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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타산에서 바라본 청옥산과 그 남릉
인간세상의 온갖 괴로움 떨치고 마음을 밝히는 일, 정처없이 떠돌면서 갖가지 괴로움을 무릅쓰며 도를 닦는 일이
곧 두타(頭陀)의 본디 뜻이라면, 두타산을 오르는 일이 바로 그 두타행(頭陀行)이요, 그대로가 수행의 길이라 할
것이다. 두타산은 확실히 그만한 보람을 안겨둔다. 그것은 산중 경관이 수려한데서 만이 아니다. 우선 1,400m대
의 두 개 봉우리가 겹친 그 큰 덩치를 헤치느라 하는 괴로움이 들어 그의 한 발 한 발에 생명의 충실감을 그득 채
워준다.
―― 김장호(金長好), 『韓國名山記』 중 ‘두타산(頭陀山)’에서
주) 두타산은 분명히 청옥산보다 51m가 낮지만 이 산덩치 전체를 가리킬 때는 두타산으로 부른다. 그것은 이
고장 풍습에서만이 아니라 옛 문헌이 거의 다 그렇다.(김장호, 위의 책)
▶ 산행일시 : 2023년 1월 29일(일), 오전에는 맑음, 오후에는 흐리고 눈발 날림
▶ 산행코스 : 댓재,햇댓등,통골재,두타산,박달령,문바위재,학등,청옥산,연칠성령,무릉계곡,사원터,문간재,
삼화사,주차장
▶ 산행인원 : 3명(킬문, 아사비, 악수)
▶ 산행거리 : 도상 17.3km
▶ 산행시간 : 8시간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35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20 - 잠실역 9번 출구
09 : 00 - 제천휴게소( ~ 09 : 20)
11 : 08 - 댓재, 산행시작
11 : 31 - 햇댓등(962.8m)
12 : 08 - △1,029.2m봉
12 : 22 - 1,015.7m봉
12 : 27 - 통골재
13 : 16 - 두타산(頭陀山, △1,357.0m), 휴식( ~ 13 : 24)
14 : 25 - 박달령(박달재, 박달고탱)
14 : 32 - 문바위재
15 : 24 - 청옥산(靑玉山, △1,404.0m), 휴식( ~ 15 : 44)
16 : 19 - 연칠성령(連七星嶺, 1,243.1m)
17 : 19 - 무릉계곡, 칠성폭포
18 : 15 - 문간재
18 : 41 - 두타산 베틀봉 전망대 입구
19 : 00 - 삼화사(三和寺)
19 : 08 - 주차장, 산행종료(19 : 40 - 버스 출발)
22 : 08 - 양평휴게소( ~ 22 : 18)
23 : 07 - 잠실역
2-1. 두타산 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임계, 삼척 1/25,000)
2-2. 청옥산 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임계, 삼척 1/25,000)
▶ 두타산(頭陀山, △1,357.0m)
If something is possible for any other man, it is possible for you, too.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신도 할 수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미국 영화 「더 리벤지」(Acts of Vengeance, 2018)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인 프랭크 발레라(안토니오 반데라스 분)
가 자기의 아내와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고 무술을 배우고 익히는 장면을 예고하는 스크린 전체에 띄운
자막이다.
신사산악회에서 백두대간을 매주 일요일에 진행하는데, 그 한 구간인 댓재에서 이기령까지가 마음에 들었다.
산행거리 23km, 주어진 시간은 8시간이다. 무박으로 가야 할 구간을 당일로 간다. 백두대간을 계속 진행하는
산꾼들이겠지만 35명이나 가겠다고 했다. 댓재 가는 버스 안에서 엄한길 진행대장님이 혹시 도중에 연칠성령에
서 탈출하실 분이 있는지 묻자 한 사람만 탈출하겠단다. 다른 누군가가 갈 수 있는 산이라면 나도 갈 수 있으려니
하고 따라 나섰는데, 모처럼 임자를 만난 느낌이 든다.
서울에서 댓재 가는 길이 꽤 멀다. 245km. 지체 없이 달리다 제천휴게소에 들르고, 복잡한 사북에서 잠시 길을
잘못 들어 주춤했지만 3시간 48분이나 걸린다. 11시가 넘어서 댓재에 도착한다. 점심이나 간식을 먹을 만도 한데
갈 길이 워낙 급하여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너도나도 줄달음 놓는다. 댓재 고갯마루의 기온 안내전광판이 영하 6
도를 나타내고 있다. 며칠 전에 비하면 사뭇 포근한 날씨다. 나도 얼른 겉옷 벗고 덤빈다.
국토정보플랫폼의 지명사전이 소개하는 ‘댓재’의 지명유래다.
