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 (시130:1~8) 새찬송 ; 363장
이 시는 7편의 참회의 시 중에 하나로서 수많은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어거스틴은 임종하기 직전에 큰 고통중 이 시편 130:4을 침상 벽에 붙여놓고 깊이 묵상하며 힘을 얻었다고 한다. 또 마르틴 루터 역시 이 시편을 통해서 사죄의 확신을 얻은 후에 "복음의 심장"이 있다고 말하며 그 후 찬송가를 지어 불려진다.(479장) 또 감리교를 창시자 요한 웨슬레 역시성 바울 성당에서 이 시의 찬송을 처음 듣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심령이 변화되는 체험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죄의 확신에 대한 은혜는 오늘날에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묵상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똑같이 임하게 될 것이다.
1,2/. 극한 고난의 수렁 시인은 깊은 물에 빠진 사람처럼 극한 고난 중에 있었다. 여기에 "깊은 곳"이란 말(마아마킴)은 "깊은 물에 빠져 손으로 닿을 수 없는 곳“을 말한다. 시인은 깊은 수렁과 같은 큰 위기를 만났으며, 이로 인해서 육신과 영혼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요나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치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때에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했다. "주께서 나를 깊은 바다 속, 바다 위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2:5). 우리가 인생의 순례의 길을 갈 때에 평안한 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길고 긴 어둠과 고난의 길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다. 설교자 스펄젼은 말하기를 "우리 인생에는 낮이 있고, 또 밤이 있으며, 여름이 있고 또 겨울이 있다". 시인은 하나님께 "내 목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인생의 밤과 겨울을 만나도 이와 같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우리는 때로 큰 실수를 하거나 죄를 짓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도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이러한 인생의 밤에 우리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구원을 요청해야 한다.
3,/. 첫째,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인정하라. 3절에 그는 "여호와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감히 누가 거룩하신 주님 앞에 서 있을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개역성경에 "감찰한다"고 번역된 말은 "공의를 따라서 엄격하게 우리 죄를 찾아서 그대로 보응하신다면 세상에 살아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하나님의 잣대로 율법대로 처리한다면 살아남을 자가 없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고 다 아신다. 하나님앞에서는 벌거벗은것같이 다 들어난다. 우리의 죄를 감춘다면 율법대로 하는수밖에 없다. 해결의 길이 없다.
그러므로 시인은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공의가 아니라, 자비와 긍휼로 대해주시기를 간구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기꺼이 용서해 주시는 자비하신 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죄인을 용서해 주기를 기뻐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믿었다. "용서하심으로 경외케 하시나이다"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파숫군(보초병)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주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사죄의 은총,구원의 확신응답을 간절히 기다렸다. 구원은 즉시 올 때도 있지만, 지연될 때도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는 인내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 시인은 비교하기를 보초는 세찬 바람과 어둠을 이기고 밤을 새우면서 새벽이 되기를 기다린다. 이와 같이 시인도 영적인 밤을 지세우면서 간절하게 구원의 새벽을 기다렸다. 그는 자기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를 느끼는 것이 마치 지루한 영혼의 밤을 지나는 것 같았다. 그냥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엎드려 부르짖으며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두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기 죄를 회개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고대하는 성도들에게 마침내 찬란한 자비의 새벽 빛을 비추어 주신다. 시인은 고난 중에 기도하다가 마침내 구원을 확신하고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되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실 때에 먼저 마음에 평안을 주신다.
-1절에 깊은 물속에 한번 들어 갔다가 나온 사람이 성경 요나서의‘요나’입니다. 요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고 거꾸로 갔습니다 요나는 배밑창에서 영적인 잠이 들었습니다. 요나는 폭풍을 만낫습니다. 요나는 배안의 모든 사람들이 소리쳐 기도하고 살려달라고 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요나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요구받았습니다. 요나는 제비에 뽑혀 죄인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요나는 자신을 던져넣으라고 회개했습니다.자신이 죽겠다고 ,, 요나는 던져졌으나 하나님은 큰물고기가 준비시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거기서 밤낮 3일을 배속바닥에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요나는 마침내 토하여 내쳐서 다시 땅으로 살아나오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명령하였던 니느웨로 다시가서 외치는 선지자의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요나는 그 큰성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구원의 확신은 개인을 넘어서 백성 전체를 향하고 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속해 주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극한 고난 중에서 용서와 구원을 받은 사람은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향해 그 은혜를 전한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고 찬송하게 된다.
