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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질문 중에 오늘은 부처님이 왜 걸식을 했는지에 대한 스님의 대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탁발은 인도의 전통문화였습니다. 탁발은 부처님이 처음 하신 게 아니고, 당시 인도 수행자들의 전통이었습니다. 부처님도 그 전통을 따른 거예요.
부처님은 어릴 때는 브라만교를 믿었고, 커서는 출가사문의 무리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6년 간의 고행 끝에 제3의 길인 ‘중도’를 발견하셔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지만, 외부적으로는 브라만이 아닌 출가사문 무리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출가사문의 가르침에 치우쳐 있지 않았어요. 이것도 저것도 떠난 새로운 길인 중도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형식은 출가사문의 무리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사는 방식은 출가사문의 길을 따랐던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걸식을 하고, 시신을 덮기 위해 버린 옷을 주워 입고, 나무 밑에서 자는 생활을 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얻어먹었다는 게 아니라 탐욕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출가 수행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먹고 싶고, 입고 싶고, 자고 싶은 욕망을 다 내려놓아야 했던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의식주에 얽매여 살잖아요. 부처님은 ‘아무거나 먹겠다’, ‘아무거나 입겠다’, ‘아무데서나 자겠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의식주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해 버렸습니다.
다른 종교처럼 전법을 하려면 큰 건물도 있어야 하고, 제사장도 있어야 하고,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부처님과 승단이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과 제자들은 자는 것을 아무 데나 자도 되니까 집 걱정이 없었습니다. 먹는 건 남이 먹다 남은 것을 얻어먹음으로 인해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었습니다. 옷은 시체를 덮기 위해 사용했던 분소의를 주워 입어서 해결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의식주 문제를 다 해결해버렸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승단을 찾아와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큰 건물을 짓고 제사장이 그것을 운영하는 방식에 비해서는 권위가 떨어져 보였기 때문에 전법에 굉장히 불리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확실한 콘텐츠, 즉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용이 확실하니까 형식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가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법을 전파하는 데에 있어서는 오히려 부처님이 사용한 이 방식이 굉장히 유리했습니다. 절을 안 지어도 되잖아요. 꼭 브라만 신분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제사장이 아니어도 누구나 다 마음을 내면 전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전 세계에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겁니다.
부처님이 취한 이런 방식은 굉장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얻어먹었다가 핵심이 아니라 검소하게 살았다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정토행자의 서원에도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잔다는 표현을 넣은 겁니다. 적게 잔다는 말은 수면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검소한 생활 태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검소해야 합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합니다. 마음에 괴로움이나 불안함이 없고 평화롭고 행복해야 합니다. 여기에다가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수행자는 사회적 정의를 외면하고 나만 편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정의란 평등성을 실현하는 겁니다. 남녀의 차별, 계급의 차별, 성적 지향의 차별,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배타성을 부정하고, 평등성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사회적 정의입니다. 부처님은 평등성을 가르친 분이고, 우리가 수행자라면 이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적인 입장에 서면 지배 세력의 질서를 합리화해야 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아주 투명한 민주적 질서 속에서 평등성에 기초한 가르침을 폈기 때문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어요.
만약 현재의 불교가 보수적이라면 그 이유는 지배 세력과 결탁해서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은 항상 평등성에 기초한 사회 정의를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수행자가 되려면 이 네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생활을 검소하게 해야 합니다.
둘째,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겸손한 자세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합니다.
셋째, 어떤 상황에서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실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토불교대학은 그런 수행자가 되는 공부를 하는 곳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셔서 그런 수행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라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다 하고 나니 저녁 6시가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채팅창에 소감을 올려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양한 소감이 올라왔습니다.
“알아차리기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궁금한 점에 대해 대답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니까 참 좋아요.”
“깨어있겠습니다. 알아차림을 목표로 수행하겠습니다.”
스님은 소감에 대해 짧게 코멘트도 해주었습니다.
“불교대학을 개근하면 스님과 악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네, 개근하세요.” (웃음)
마지막으로 즉문즉설을 마치며 다음 시간을 기약했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시간을 갖겠습니다. 평일에 이런 시간을 가지려니까 교실마다 수업을 하는 날짜가 다 달라요. 그래서 모두가 생방송에 접속할 수 있는 일요일에 진행을 해보았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난 뒤에 다시 날짜를 잡아서 대화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저녁예불을 드리고 7시부터 8시 15분까지 농사팀과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마음 나누기는 놓치지 않습니다.
나누기를 마치고 저녁 8시 30분부터 온라인 일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날이 더워서 창문을 열었더니 개구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일주일간 잘 지내셨습니까? 이곳은 오늘 기온이 27도 정도 됐어요. 밖에서 일할 때는 많이 더운데, 이제는 실내까지도 좀 덥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깊어졌고 마치 여름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오늘도 외국인들 질문을 몇 가지 받고 시작하겠습니다.
Hello there. Did you have a good week? The temperature in Korea today, when all the way up to about 27 degrees centigrade about 88, 87 degrees fahrenheit, so it was a quite hot working outside today. As if the late spring is giving way too early summer. As always I will start today responded to couple of questions from non Korean speakers.”
