 들어 봅시다.
그 출처도 모호하다는
말은 님도 마찬 가지고요...
서로 믿지 않으니 하는말 입니다.
@波奈留之國 제가 이조라고 하는건 대륙조선설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자꾸 옛조선의 역사를 이조의 역사로
물타기를 하기 때문입니다..고조선에 있던 일을 이조로 둔갑시키기 일수였죠..하여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들어 낸 말도 아니고 일제강점기 전부터 쓰던 말입니다..
최제우 선생님이나 신채호 선생님등 많은 분들이 썼었고
일제로 접어들며 일제도 썼을뿐입니다.. 항간에 떠도는 일제가 만들어 냈다는 말은 그냥 자격지심입니다..
못 믿겠다면 자료도 가져올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