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천산업고 김웅비
준비된 공격수의 이유 있는 자신감
온 몸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본인을 향한 칭찬에는 웃음을 짓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노력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시킨다. 먼 미래에는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 기억 속에 각인시키고 싶어했다. 제천산업고 김웅비다.
지난해 12월, ‘최연소 국가대표’ 임동혁(18·라이트) 인터뷰 진행 차 제천산업고를 방문했을 때였다. 인터뷰 일정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설 무렵 김광태 감독이 손가락으로 한 선수를 가리켰다. “저 선수, 나중에 큰 선수가 될 자질이 있다. 공격, 수비 모두 좋은 편이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선수다”라는 말과 함께.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봤더니 ‘괜찮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수가 바로 레프트 김웅비였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인터뷰에 앞서 김웅비를 탐색했다. 지난 3월 제천에서 열린 2016 봄철 남녀중고배구연맹전 남자고등부 결승전을 인터넷 중계를 통해 보았다. 위치를 가리지 않고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공중에서 떠 있는 시간이 여타 선수보다 길었다. 흡사 대한항공 김학민(34, 대한항공)을 연상케했다. 그에게 김학민 같다고 이야기했더니 “주위에서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김학민 선배가 훈련에 임하는 자세가 좋다고 들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됐고, 배구하는 모습을 보니 더 괜찮은 선수 같았다. 김학민 선배가 잘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김웅비의 롤 모델은 따로 있다. 아버지 김명진(51) 씨다. 김 씨는 1980년 중반 최천식(인하대 감독)과 함께 대한항공에서 센터로 활약했다. 김웅비는 “아버지에게 많이 배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버지 반만 해도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기 싫어 더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 배구공을 잡다
어렸을 때 꿈은 변호사였다. 만약 배구를 하지 않았다면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지, 공부와는 인연이 없었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부모님께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특별히 반대하진 않았다. 서로 ‘어떤 종목을 해볼까’라는 고민을 계속하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을 주고받는 배구가 적당하다 여겼다. 아버지가 배구선수 출신이어서 접하기 쉬웠다. 인하사대부중 배구부에 발을 내디뎠다. ‘배구선수 김웅비’로서 첫 발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결국 인천에서 1년을 보낸 뒤, 아버지 고향이기도 한 충북 제천으로 전학하는 과정에서 리시브 등 기본기를 다듬기 위해 1년을 쉬었다. 제천중에서 생활은 순탄했다. 스스로 잘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조성해 준 덕에 훈련도 즐겁게 했다. 사촌 형 김도현(20·제천산업고)도 같은 팀에 있었다. 사촌 형은 그가 배구하는 데 있어 지금도 큰 버팀목이다.
그는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도움을 많이 줬다. 내가 형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라고 김도현에게 고마워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체력 및 기본기 반복훈련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 이론 교육도 빼놓지 않았다.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인정받아 유스대표팀에 선발되어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 유스남자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부상을 통해 얻은 교훈
유스대표팀 일정을 모두 마친 그는 팀에 복귀, 전국체전에 대비해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시련이 앞을 가로막았다. 체전을 며칠 앞둔 날, 부친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일교차가 가장 심한 날이니 다칠 수가 있다. 조심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터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몸을 충분히 풀지 못한 채 훈련에 임했다. 큰일이 터졌다. 착지하다 왼쪽 발목이 부러졌다. 틀어진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거쳐 재활까지 5개월 여 소요됐다.
2015년 7월 대통령배를 앞두고 코트에 복귀했다. 제천산업고는 제 49회 대통령배 전국 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팀 내 활약을 인정받아 우수선수상을 수상, 복귀를 알렸다. 이후, 2015 전국체전에서 임동혁과 함께 금메달을 수확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일련의 과정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그는 “아버지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며 “몸을 확실하게 푼 뒤 훈련이나 경기에 임해야 한다. 큰 경험이 됐다”라고 전했다.현재도 지난해보다 공격 비중이 높아진 탓에 오른쪽 어깨에 염증이 생겼다. 5월 남해에서 열린 2016 전국 남녀종별배구선수권대회에서 교체멤버로 대회를 뛰었다. 스스로도 “예전 같았으면 그냥 코트에 나섰다. 다친 이후로 감독, 코치도 배려를 많이 해준다”라고 말했다.

봄철연맹전, 그리고 MVP
올해 3학년으로 주장을 맡았다. 동료들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에 따른 걱정부터 앞섰다. 다행스럽게 동기, 후배들이 잘 따랐다. 그도 “팀 분위기 자체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그냥 동네 형이다. 그럼에도 훈련할 때든 뭐든 지켜야 할 건 지키는 편이다”라고 언급했다. 3월, 제천에서 2016 봄철 전국중고배구연맹전이 열렸다. 제천산업고는 그와 임동혁을 앞세워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전을 앞두고 관중석이 꽉 들어찼다. 동료들 모두 긴장된 모습이었다. 그 역시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힘이 들어갔다.
부담감 탓인지 첫 세트를 먼저 내줬다. 2, 3세트를 따내며 승기를 잡는 듯 했지만, 4세트를 내주며 마지막 세트까지 갔다. 5세트 중반에도 8-10까지 몰렸다. 승부욕에 불탔다. 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전을 할 것이라는 믿음만이 있었다. 임동혁, 임성진(18)이 차례로 공격을 성공시켜 11-11을 만든 뒤, 본인이 직접 역전을 이끌어냈다.
그는 “역전하면서 우승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힘들었음에도 기분이 좋아서 에너지가 마구 솟았다. 이 경기 이후 설사 지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역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결과는 우승. 김웅비는 MVP까지 수상, 겹경사를 누렸다.

‘배구를 잘하는 선수’보다는 ‘배구도 잘하는 사람’
올해 1월, 대한배구협회에서 발표한 남자배구대표팀 강화훈련 명단에 그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가대표라니, 기쁨이 가득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열심히 했고, 좋은 결과가 있어서 좋다”며 “대표팀 훈련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내가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책임감’에 대해 느꼈다. 박기원 감독(현 대한항공)은 선수들에게 “대표팀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원하고 질투를 하는 자리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웅비도 “부담보다는 재미있었다. 갔다 와서 도움이 많이 됐다. 당장 보이진 않겠지만, 이 때 경험을 토대로 더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약관 20살이다, ‘장점’은 있어도 ‘단점’은 없다고 말한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장점은 살리고 단점이라 단정짓기보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채워나갈 수 있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자만심은 찾아볼 수 없다. 인터뷰 말미, 그는 “배구를 잘하는 선수보다는 배구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배구에 모든 것을 걸고 있지만, 추후 배구 말고 다른 것을 하더라도 잘할 수 있다는 다짐에서 나온 말이다.
배구선수로서 ‘김웅비, 정말 잘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그다. 사람들 기억 속에 ‘김웅비’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려고 부단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앞으로 배구할 날이 많은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