“두타산으로부터 10km쯤 남쪽의 산줄기에 있다. 조선지도, 해동여지도, 대동여지도는 죽령(竹嶺)이라 표기되어
있다. 『진주지』에 ‘죽치(竹峙)는 삼척군 서쪽 60리에 있다.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서쪽의 하장면으로 통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고개를 넘으면 대동여지도서 말하는 죽현천(竹峴川), 즉 하장면 번천으로 갈 수 있어 예로부터
영동과 영서를 넘나드는 보행로로 이용해 왔다.”
곧장 능선을 잡고 설원을 간다. 몇 사람이 간 흔적은 얼마 안 가 사라지고, 새 길을 내다시피 하며 눈 표면이 얼어
붙어 딴딴해진 눈길을 오른다. 동해바다와 근처의 준봉들은 소나무 수렴에 가렸다. 사방 둘러 볼 것이 없어 그저
박차 오른다. 그런데 내가 선두에 나서다니 문득 무언가 크게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뒤를 돌아보아
도 내가 추월한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도를 들여다보면 백두대간 길이 확실하다.
숨이 가쁠 무렵 962.8m봉이다. 이정표 겸한 정상 표지목에 ‘햇댓등’이라고 쓰여 있다. 버스 안에서 엄한길 진행대
장님이 굳이 오를 필요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 ‘햇댓등’이다. 초반부터 된통 힘을 쏟게 되고 자칫하면 길을 잘못
들 염려가 있으니 부디 가지마시라고 한 ‘햇댓등’이다. 댓재에서 임도 따라 햇댓등 왼쪽 산자락을 돌아가는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햇댓등을 나는 몰라서 올랐는데, 나중에 만난 킬문 님과 아사비 님은 알고서 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정표가 없다면 백두대간 길을 잘못 들기 쉽겠다. 눈짐작으로는 곧바로 햇댓등을 넘어 느슨한
능선 따라 북동진하겠는데, 이정표는 두타산이 직각 왼쪽 방향(서쪽)이라고 한다. 가파른 사면을 내리쏟는다.
눈이 깊다. 내가 러셀한다. 우리 일행들은 임도로 질러갔음에 틀림없다. 설원 이리저리 헤집어 ┫자 갈림길 안부
다. 이정표에 햇댓등 0.5km, 댓재 0.9km, 두타산 5.2km다. 두타산 가는 길이 반질반질하다. 눈으로 미끈하게 포장
하였다.
3. 햇댓등에서 바라본 두타산
4. 왼쪽이 청옥산, 오른쪽이 두타산
5. 두타산 가는 길
6. 두타산 가는 길, 등로는 고맙게도 1,242.0m봉을 직등하지 않고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간다.
7. 청옥산, 오른쪽 뒤는 고적대
8. 청옥산, 오른쪽 뒤는 고적대, 왼쪽 멀리는 중봉산
9. 두타산에서 바라본 청옥산
아마 우리 일행 30여명이 다녀갔을 터이니 이리 잘 날 수밖에 없으리라. 부지런히 뒤쫓는다. 두타산 쪽에서 오는
등산객과 마주치면 앞서간 우리 일행의 소식을 물어본다. 한참 앞쪽을 가더란다. 능선에 부는 바람이 차디차다.
안은 젖고 밖은 언다. 오를 때 발열을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이기도 하다. 929.7m봉은 직등하지 않고 오른쪽 사면
을 길게 돌아 넘는다. 모두 그랬다. 하늘 가린 숲길을 간다. 1,032.3m봉을 넘고 명주목재는 알아보지 못하고 지난다.
△1,029.2m봉 삼각점은 눈 속에 묻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눈 쓸어 판독할 여유가 없다. 소나무 숲길 나지막
한 봉봉을 넘는다. 환청처럼 사람들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바닥 친 안부인 통골재다. 예닐곱 명 우리 일
행들이 서성이고 있다. 후미이리라. 반갑다. 내 먼저 앞서간다. 통골재에서 0.7km 오르막이 오늘 두타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되게 가파르다. 아이젠을 매지 않은 미끄러운 눈길이라 일보전진하려다 이보후퇴하기 여러 번이
다. 땀이 다 난다.
