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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ToLiveOrDie_
다음 내용은 STACK 매거진 1월호에 실려 있던 내용으로 읽으시는것은 상관없지만 무단카피와 상업적 사용을
금지 합니다. 그리고 저도 꽤 많은 시간투자해서 글자색 라인등을 조절해가면서 한것이니 혹시 퍼가시더라도
번역자를 표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길어서 다섯시간 넘게 걸린것 같네요.
그러면 이제부터 팀던컨, 부모님을 앗아간 병에 대항하기위해 자선재단을 만들고, 또 대학학위를 NBA에 1년치
연봉보다 소중히 여기는 한 남자에 대해 알기위해 글을 번역해 갑시다.
UNSHAKEN
adj. 흔들리지 않는, 단호[확고]한.
당신은 팀던컨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그가 지난 10년간의 시즌을 스퍼스에서 보내고 수많은 MVP와 세번의 NBA 챔피언쉽을 따낸것
그외에 당신은 이 남자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만약 당신이 아는것이 그가 NBA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중 한명이라는것이라면 빗나간것이다.
진실을 더 밝혀보면 그는 당신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사나이기 때문이다
by Josh Staph
무엇이 팀 던컨을 다른 NBA선수들과 다르게 만드는지 이해하라면 우리는 그가 St. Croix 섬에서 살던 때로 거슬러 올
라가야한다. 팀의 아버지는 석공이고 그의 어머니는 산파였고 팀은 농구공을 10대 중반까지 만져보지않을 정도로
농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보통 미국 운동선수의 관습은 운동능력이 뛰어난 어린 선수들을 바로 농구를 배우는데,
이와는 다르게 운동능력이 뛰어난 St. Croix의 이 아이는 바로 농구코트로 가지않았는데 그는 수영을 했기때문이다.
팀의 긴 팔다리와 큰 손과발은 그가 수영을 할때 유리함을 주었지만 그를 엘리트 수영선수로 만든것은 그의
집중력(focus), 그리고 그가 수영을 하려는 강한 결심(determination)에서 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일과로 자신이 수영할때의 모든 움직임을 하나하나 나눠서 그것을 일일이 개선하려고 힘썼고 -- 특별히 그가
강한 400미터 자유형에서 말이다. 그런 팀이 였기에 그는 이미 89년에는 이미 Virgin islands 올림픽 수영팀으로
부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나가기 위한 50, 100, 400 미터 자리를 약속받았었는데 팀의 수영선수로의 길은
그가 어찌할수없는 여러가지 불행한 사건들로 인해 끝이 나버렸다.
1989년에 허리케인 휴고가 St. Croix를 강타했고 휴고는 평화로웠던 이 섬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는데
건물들은 부셔졌고, 심지어 밑을 받히는 기본구조가 무너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팀의 집은 안전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집을 지을때 석공술로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돌로 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이 훈련하던
수영장은 폐허가 되어버렸고 수영훈련은 바다에서 하게되었다. 하지만 수영팀이 다시 훈련을 재개할때즈음 팀은
또다른 고통을 겪어야했고 그것은 팀의 수영선수로써의 커리어를 끝나게 하는 개기가 되었다.
팀이 수영시합이 있을때면 언제나 가장 큰소리로 응원하던 팀의 어머니 Ione가 유방암을 이기지못하고 팀의 14번째
생일 하루전에 돌아가셨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 컸던 팀은 그후로 다시는 수영이란 스포츠에서 경쟁심을 가지지
못했다.
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팀의 누나 Cheryl 과 남편 리키 로워리(Ricky Lowery)가 St. Croix에서 가족들과 살기위해
돌아왔는데 리키 로워리는 캐피탈 유니버티시(Capital University)에서 플레이하던 스타팅 포인트가드였다. 리키는
팀을 코트에 데려가서 농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당시 팀은 6피트(179~182cm)로 14살로써는 큰키였고 리키는
팀이 아마도 4~5인치 (1인치=2.54)정도 더 클것으로 예상하고 팀에게 패러미터 게임(가드 플레이)을 가르쳤다.
