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목적
제1차 대전이 발발(勃發)한 후,
하늘에서 지상(地上)의 목표(目標)를 타격(打擊)할 수 있는 폭격기(爆擊機)가 등장(登場)하자 이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대응(對應)도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기존(旣存)에 사용 중인 포(砲)나 기관총(機關銃) 등으로 요격(邀擊)을 시도(始睹)했는데, 3차원으로 움직이는 비행기(飛行機)를 명중(命中)시키기는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한마디로 요행(要行)을 바라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무유도 화기(無誘導火器)로 항공기(航空機)를 잡는 것은 FCS의 성능(性能)이 좋아진 지금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제1차 대전 말기인 1918년 영국군이 사용한 QF13 파운더 9 cwt 대공포, FCS가 좋아졌어도 무유도 화기로 항공기를 요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사일이 등장하기 전에는 가까이 다가가 정확히 공격(攻擊)할 수 있는 전투기(戰鬪機)가 가장 좋은 해결책(解決冊)이었습니다.
폭격기는 덩치가 큰데다 폭탄(爆彈)을 탑재(搭載)하고 있어서 상대적(相對的)으로 속도(速度)와 기동력(機動力)이 떨어집니다.
호위(護衛)를 받지 못하면 날렵한 전투기에게는 쉬운 먹잇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不具)하고 완벽(完璧)하게 차단(遮斷)하기는 어려웠는데,
특히 요격기(邀擊機)가 부족(不足)할 경우에는 폭격에 의한 일부 피해(避害)는 불가항력(不可抗力)으로 여겼습니다.
↑B-17 폭격기를 요격하는 Me 163 로켓전투기
그런데 제2차 대전 말에 등장한 핵(核)폭탄은 그런 조금의 예외(例外)도 용납(容納)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워낙 살상력(殺傷力)과 파괴력(破壞力)이 커서 1950년대까지 유일한 핵폭탄 투발 수단(投發手段)이던 전략폭격기(戰略爆擊機)는 반드시 막아내야 할 목표(目標)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동안 전략적 우위(戰略的優位)를 누린 미국도 1949년에 소련이 핵 실험(核實驗)에 성공하고 B-29를 데드카피 한 Tu-4를 실전(實戰)에 배치(排置)하자 적의 폭격기를 막아내야 하는 처지(處地)가 되었습니다.
↑사상 최강 핵폭탄 차르봄바
1961년 10월 30일 오전 11시32분 구(舊)소련의 북극해(北極海)에 있는 노바야제믈랴(Nova Zembla) 제도(諸島) 4.2㎞ 상공(上空)에서 강력한 폭음(爆音)과 함께 거대한 불덩이가 생겼다.
직경(直徑)이 무려 8㎞에 달했던 불덩이는 이내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어냈다.
버섯구름은 높이 60 ㎞, 폭 30~40㎞까지 커졌다. 100㎞ 바깥에서도 3도 화상(火傷)을 입을 정도의 열(熱)이 발생했고, 후폭풍(後爆風)은 1000㎞ 떨어져 있는 핀란드(Finland) 쪽 건물의 유리창을 깰 정도였다.
700㎞ 떨어진 곳에서도 충격파(衝擊波)가 감지(感知)됐다.
폭발(暴發)에 의한 지진파(地震波)는 지구를 세 바퀴나 돌았다.
이 거대한 폭발의 주범(主犯)은 역사상 가장 위력이 강한 핵폭탄이었던 소련의 ‘차르폭탄(Tsar Bomba)’이었다. 말 그대로 ‘황제(차르)폭탄’이었다. 원자폭탄(原子爆彈)보다 위력(威力)이 강한 수소폭탄(水素爆彈)이었던 차르폭탄의 폭발력은 TNT폭약 기준으로 5,800만t(58메가톤)에 달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이 TNT폭약 기준으로 1만5000~2만2000t(15~22㏏)이었던 점에 비춰 보면 이 핵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원자폭탄의 3,800배 이상 위력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이 만든 가장 강력한 핵폭탄(25메가톤)에 비해서도 2배 이상의 위력을 가졌다.
차르폭탄은 1961년 7월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ev, 1894년 4월 15일~1971년 9월 11일) 공산당 서기장(共産黨書記長)의 지시(指示)에 따라 개발이 시작됐다. 프로젝트 암호명은 개발자의 이름을 딴 ‘이반(Ivan)’ 뇌제(雷帝)이었다.
기존 부품을 활용(活用)해 불과 14주 만에 만들어졌다. 폭탄의 무게는 27t, 길이는 8m, 지름은 2m에 달했다.