둥로는 1,242.0m봉도 직등하지 않고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간다. 1,242.0m봉을 직등하는 눈길에 아무런 인적
이 없어 안심하고 나도 돌아간다. 우리 일행 한 두 사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간다. 왼쪽에 언뜻언뜻 수렴 사
이로 장중하게 보이는 설산은 청옥산이다. 발걸음이 더욱 급해진다. 어서 가서 자세히 보고 싶어서다. 1,242.0m
봉을 다 돌아 넘으면 길고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점점 키 작은 나무들 위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등로를 벗어나 눈밭과 잡목 헤치고 청옥산과 그 너머를 둘러본다. 하얀 설산들. 속이 후련
하게 트인다. 겨울 산을 오는 이유다. 북한산이나 설악산과는 다르게 섬세하지는 않지만 부드럽고 푸짐한 산세가
두타행(頭陀行)으로서는 최적지일 것 같다. 두타(頭陀)는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청
정하게 불도를 닦는 일이라고 한다. 두타산. 정상은 너른 설원이다. 햇볕이 가득하여 사방 눈부시다. 우리 일행은
서너 명 밖에 보이지 않는다. 킬문 님과 아사비 님은 청옥산을 향해 갔나 보다.
정상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 첫 휴식한다. 도시락은 입맛이 동하지 않아 비상식으로 가져온 찹쌀 꽈배기 세 개
로 요기한다. 설산의 가경에 취해 꽈배기 맛을 도무지 모르고 먹는다. 두타산을 백두대간으로 오르는 길은 부드럽
지만 무릉계곡 쪽에서 오르는 길은 여간 사납지 않다.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를 지낸 성암 김효원(省菴 金孝元,
1542~1590)이 1577년에 두타산을 유람하고 지은 「두타산일기(頭陀山日記)」를 보면, 그때의 두타산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산으로 여겨진다. 일기에 나오는 동석봉은 지금의 신선봉을 말한다.
“남쪽으로 돌아서 가니 걸음걸음 모두 바위였다. 어떤 것은 그 아래에 깊은 골짜기가 있고, 어떤 것은 가늘게 산허
리와 통해 있어서 정신 아찔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가면 갈수록 더욱 심했다.
다시 작은 시내를 지나 동석봉(動石峰) 아래에 이르렀다. 실 같은 길이 허공에 매달려 있고 사람들이 그 길을 오르
내리는 것이 마치 하늘에서 오르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는 데 1~2리도 채 되지 않았
다. 하지만 나는 다리가 아파서 모두 일곱 번이나 쉬었다. 마침내 성문에 이르러 돌아서 동석봉에 가니 앞뒤 좌우
로 쇠로 만든 듯한 절벽이 가로세로 뻗어있고, 흰 바위와 맑은 시내가 옷깃과 허리띠처럼 동서로 펼쳐져 있었다.”
10. 청옥산, 오른쪽 뒤는 고적대
11. 갈미봉
12. 두타산에서 남서쪽 조망
13. 청옥산
15. 청옥산, 오른쪽 뒤는 고적대
17. 두타산 정상, 예전 정상 표지석은 오른쪽 위에 있다
▶ 청옥산(靑玉山, △1,404.0m)
통골재에서 만난 우리 일행 예닐곱 명은 후미가 아니라 햇댓등을 오르지 않은 선두였다. 이 눈길은 많은 사람들이
무릉계곡에서 두타산과 댓재를 오가는 길이었다. 우리 일행이 이미 내 앞서가서 여태의 눈길이 잘 닦였다고 한
생각은 잘못이었다. 아울러 댓재에서 햇댓등을 경유한 두타산까지 6.5km를 2시간 8분 걸렸으니, 이기령까지 8시
간이면 갈 수 있겠다고 한 생각도 잘못이었다. 이것을 깨닫는 데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청옥산 가는 길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인다. 이 한 발자국으로 여러 사람이 갔을까? 얼마쯤 내려가자 여성 한 분이 눈길을 뚫고
있다.
나중에 알았는데 좋은하루 님이라고 한다. 내가 나서 러셀을 거든다. 깊은 눈이다. 무릎까지 빠진다. “눈 내린
들판 길을 걸어갈 때/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踏雪野中去/不須胡亂行)”가 어렵다. 엉뚱한 설사면을
헤집다가 핸드레일을 발견하고 기어가 등로 꼭 붙들곤 한다. 곳곳에 눈 표면이 딴딴하게 얼었지만 갑자기 푹 꺼지
기 일쑤라 그때마다 눈 속에 빠진 발을 빼내느라 애먹는다. 이래서는 이기령이 때 이르게 가물거린다.
가파름이 수그러들고 눈길 가기가 더 어려워진다. 가파른 데서는 내리는 가속을 받아 함부로 지치기라도 했는데
평탄한 깊은 눈길에서는 꼬박 다리를 치켜 올려야 한다. 좋은하루 님이 탈출 분위기를 잡는다. 자기는 탈출하기로
작정했다며 나더러도 탈출할 것을 종용한다. 그렇지만 남들 다 가는데 우리만 중뿔나게 탈출할 수는 없지 않겠느
냐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젊은 일행들 몇몇이 뒤쫓아 왔다. 그들에게 러셀을 양보한다. 발걸음이 한결
수월하다.
