玉階怨(옥계원)
李白(이백)
玉階生白露(옥계생백로)
夜久侵羅襪(야구침라말)
卻下水晶簾(각하수정렴)
玲瓏望秋月(영롱망추월)
옥계에 이슬이 맺혀
밤이 깊자 비단 버선에 스미네
돌아가 수정렴을 내리고서
영롱한 가을 달을 바라보누나
[通釋]
옥계에 이슬이 생겨나니,
밤이 오래되자 이슬이 비단 버선을 적신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수정으로 된 주렴을 내리고
영롱한 달빛을 바라보고 있다.
[解題]
이 작품은 궁녀(宮女)의 원정(怨情)을 그린 궁사(宮詞)이다.
당시 황제에게는 수천 명의 후궁이 있어서,
많은 궁녀들은 성은(聖恩)을 한 번도 입지 못한 채
오랜 세월 깊은 궁 안에 유폐(幽閉)되어 고독한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이백은 이 시에서 그녀들의 불행한 생활을 간접적인 묘사를 통해
애절하게 표현하였다.
1‧2구는
궁녀가 오래도록 섬돌에 서 있다가 밤이 되자
이슬이 그녀의 비단 버선을 적시는 것을 묘사하였다.
‘侵(침)’자는 사념에 깊이 잠겨 멍하게 오랫동안 서 있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부각시켰다.
끝없는 애상(哀傷), 억울함, 고민으로 가득한 마음이
이 10자를 통해 선명하게 표현되었다.
밤이슬이 피부에 닿자 비로소 감상에서 깨어난 그녀는,
3‧4구에서 마음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실내 역시 얼음처럼 차갑기는 마찬가지다.
주렴을 내리는 것은 한기(寒氣)의 엄습을 막는 동시에
번져가는 그리움을 차단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긴 발을 통해 그 밝고 환한 가을 달이 비치고 있으니,
또 얼마나 많은 수심(愁心)이 일어나겠는가.
우두커니 앉은 채로 유일한 짝인 달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결국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문면(文面)에 원(怨)이라는 글자는 없지만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궁녀의 깊은 원정(怨情)을
이면(裏面)에 드러냈으니,
이것이 바로 이 시의 예술적 특장(特長)이라 하겠다.
●玉階怨(옥계원) : 악부시(樂府詩) 《相和歌상화가)》 〈楚調曲초조곡)〉에 속한다. ‘玉階(옥계)’는 옥으로 만든 섬돌인데,
궁사(宮詞)로 볼 경우 궁중의 여인이 거처하는 곳의 계단을 의미한다.
● 侵(침) : 침입(侵入) 또는 삼투(滲透)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젖어든다는 의미이다.
● 卻下水晶簾(각하수정렴) : ‘卻下(각하)’는 방하(放下),
즉 풀어 내린다는 뜻이다.
또는 ‘방으로 돌아가 내린다.’의 뜻으로도 풀이된다.
‘水晶簾(수정렴)’이 ‘水精簾’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지금의 유리구슬로 된 주렴과 비슷하다.
● 玲瓏(영롱) : 밝은 달빛을 형용하는 말이다.
[출처] 옥계원 玉階怨 (동명,이백,사조)|작성자 어이무사10
玉階怨(옥계원)
궁궐에 사는 여인의 슬픔
謝眺(사조; 464-499)
위진남북조 시대 齊(제)나라의 시인,
당나라 시인 이백 두보도 칭찬할 만큼 뛰어난 시재
唐詩(당시)를 미리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음
夕殿下珠簾(석전하주렴)
流螢飛復息(류형비부식)
長夜縫羅衣(장야봉라의)
思君此何極(사군차하극)
저녁 무렵 전각에는 주렴이 내려지고
흐르는 반딧불이 날기를 그쳤구나
긴긴밤 비단 옷 짓는데
님 생각은 이렇게 끝이 없는가
[출처] 옥계원 玉階怨 (동명,이백,사조)|작성자 어이무사10
이하원문=동아일보-끝없는 그리움[이준식의 한시 한 수]〈179〉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9-23 03:00
옥돌 계단을 적시는 이슬,
밤이 깊자 비단 버선으로 스며든다.
방으로 돌아와 수정 발 드리우지만,
가을달은 여전히 영롱하게 빛나네.
玉階生白露, 夜久侵羅襪.
却下水晶簾, 玲瓏望秋月.
―‘옥돌 계단에서의 원망(옥계원·玉階怨)’ 이백(李白·701∼762)
밤이 이슥하도록 섬돌 위를 서성이는 여인,
이슬이 버선에까지 스미는 걸 느끼고서야 방 안으로 돌아온다.
수정 주렴을 드리웠지만 눈길은 여전히 저 영롱한 가을 달을 놓치지 못한다.
섬돌과 방 안 사이를 오가는 짧은 동선,
그리고 주렴 내리기와 달 바라기라는 단순한 몸짓이지만
시인의 섬세한 관찰을 거치면서 여인의 처지와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밤이슬 맞아가며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여인은 원망과 실망을 안은 채 방으로 들어와 주렴을 내린다.
자신을 저 적막 그득한 외부 공간으로부터 애써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 이슬과 가을밤의 한기를 차단하고,
견디기 힘든 오랜 배회와 기다림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정 주렴이 저리도 반들거리고 투명하거늘
어떻게 자신과 외부를 격리해줄 수 있단 말인가.
한시도 내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저 영롱한 달은
그리움에 애간장 졸이는 나를 위로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내 불면과 회한을 끝없이 선동하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이 시는 이백이 평소 흠모했던 육조시대 사조(謝조)의 ‘옥계원’을
모티프로 삼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저녁 무렵 전각에는 주렴이 내려지고,
반딧불이는 날았다 쉬기를 반복하네. 긴긴밤 비단옷 짓고 있는데,
그대 그리는 이 마음 언제면 다할는지’가 그것이다.
자잘한 일상에 얽매이지 않는 호탕한 기질의 이백과는
도무지 어울릴 성싶지 않은 분위기며 필치인데,
‘옥계원’은 ‘여인의 원한 혹은 그리움’을 주제로 시에
상투적으로 붙였기 때문에 한대 이후에 뭇 시인들이 자주 사용했던 시제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