팀은 농구에 대한 열정을 느낄수 있었고 곧 농구는 팀의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가을이 되자 팀은 St. Dunstan Episcopal High School에 트라이 아웃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14살의 프레쉬맨으로써 varsity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는 Junior varisity(JV)과 varsity(V)로 나눠지며
발시티는 학교를 대표하는 팀이고 JV는 하위팀으로 하위팀끼리만 경기하게됩니다)
사실 팀이 농구게임을 하는 이유는 단지 즐기고 또 어머니를 잃은 아픔을 이겨내려 한것이지 딱히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한것은 아니였는데 그것은 그가 농구를 하며 빠르게 바뀌었다. 세 시즌동안 팀은 9인치나 성장하며
(6-9) 벌진 아일랜드(Virgin Island)에서 사상 처음보는 이 위협적인 농구선수는 리키에게서 배운 패러미티 기술들과
거대한 키로 캐러비안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팀이 16살이던 해, 팀은 그의 재능이 작은 섬들에서만 통하는것이 아닌 전미에서도 희귀한 것이라는것을 증명하게
된다. 그해 NBA 스타들이 St. Croix로 휴가를 즐기러 왔는데 무료했던 그들은 하루는 섬주민들과 농구를 즐기려고
했다. 그당시 드래프트된지 얼마안됬던 알론조 모닝과 팀, 두명의 빅맨은 1:1 매치업이 되어서 수많은 관중들
사이에서 밀고 밀리고 혈투를 벌였는데 아직 십대였던 이 아이는 모닝이라는 NBA 스타를 상대로 결국 비겼다.
놀라운 기술을 가진 이 어린 선수의 소문은 어느새 미국 본토에 까지 퍼졌고 대학들도 팀을 스카웃 하기위해
전화했다. 하지만 NBA선수들과도 상대할수있는 이 7풋 고등학생치고는 팀에게 많은 관심이 쏠리지않았던 이유는
다른 고등학생 유망주들이 AAU 게임과 섬머리그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대학들에게 선보이고 있었는데 반해서
팀은 단지 자신을 방문하러 오는 코치들에게 의존했기때문이다. The University of Hartford, University of Delaware
그리고 Providence College 모두 코치를 보내 팀(Team)에서의 자리 보장과 전액장학금을 제시했다.
팀에게 관심을 가진 큰 학교 중에서는 유일한 웨이크 포레스트(Wake Forest)도 헤드코치 데이브 오돔(Dave Odom)
을 보냈다. 팀이 제대로된 경기를 하는 것을 보지못하고 아웃사이드 코트에서 픽업게임을 하는것밖에 보지못한
오돔코치는 약간 불안하였지만 그래도 팀의 경기력이 놀라웠기에 망설임없이 전액장학금을 제시했다.
25/15/5라는 놀라운 고등학교 마지막해를 보낸 팀은 오돔의 제시를 받아들였고 팀은 대학농구 연습시작전
여름에 이미 웨이크 포레스트에 가서 홀로 연습을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팀은 더 나이많은 디몬 디콘즈
(Demon Deacons로 웨이크 포레스트 팀의 선수들을 뜻함)들과 픽업 게임을 하게 되었는데 팀이 그해 새로
들어오는 학생인지 몰랐던 한 선수는 팀의 놀라운 플레이를 본후 오돔코치에게 달려가서 어떤 모르는 선수가 웨이크
포레스트 스타터들을 쩔쩔매게 하고있다고 말했다. 팀은 이미 대학농구에 자신의 존재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팀의 첫경기는 University of Alaska, In Anchorage를 상대로 펄쳐졌다. 더 빠르고, 더 복잡한 이 게임을 처음 경험한
팀은 무득점에 그쳤고, 그는 평소보다 더 소극적으로 먼가 망설이는듯한 플레이를 하였다. 팀은 반시즌동안 매우
힘들고 잘 플레이 하지못했지만, 기초가 단단했던 그는 흔들리지않았다. 나머지 반시즌동안 팀은 경기에서
리바운드를 쓸어담았고 그의 득점력도 발휘되기 시작했다.
소포모어(sophomore) 시즌에 팀은 엄청남 그자체였다. 팀은 페인트안에서 무브를 완성시켰고 시즌이 끝날무렵
팀은 이미 전미에서 인정받는 실력을 가지게되고 그해 팀은 올해의 수비자상을 받았데다가 이미 95년
NBA 드래프트 1번픽으로 예견되었다. 하지만 팀은 팀동료들과 코치에게 학교를 떠날리 없으니 걱정하지말라며
그의 결심을 밝혔다. 팀은 늘 교육을 중요시 여겼다.