간단히 인사말을 건넨 후 곧바로 외국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온라인 명상이 끝난 후 4명의 외국인들이 질문을 올렸습니다. 그중 첫 번째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향상시킨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가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우리 삶이 향상된다’라고 표현하셨는데, 어떻게 되는 것을 향상된다고 말하는 건가요?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높아지고, 인생이 즐거워지고, 이런 걸 갖고 삶이 향상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요? 무엇을 두고 말하는지 좀 불분명합니다.
사람의 모습을 밖에서만 관찰하면, 돈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집이 큰 사람, 좋은 옷을 입은 사람, 이렇게 다양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명상에서는 이런 차이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명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마음의 상태는 서로 다릅니다. 괴롭다든지,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든지, 미워진다든지, 초조하고 불안하다든지,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마음의 상태가 안정되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계속 오지 않는다고 합시다. 똑같은 상황인데, 어떤 사람은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이 있구나, 좀 기다려 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왜 안 오느냐고 하면서 화내고, 짜증내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다른 차편을 이용해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어떤 대책을 강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잘 안될 때도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왜 안 될까’ 하고 연구하면서 모르면 남한테 물어보고, 다시 시도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서 좋고, 돈이 없으면 가볍게 삶을 살아갈 수 있어서 좋은 겁니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정해 놓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불만하고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대로 형편 되는 대로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삶의 자세를 가지면 인생이 가볍습니다. 더우면 옷 하나 벗고, 추우면 옷 하나 입으면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명상을 하면 이런 과정에서 마음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삶이 향상된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명상은 우리 삶을 향상시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향상시킨다는 게 다른 의미라면 명상은 삶을 향상시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명상은 돈을 번다든지, 건강해진다든지, 시험에 합격한다든지 이런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마음을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바꾸는 것이 명상입니다.
명상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편안하게 작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명상은 주어진 상황을 잘 수용해서 적응을 하는 것입니다. 명상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의 자세가 변화하는 것을 향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명상은 삶을 향상시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명상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을 한 후 나머지 세 개의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질의응답을 30분 동안 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똑바로 펴고, 고개를 똑바로 듭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거나 무릎 위에 얹고 눈을 편안하게 감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집니다. 약간 긴장하거나 조급하다면 ‘내가 긴장하고 있고, 조급해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마음을 콧구멍 끝에 딱 집중하고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길게 들어오면 ‘길게 들어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가쁘면 ‘가쁘구나’, 숨이 부드러우면 ‘부드럽구나’ 하고 다만 호흡의 상태를 알아차립니다.”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이 시작되었습니다.
탁! 탁! 탁!
30분이 경과하고 다시 죽비 소리가 들렸습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가 끝나자 다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해보니 어땠습니까? 덥다고 창문을 열었더니 온 천지가 개구리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웃음) 오늘 명상을 해 본 소감을 한번 올려 봐주세요.”
수백 개의 소감이 채팅창에 올라왔습니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건가요, 정겹네요”
“머릿속이 시원하고 개운하고 이완되는 느낌입니다”
"숨에 마음을 집중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리가 저리다는 것을 알아차리니 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는 게 신기했습니다"
"6주째 명상을 하니 조금씩 덜 힘든 것 같아요"
"온라인 명상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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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도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짧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간지러움이 있는데 손으로 긁지 않고 꾹 참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긴장됩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간지러운 감각을 그냥 느껴보면 됩니다. 손으로 긁는 것도 아니고, 참는 것도 아니고, 간지러운 감각을 그냥 느낍니다.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호흡을 놓치면 마음을 간지러운 감각에 빼앗긴 겁니다. 저 밖에 개구리 소리가 들리지만 내 마음은 개구리 소리에 따라가지 않고, 다만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듯이, 옆구리에서 또는 귓속에서 간지러움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코끝에 집중해서 호흡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다만 할 뿐입니다.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혹시 놓치게 되면 다시 알아차리면 됩니다. 편안한 가운데 그냥 꾸준히 해 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간단한 방법입니다. 간단하지만 막상 해보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저절로 편안해지고, 집중력은 높아지고, 알아차림은 또렷해집니다.
이런 연습이 되면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그 사람의 모습이나 어떤 소리에 나의 마음이 반응하는 것을 아주 또렷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일어나도 내가 흥분하거나 끌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감정에 안 끌려가려고 입을 악다물고 참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편안하게 알 뿐입니다.”
스님은 올라온 소감을 몇 개 더 읽은 후 다음 주를 기약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직접 명상을 해 본 소감을 올려주셨는데요. 다음 주에도 다시 해 보겠습니다. 다들 편안한 밤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So, a lot of you have applauded your comments the chat window and will do this again next week. I wish all of you a good night or did day.”
생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스님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방송 중에 읽지 못한 소감들을 더 읽어 보았습니다. 외국인들이 영어로 올린 질문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방송이 끝나고도 유튜브 채팅창으로 감사 인사가 계속 올라왔습니다. 한동안 채팅창을 바라보던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늘 하루가 기네요. 수고 많았어요.”
아침부터 스님은 전국 청년활동가들과 화상 회의를 하고, 천여 명의 불교대학생들과 즉문즉설을 하고, 3천4백 여명과 함께 명상을 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즉문즉설 강연이 모두 취소되었지만 매일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농사일을 한 후 10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강의를 생방송으로 할 예정입니다. 오후 1시부터 밤늦게까지는 두북 특별위원회 회의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