적용))-[우리나라의 박대통령,최순실 사건으로 지금해야 할 일-] 70년 헌정 대한민국호의 배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침몰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대통령을 하야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승만정권이 4,19데모로 하야하고 정국이 엄청난 회오리가 왓습니다. 그렇다고 야당 대통령이 집권한다고 다 되는것도 아닙니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6개월 안에 한미연합사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개성공단 재개, 연방제 통일, 사드무산 시킨다고 합니다. 이대로 가면 또한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쩌면 하나님께서 최순실 카드를 빨리 쓰게 하시고 박근혜 대통령을 이단의 미혹에서 구출하려 하시고...이단에 무지했던 국민들 조차도 이 사건을 통해 이단을 경계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이 사건을 통해 교회들이 더 깨어 정부를 위해 기도하게 만드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대한미국호는 침몰할 것입니다. 고난의 수렁으로 빠질 것입니다.
<저의 답변입니다.> 저는 기도하며 글을 올렸습니다. 돌을 던지지말고 기도할 때란 말도 맞습니다. 정말 지금껏 하나님이 보우하사 지나온 민족과 교회가 반공이란 울타리안에서 보수정권과 손을 잡아주고 달콤한 맛을 누리면서 그 온상속에서 부페되어가는 면도 있지요. 그러나 지금은 회개하면서 죄를 도려내어야 할때 무릎꿇고 회개할 때 입니다. 예수님처럼 '독사의 자식들아~'하고 나단 선지자처럼 죄를 들어내어야 할 때입니다. 죄를 덮어만 둘순 없습니다. 보수10년 안에 자란 죄들뿐 아니라 귀신들 무속들 윤리적 죄들이 너무 큽니다. 그리고 대통령제의 적폐는 고치면서 민주주의가 한단계 진화하는 과정도 되겠지요. 한편 교계지도자들은 그렇다고 종북주의 좌파들에 결코 편승하지않 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터진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깁니다. 젊은 세대들은 아직 그것까지 분간 못하니까 걱정이고 역시 큰 단체인 교회와 노인세대가 균형추 조타수 역활을 해야합니다. 정말 기도하며 행동하되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할때입니다.
<회개기도후에 회복의 찬란한 아침빛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과거 흑인 노예시대 때의 일이다. 큰 부자집에 존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날 아들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아버지가 귀중히 가보로 여기는 것들이니 조심하라고 하는 방에 들어갔다. 그만 그 도자기를 깨뜨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톰 흑인 노예가 그것을 보게 되었고 안심을 시키며 치우고 그자리에 조각을 맞추어 숨겨두었다. 다음날, 흑인 노예는 이 도련님에게 아버지가 없으면 노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위협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부시키고 부려먹기 시작하였다. 아들은 꼼짝없이 종의 종이 되었다. 꿈에도 나타나서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고통을 받고 정신적인 심한 우울증과 자책감과 기쁨을 잃고 피하고.... 그러던 어느날 결국 아버지방으로 들어갔다. 용서를 머뭇거리면서 나오고 말았다. 그럴때마다 톰이란 노예는 더욱 위협을 가하였다. 다음날 다시 용기를 내어서. 세 번째 가서는 그냥 울었다. 마침내 용서를 받았다. 그리고 나오는데 저기서 톰아지씨가 오는 것이었다. 또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 때 "나 안해...." 거절하였다. 또 겁을 먹고 용서를 빌러 들어갔다. 정말 용서하여 주신거죠? 아버지는 야단을 쳤다. "아버지 톰 아저씨가 무서워요...." 아버지는 야단을 치시면서 용서가 무엇인지를 안아주시면서 가르쳐 주었다. 그 다음에 괴롭히는 톰에게 아들은 큰 소리를 친다. "이 나쁜놈아!“ 하고 아버지께로 뛰어가 일러바쳤다. 그때 아버지가 이광경을 보고있다.호통을 친다. "내 아들을 지금껐 괴롭힌 자가 네 놈이냐? 이 아들은 나의 후계자이다, 잘못을 빌어라!" 아들은 아빠뒤로가서 소리친다. "나는 자유다. 너는 이제 나의 종이란 말이야“ 결언/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호세야 선자의 말입니다-호6:1-.“오라,우리가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어셨으나 낫게 하여 주실 것이요,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는 아침빛같이 일정하시다” 예례미야 선지자는 눈물로 외쳤습니다.29:10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심이라, 너희는 내게와서 부르짖으라 내게와서 기도하면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며 나를 만나리라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리라”
롬7장 ‘누가 나를 정죄하리요, 대적하리요 누가 나를 상소(고소)하리요’ 이렇게 하면 마귀가 정죄치 않고 우리는 죄에서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
출처: 송은근목사 설교창고 원문보기 글쓴이: 에이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