쥬니어 (Junior)시즌에도 팀은 꾸준히 발전하였고 팀은 또다시 그의 동료들과 코치에게 자신은 떠날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해 팀은 대학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중 하나로 기록되며 적은 숫자의 슛을 쏘고도 20.8득점
60.6 퍼센트의 필드골 14.7 리바운드 3.2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모두 알다싶이 97년 드래프트는 던컨드래프트로 불릴만큼 팀던컨이 1위로 뽑힐것은 자명한 사실이였지만 어느팀이
팀을 가지게 될것인지에 관해서는 미궁속에 빠져있었다. 셀틱스과 그리즐리즈는 비참한 시즌을 보내며 가장 높은
확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외로 스퍼스가 1번픽을 가져가게되었다. 스퍼스도 데이비드 로빈슨 제독이 부상으로
단 6경기만 뛰며 62패나 하며 암담한 시즌을 보냈었다. 하지만 단단한 팀인 스퍼스에게 건강한 로빈슨과
팀원들 그리고 배울 준비가 되어있는 새로온 어린 센터는 최상의 조건이였다. 팀의 루키시즌, 스퍼스는 32승을
지난해승수에 추가하며 역사상 가장많은 승수추가기록을 세웠다. 팀은 21.1 득점 11.9리바운드를 기록했고
57번의 더블더블을 하며 리그 1위를 하였다. 게다가 팀은 올해의 루키상을 받고 루키로써 All-NBA First Team에
뽑히는 기염을 토했다.
팀의 나머지 커리어 기록들은 문서로 적어져서 리그의 기록책에 남게 될것이다. 그의 기초를 중요시 하는 삶과
게임은 그를 모든 태풍과 고난속에서도 언제나 돌처럼 단단하게 버티게 해주었다.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을때
그은 고통을 견디며 다른곳에서 열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처음 미국본토에서 농구를 하며 겪은 농구문화적인
쇼크를 경험할때 팀은 오히려 그걸을 기회로 삼아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10년간의 NBA 시즌을 보낸후 확고한 이
베테랑센터는 전혀 해이해지지않았고 코트 가운데에서 팀을 기탱하며 그의 경험과 꾸준한 플레이는 스퍼스를
매년 NBA 챔피언에 도전할수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이것으로 당신은 팀던컨이 엘리트가 되기위해 걸어온 길을 알수있었을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팀이 그의 삶에 대해 하는 감동적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STACK: 언제부터 팀플레이어가 되는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습니까?
Duncan: 전 언제나 그래왔어요, 고등학교, 대학 그리고 지금도요. 제 생각에 저는 뛰어난 코치들과
함께할수 있는 축복을 받은거같아요. 그들은 언제나 팀이 없이는 뛰어난 플레이어도 없다며
팀플레이를 중요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STACK: 그러면 코치들말고 누가 당신과 당신의 농구선수로써의 성장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Duncan: 제가 자라는 동안 제 주위에서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어요, 제가 15살 인가 16살이 될때까지요.
제 누나와 매우 열렬한 농구선수였던 매부 가 섬에 와서였지요. 매부가 제게 농구를 가르쳐 주기시작했어요.
처음배우는 저로써는 그에게 많은것을 배웠지요. 그리고 제가 대학에 간후로는 웨이크 포레스트의
오돔코치님도 저에게 큰 영향을 주셨지요. 그리고 제가 NBA에 온이후에도 좋은코치들을 많이만났지요
(역주: 아시다싶히 NBA는 헤드코치말고도 기술코치 빅맨코치 수비코치 등등 코치가 많습니다.)
STACK: St. Croix에서 자라는동안 혹시 존경하며 따라하고 싶었던 농구선수가 있습니까?
Duncan: 전 언제나 매직 존슨의 열렬한 팬이였어요. 전 그가 몸소 보여주는 팀 컨셉과 플레이를
언제나 존경했어요. 80년대 레이커스팀은 제가 플레이하고 되고 싶은 선수들이 있는 팀같은 것이었고
매직은 그 팀의 기둥이였어요. 그리고 그는 언제나 최고였지만 그가 혼자 모든것을 한건 아니였어요. 그와
그 주위의 플레이어들에 의해서 된것이니까요.
STACK: 그러면 당신은 매직의 공을 넒게 돌리는 (Spreading the ball) 것과 만능인것을 당신의 게임에
적용시켰나요?
Duncan: (웃음) 물론이지요, 우린 다른 포지션에서 플레이 하지만 저는 제가 플레이 하는것이 그것과
비슷하다고 말하면 좋겠어요. 우린 다른 종류의 게임을 하지만 컨셉은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공을 돌리고
모두 참여하는 게임이요. 매직과 저는 혼자서 모든것을 다할수없다는것을 잘알고있어요.
STACK: St. Croix를 떠나 웨이크 포레스트(Wake Forest)로 가는것은 당신의 삶에서 어려웠던 변화였나요?