실전(實戰)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존심 대결(自尊心對決)이 치열(治熱)했던 냉전 시절(冷戰時節) 미국에 대한 시위(示威)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분석(分析)이 많다.
너무 크고 무거워 폭발 실험도 쉽지 않았다.
우선 폭탄을 나를 TU-95 폭격기의 폭탄 수납(爆彈輸納) 격실 문을 제거(除去)하는 개조(改造)를 해야 했다.
폭발 위력이 너무 커 폭격기는 폭탄 투하 직후 폭발지점으로부터 45㎞나 떨어진 곳까지 급히 피신(避身)해야 했다.
이를 위해 무게 800㎏에 달하는 특수 낙하산(特殊落下傘)이 제작돼 폭탄의 낙하 속도(落下速度)를 늦췄다.
실험 당시 폭탄은 10.5㎞ 고도(高度)에서 투하(投下)됐다.
충격파(衝擊波)가 예상보다 커 한때 폭격기가 위험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핵폭탄은 물론 재래식 폭탄에서도 러시아는 세계 최강 기록을 지키고 있다.
2007년 9월 러시아는 ‘모든 폭탄의 아버지(FOAB·Father Of All Bombs)’라 불리는 신(新)무기 개발 사실을 발표했다.
소형 핵폭탄급 위력을 갖고 있어 전 세계 재래식 폭탄 가운데 가장 큰 위력을 갖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ATBIP(Aviation Thermobaric Bomb of Increased Power)다.
01 러시아 SS-18 미사일 발사 장면.
02 사상 최대 대륙간탄도미사일 SS-18.
03 소련 핵폭탄 차르봄바 투하 및 폭발 장면.
‘아버지’란 명칭이 붙은 것은 미국에 대한 경쟁의식(競爭意識)이 작용(作用)한 결과였다.
미국은 2003년 ‘MOAB(Massive Ordnance Air Blast)’라 불리는 강력한 재래식(在來式) 신형 폭탄을 선보였다.
길이 9.1m, 무게 10.3t에 달하는 이 폭탄은 당시로선 재래식 폭탄 가운데 가장 강력한 위력을 가졌다.
이에 따라 ‘모든 폭탄의 어머니(Mother Of All Bombs)’라는 별명이 붙었다.
MOAB는 특히 지하 수십m 이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유사시 김정은 등 북한 수뇌부가 전쟁을 지휘할 북한 지하 전략벙커 등을 파괴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MOAB에 대응해 ‘어머니 폭탄’보다 강한 ‘아버지 폭탄’을 만든 것이다.
FOAB는 미국의 MOAB보다 4배의 폭발력을 가졌지만 무게는 7.8t으로 가볍다.
당시 러시아 국영방송(國營放送)은 “러시아 수퍼폭탄은 7.1t의 폭약을 사용하면서도 고효율(高效率)의 새 폭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8t의 폭약을 사용하는 미국 수퍼폭탄보다도 폭발력이 4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알렉산데르 루크신((Alexander Rukshin) 러시아 합참차장(合參次長)은 언론 인터뷰에서 “새로운 공중무기인 진공폭탄이 그간 실험에서 핵무기에 필적(匹敵)하는 성능과 위력을 보였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러시아 방송은 TU-160 전략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하고 큰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을 방영했다.
FOAB의 폭발력은 TNT 폭약 44t이 터진 것과 같은 위력을 갖고 있으며, 폭발 반경은 약 330m에 이른다.
미국 MOAB의 폭발 반경은 137m가량이다.
초강대국의 대표적 전략무기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분야에서도 러시아는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ICBM 기록을 러시아 SS-18(R-36M) 미사일이 갖고 있다.
‘사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 미사일은 1967년 실전배치돼 지금까지 운용되고 있다.
18메가톤 또는 25메가톤 위력을 갖는 강력한 단일 탄두를 장착하도록 만들었지만 최대 10개의 서로 다른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다탄두(多彈頭)를 장착할 수도 있다.
길이 32.2m, 직경 3.05m로 무게는 209t에 이른다.
최대 사거리는 1만6,000㎞에 이르고 음속(音速)의 23배에 달하는 속도로 목표물에 낙하한다.
계속 개량돼 6개의 모델이 있으며 정확도도 초기 700m에서 220m로 향상됐다.
이 미사일은 최근 한국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지난 3월 26일 러시아 야스니 발사장에서 발사돼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3A호를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린 드네프르 발사체가 바로 이 SS-18 미사일을 개조한 것이다.
