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강둑으로
유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 창원실내수영장 앞으로 나가 창원역에서 진해 용원으로 오가는 757번 첫 좌석버스를 탔다. 안민터널을 빠져 진해 시가지를 거쳐 웅천을 지났다. 용원은 부산 신항만과 거가대교로 인해 상전이 벽해가 되었다. 종점에서 어시장으로 들려보았다. 새벽 경매가 끝난 시장 바닥엔 여러 종류 활어와 어패류들이 진열 되어 있었다. 나는 빙글 둘러 구경만 하였다.
다시 종점으로 되돌아 나와 부산 하단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부산 강서 일대도 들판은 택지로 잠식되어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녹산 공단을 거쳐 을숙도를 앞둔 명지시장에서 내렸다. 시장 들머리에서 강변대로로 나가 보행자 조작 신호등을 눌러 녹색불이 와 강둑을 올랐다. 가까운 곳이 을숙도로 낙동강 생태탐방로 기점이다. 강 건너는 부산 사하구로 하단과 엄궁이었다.
나는 겨울철에 낙동강 생태탐방로를 찾아 몇 차례 걸었던 적 있다. 여름에 나가 보긴 처음이었다 겨울엔 날씨가 추워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질 않았다. 여름엔 산책로 벚나무 가로수가 녹음으로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많았다. 나처럼 산책을 나선 이들은 적고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유니폼에다 등번호만 달리한 마라톤 동호인들이 땀을 흘리면서 뛰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였지만 하늘만 흐리고 비는 오지 않았다. 나는 배낭에 우산을 준비했지만 펼쳐 쓸 일 없었다. 염막 쉼터 정자에 올라 잠시 쉬었다. 아까 용원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마련한 곡차를 한 병 비웠다. 이어 길고 긴 강둑 따라 계속 걸었다. 강둑에 조성된 영산홍들은 지속되는 가뭄으로 이파리가 생기를 잃어갔다. 아름드리 벚나무들도 수분 부족으로 마르는 듯했다.
맥도 생태공원이 가까워지자 늪지에는 연잎이 무성했다. 나는 둔치로 내려가 연잎을 감상했다. 더위가 일찍 찾아와서인지 연꽃들이 피어났다. 백련과 홍련이 같은 비율로 연잎 사이로 봉오리를 펼쳐 있었다. 나는 폰에다 사진을 몇 장 남겼다. 둔치는 햇볕이 강해 다시 강둑으로 올라 벚나무 가로수 그늘 밑으로 걸었다. 낙동강을 가로지른 교각 밑을 지나니 강 건너는 사상이었다.
김해 공항이 가까워지자 이착륙 비행기들이 낮게 날았다. 경전철 선로가 강을 가로질렀다. 높다란 교각으로 강을 건너는 모노레일 따라 움직이는 경전철 객차는 하늘을 나는 장난감 기차처럼 보였다. 아까 염막 쉼터에 이어 금호 쉼터와 동덕 쉼터엔 정자가 있었다. 박목월의 ‘나그네’와 조지훈의 ‘완화삼’을 새긴 빗돌을 지났다. 지역 사회단체가 세운 배재황의 ‘오막살이’ 시비도 지났다.
공항 곁에는 덕두였다. 덕두를 지나면 등구였다. 등구는 재미 있는 지명이었다. 거북이가 올라왔다는 곳이다. 강가이다 보니 물에 사는 거북이 뭍으로 오른 곳이라는 이름이었다. 나는 등구까지 가질 않고 덕두에서 강변도로를 건넜다. 덕두는 김해공항 곁의 자연마을로 초중학교와 오일 장터로 있었다. 내가 그곳에 지날 때면 들리던 보리밥집은 허물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덕두에서 경전철 역사로 올랐다. 대저 일대 김해 평야와 강 건너 부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상을 출발해 김해 시내로 향하는 경전철을 탔다. 들판을 지나 김해 시내로 들어갔다. 해반천 따라 교각을 세워진 경전철 선로는 가야대역이 종점이었다. 종점에서 역사를 내려서니 미리 연락이 닿은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무척 오랜만에 만났다. 근처 돼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전에는 창원 살았는데 교장으로 승진하면서 임지 따라 김해로 이사 간 친구였다. 근래 와서 서로 얼굴을 본 지 무척 뜸했더랬다. 그간 흐른 세월의 간극만큼 화제도 끊어졌다 이어지길 반복했다. 건강과 여가시간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었다. 맑을 술을 두 병 비우면서 공기 밥은 일부 남겼다. 식당에서 일어나 친구는 맞은편 아파트단지로 들고 나는 창원으로 가는 58번 버스를 탔다. 1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