Duncan: 당연하지요. 저는 제가 플레이 하던것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게임과 또 매우 높은 수준의 농구를
플레이 하게 될것이었죠. 저에게 그것은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매우 많은것을 배우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운이 좋게도 많은 씨니어(졸업반)들이 도와주었어요. 웨이크 포레스트에서 플레이하는것이 새로 영입된
다른선수들에겐 맞지않기도 했지요. 그래서 저는 첫해에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고 그 덕분에 많은것을
직접 배울수있었어요.
STACK: 그러면 당신은 충분히 NBA에 갈 능력이 됨에도 웨이크 포레스트에서 4년을 모두 채우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Duncan: 전 대학을 좋아했어요, 매우 즐거웠거든요. 전 대학에서의 삶과 대학농구를 좋아했어요. 대학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리고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자랄수 있는곳이에요. 대학에 가지 않고도 성인이 될수
있지만 대학을 다니면 더욱 성숙한 성인이 될수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전 사년을 모두 채운것과
졸업장을 딴것에 대해 매우 만족해요. 전 모든 것을 끝냈으니 이제 앞으로만 나갈수 있고 먼 훗날 다시
뒤돌아보며 "아 이제 졸업장을 얻어야지" 하지 않아도 되지요. 모든게 다 잘됬고 전 그런 결정을 한
자신의 선택에 매우 만족합니다.
STACK: 운동선수로써 가장 기억할만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Duncan: 첫번째 NBA 챔피언쉽을 얻었을때가 가장 기억나는 순간이네요.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저의 커리어 초반에 얻었어요. 저는 제가 그렇게 빨리 우승을 경험할수 있을지 몰랐어요. 물론 다른
챔피언쉽들도 너무나 달콤했지요.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팀이 자신의 팀이라는것을 아는것보다 갚진것은 없죠.
STACK: 그러면 MVP 상들은 어떤가요?
Duncan: 물론 상을 탄 시즌은 매우 좋은 시즌이였지요. 특히 MVP상이 챔피언쉽과 합쳐지는 시즌은 최고의
시즌이었어요. MVP상을 받는 다는 것은 대단한것이고 다른 개인 상을 받는것도 좋은것이지요.
하지만 진정한 MVP의 의미를 가지려면 정규시즌을 우승하거나 챔피언쉽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못하면 의미가 많이 퇴색되는거지요.
STACK: 당신은 아디다스의 'It Takes 5ive'(역주: 아디다스선전인데 주로 사람들은 슈퍼스타들이 승리를
이끈다고 하지만 승리는 사실 5명의 팀워크에서 오는것이라고 던컨,가넷, 길벗, 그리고 티맥이 말하는 선전)
캠페인에 나왔습니다. 커리어를 보내면서 당신은 각 팀원들의 소중함에 대해서 어떻게 배웠습니까?
Duncan: 이미 질문에서 답을 말했네요. 각 팀원들은 각자 자신의 소임이 있습니다. NBA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레이커스, 셀틱스 불스 같은 위대한 팀들은 언제나 그런걸 가지고 있었지요.
농구는 언제나 다섯명의 선수들이 같이 뛰는 것이고 우승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는것이지요.
제 생각에 아디다스는 모든 사람들이 스포츠라는 것은 개인 혼자가 무엇을 할수있느냐가 아닌
팀이 무엇을 원하고 플레이어들을 팀을 위해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이끌어주는것이라고
이해하길 바라는거같습니다.
STACK: 10년 아니 15년후에 다른 사람이 당신의 커리어를 뒤돌아본다면, 그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길
원합니까?
Duncan: 저는 그가 저를 늘 열심히 하고, 농구를 사랑했고, 그리고 많이 이겼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해요
(좋은 말인데 한국말로 멋있게 하는건 제가 잘못하겠네요 그래서 원문도 함께 첨가합니다)
"I hope he would describe me as someone who played hard, loved to play and won a lot of games.
That's the extend of it, nothing more."
STACK: 스스로 생각하기에 농구코트에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당신의 최고의 무기는
무엇입니까?
Duncan: 육체적으로는, 단지 건강하다는것이 최고의 무기에요. 저는 지금까지 무릎수술 한번 받은게
다에요. 충분히 건강해서 나의 최선을 다할수 있는것 그건 축복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신적으로는 경험이 가장 저를 많이 도와준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열번째 시즌에 들어가고 저는
거의 모든 상황을 경험해 봤어요. 사람들은 경험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있지만 경험이
있다는것은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오지요.
STACK: 어릴적 스포츠라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그리고 다른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까?