아리랑 3A호는 국산 위성으로는 처음으로 적외선카메라를 장착, 밤이나 구름 등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전천후로 55㎝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어 정찰감시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SS-18의 강력한 추진력과 많은 탑재능력이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우주발사체로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주간조선
↑핵폭탄은 반드시 막아내야 할 목표가 되었습니다
F-102 전투기는 그런 시대상(時代相)을 배경(背景)으로 탄생(誕生)한 요격기(邀擊機)입니다.
F-89, F-94 등이 한창 배치(配置) 중이었으나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 미 공군은 1949년에 새로운 방공 요격기 획득 사업(防共邀擊機獲得事業)을 실시했습니다.
소련의 핵 보유(核保有)가 확인되자 이듬해 업체(業體)들에게 20km 고도(高度)까지 상승(上乘)할 수 있고 개발 중인 XM-1179 FCS에 연동(聯動)된 공대공(空對空)미사일을 운용(運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條件)이 제시(提示)되었습니다.
↑미국 최초로 실전에 배치된 델타익 전투기인 F-102
그중 핵심(核心)은 마하 1.3이상으로 비행(飛行)이 가능(可能)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폭격기(爆擊機)를 차단(遮斷)하려면 어찌되었건 출몰(出沒)한 곳까지 무조건 빨리 접근(接近)해야 했으므로 당연히 고속 비행 능력이 요구(要求)되었습니다.
6개 업체가 참여(參與)한 경쟁(競爭)에서 1951년 컨베이어(Convair)의 XF-102가 공군(空軍)의 낙점(落點)을 받았습니다.
여타 업체의 제안(除案)보다 특별히 뛰어나서라기보다 빨리 개발(開發)이 완료(完了)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공해 상공에서 소련의 Tu-95 폭격기를 요격 중인 F-102
XF-102가 이미 시험 비행(試驗飛行)까지 실시했던 컨베이어의 XF-92 실험기(實驗機)를 기반(基盤)으로 하고 있어 개발 기간(開發其間)을 단축(短縮)시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 공군은 제2차 대전 당시에 신속(新屬)한 획득을 위해 개발과 동시에 물량(物量)을 발주(發走)했던 쿡-크레이기 방식(Cook-Craigie Plan)을 적용(適用)했습니다.
불과 4년 만인 1954년에 배치를 목표로 했을 만큼 소련의 핵무기 보유가 미국을 다급(多級)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F-102, F-106, B-58의 기술적 기반이 된 XF-92
1953년 YF-102 프로토타입[prototype, 원래의 형태 또는 전형적인 예, 기초 또는 표준이다.
시제품(試製品)이 나오기 전의 제품의 원형(原形)으로 개발 검증(開發檢證)과 양산(量産) 검증을 거쳐야 시제품이 될 수 있다. 프로토타입은 '정보시스템의 미완성(未完成) 버전 또는 중요한 기능(技能)들이 포함(包含)되어 있는 시스템의 초기모델'이다]이 초도 비행(處女飛行, maiden flight)에 성공했으나 예상(豫想)치 못한 여러 문제점(問題點)들이 드러났습니다.
엔진, FCS 등의 개발이 지연(遲延)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초음속 돌파(超音速突破)에 실패(失敗)했던 것입니다.
날렵한 동체(動體)와 고속 비행(高速飛行)에 적합(適合)한 델타익(delta翼, 三角翼)을 채택(採擇)했음에도 예상과 달리 최고 속도가 마하 0.98에 머물렀습니다.
원인(原因)을 분석(分析)한 결과 주익(主翼) 뒤편에 발생(發生)한 충격파(衝擊波)에 의한 항력(抗力) 때문이라는 사실(事實)이 밝혀졌습니다.
↑기대와 달리 음속 돌파에 실패한 YF-102 프로토타입
이에 따라 천음속 (遷音速: 물체 주위의 흐름 속에 음속 이하 부분과 음속 이상 부분이 공존할 때의 물체 속도를 말한다) 영역(領域)에서 급격(急擊)히 증가(增加)하는 항력을 막기 위해 동체를 완만한 형태로 제작하는 이른바 면적법칙(Area rule, NACA 엔지니어 Richard Whitcomb의 이름을 따서 명명(命名)된 Whitcomb영역 규칙(領域規則)은 천음속 영역 규칙이라고도 하며 마하 0.75에서 1.2 사이에서 발생하는 천음속 속도에서 항공기의 항력을 줄이는 데 사용되는 설계 절차)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항공기 개발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결국 1954년 12월 20일 대대적(大大的)으로 재설계(再設計)된 YF-102A가 음속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여러 경쟁기가 이미 초음속을 돌파했고 마하 2를 목표로 한 F-104가 완성 단계(完成段階)여서 앞날이 순탄(順坦)치 않았습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