Duncan: 경쟁이나 시합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것이에요.(역주: 당연히 선의의 경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포츠는 어린 당신에게 수많은 것을 가르쳐주지요 - 우정, 동료애, 그리고 스포츠맨쉽 같은것이요.
경쟁심이라는것은 저에게 항상 큰 부분이었어요. 저는 항상 무엇에서든 경쟁하고 싶어했지요.
한때 그건 수영이였고 저는 몇년간 수영을 했었지요, 그리고 그 후로 농구로 넘어왔네요.
저는 항상 제 경쟁심을 분출시킬 곳이 필요했었는데 농구라는 것이 저에게 잘맞아서 다행이네요.
STACK: 누구에게서 당신의 자선 재단을 설립할 생각을 얻었나요?
Duncan: 저는 그것을 제가 처음에 리그에 왔을때 팀동료들에게서 배웠어요.
에브리(역주: Avery Johnson 현 달라스 메버릭스 감독)와 다른동료들이 커뮤니티에서 행한 여러가지
활동들이요. 저는 그들처럼 그런 활동에 참여하고 싶었고 이 커뮤니티에 얻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어요.
제 재단은 샌안토니오 커뮤니티, St. Croix 그리고 캐놀라이노 지역을 위해 만들어졌어요. 그곳은 제 삶을
보낸곳이고, 그래서 저는 그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려고 해요.
저희들은 그들이 좋은 행동을 보여주거나 긍정적인 사고를 보여주면 늘 칭찬해주려고 하지요.
그리고 저희는 암에 대한 연구과 치료연구도 많이해요. 제 부모님 두분다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다른사람들의 암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STACK: 당신은 매우 다양한 기술을 가진 플레이어로 알려져있습니다. 오프시즌은 어떻게 그런 기술들을
갈고 닦습니까? 풋워크나 슈팅 같은거요.
Duncan: 전 슈팅에 주로 투자합니다. 풋워크 같은것은 연습하기가 힘들어요. 주로 풋워크는 경기를 하며
경험을 하면서 얻게 되요. 시즌을 거치면서 몸과 발이 여러가지 상황을 경험하고 버텨내며 그런 것을 통해
자연적으로 습득하게 되지요. 저는 단지 체력과 근력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기위해서 노력해요.
여름에 많이 달려서 시즌의 토대를 준비하지요. 특히 지난 여름에는 슛 연습을 정말 많이했어요.
주로 이런것들이 제가 여러시즌 여름을 보내오며 한것이지요. 그러나 보통 저는 시즌이 끝나면 한달정도
아무것도 하지않으면서 회복하는 겸 쉬지요. 그런후 웨이트룸에 가서 천천히 다시 시작해요. 주로 2주에서
3주정도는 더 코트에 서지 않아요. 충분한 웨이트후 다시 코트에 들어가서 천천히 코트기술들을 연습하지요.
STACK: 농구외에는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Duncan: 전 물을 매우 좋아해요. 그래서 모든 수상스포츠는 다 좋아해요. 저는 섬에서 자랐잖아요, 그러니
그냥 물 안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아주 기분이 좋아요. 물은 저에게 아주 큰 부분이지요.
STACK: 만약에 고등학교 운동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당신의 경험을 토대로 무슨 말을 하고 싶나요?
Duncan: 일단 배우고와. 많은 고등학생들이 NBA에서 플레이 하고 싶지만 NBA에서 잘 적응하고 스타가
될 정도로 축복 받은 얘들은 매우 한정되어있어. NBA에 갈순 없지만 네가 할수 있는 다른것은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거야. 만약 네게 축복받은 운동실력이 있어서 대학에서 농구하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면
대학 학위도 받도록해. 그리고 거기서 부터 움직여도 늦지않아.
STACK Magzine, Volume 2, Published by STACK L.L.C.
www.stackm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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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매니아는 어쩌다 들르는 ROM족이라 회원가입도 안 해서 댓글 하나 못 남겼습니다만, 펌질 허용하신다기에 번역자분 닉과 출처는 명기했습니다. 던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네요. 정말 멋진사람 같아요.
던컨 너무 좋아요..!!
잘 읽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던컨은 정말 멋진사람
크......스퍼스 팬들에게는 정말 소중한글^^
큰사람은 떡잎부터 다르다더니..십대때 정규적인 훈련 한번 안받은 십대 소년이 NBA스타 모닝을 상대로 비기다니..예전에 어떤 분이 지구 어딘가에는 마이클조던보다 더 농구를 잘 하는 사람이 살지도 모른다고 글을 올렸던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막 반박글 올리고 그랬는데..
좋은 글이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