박달령이 고개답지 않다. 다행이기는 하다. 뚝 떨어진 안부라면 또 오르기가 힘들 테니까. 문바위재도 재답지 않
다. 암릉 길을 왼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는 중간에 있다. 청옥산 가는 길이 내내 하늘 가린 숲속이라 두타산을
온전히 보기가 어렵다. 청옥산 사면을 길게 돌아 그 남동릉을 잡아서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이다. 허기는 지고 눈
속 한 발 한 발이 무겁고, 올려다보는 불과 수 미터 앞 공제선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핸드레일이 설원의 등로 유도선이기도 하다. 핸드레일 붙들고 그 부축을 받아 오른다. 학등 이정표 지나고 곧
청옥산 정상이다. 너른 눈밭이다. 사방 키 큰 나무숲 둘러 아무런 조망이 없다. 속속 일행이 도착하고 서성인다.
킬문 님과 아사비 님도 온다. 반갑다. 눈밭 쓸어 자리 잡고 늦은 점심밥 먹는다. 도시락을 싸온 사람은 나 혼자다.
다른 일행들은 빵을 먹는다. 청옥산 도착시간 15시 30분대이다. 누구라도 이기령을 가는 것은 무리라고 여긴 듯하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엄한길 진행대장님이 공식 발표한다. 산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늘 산행은 연칠
성령에서 모두 탈출합니다. 그때야 일행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제부터 킬문 님과 아사비 님과 함께 간다.
그래서도 연칠성령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수렴 사이 고적대 우러르고, 골짜기 나뭇가지에 핀 상고대 서리꽃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길게 내리다가 1,210m봉을 대깍 넘고, 한 피치 느긋이 올라 1,243.1m봉 연칠성령이다.
고적대 쪽 눈길이 고요하다. 고적대를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을까 하고 눈길 헤치고 둔덕에 올라도 수렴에 가렸다.
연칠성령에서 고적대까지 1.0km. 곧추선 오르막인 만큼 거기는 드물게 빼어난 경점이다. 거기는 갔다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없지 않지만 하늘이 막는다. 그 맑던 날씨가 일기예보대로 흐리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미련 없이 연칠성령을 내린다. 무릉계곡 칠성폭포까지 엷은 지능선 1.8km를 내린다.
급전직하다. 쏟아져 내린다. 여기로 올라오지 않았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가팔라서 그렇다. 여기는
오르는 데가 아니라 내리는 데다. 여기에 쌓인 눈은 아까와는 달리 푸실푸실하고 그리 깊지도 않다. 지치기 좋다.
절반은 미끄럼 타며 내린다. 무릉계곡 진입시각 17시 19분. 곧 어두워지리라, 칠성폭포는 비단 드리운 듯 빙폭이
고 계류 또한 겨울잠 잔다. 적막한 무릉계곡이다. 계곡 길을 더듬어 내린다.
18. 고적대와 갈미봉
19. 청옥산과 고적대
20. 갈미봉
21. 청옥산 가는 길
22. 수렴에 가린 두타산
23. 두타산
24. 청옥산 가는 길
25. 청옥산 등로 주변
▶ 무릉계곡
18시 05분. 헤드램프 켠다. 등로는 계곡 가까이 가다가 암반 혹은 빙판을 지나기도 한다. 계곡에서 멀어지고 비탈
길을 오른다. 문간재다. 오른쪽 신선봉 오르는 길도 잘났다. 옛날에는 동석봉이라고 한 이 신선봉을 오르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문간재 넘자마자 데크로드가 이어진다. 상당히 긴 데크로드다. 데크로드를 다 내리면 평지인
대로가 시작되고 왼쪽은 하늘문 지나 옛길이다. 아사비 님은 옛날 생각하여 그리로 갔다가 옛길이 하도 고적하여
뒤돌아왔다.
무릉계곡의 ‘무릉’이라는 말은 삼척부사를 지낸 성암 김효원이 지었다고 한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5~1682)
의 「두타산기(頭陀山記)」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삼화사가 가장 아래에 있고, 중대사는 산 중턱의 내와 바위가 엇갈리는 지점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다. 그
앞의 계곡을 ‘무릉계(武陵溪)’라고 한다. 산속의 내와 바위 이름은 모두 옛날에 부사를 지낸 김후 효원(金侯孝元)
이 명명한 것이다. 김후의 덕화(德化)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으며 …….”
두타산 베틀봉 전망대 갈림길을 지나면 삼화사가 가깝다. 삼화사가 밤에도 대찰이다. 대로 바로 옆 천왕문이 있
고, 그 열린 문으로 눈길을 돌리자 석탑과 불 켠 대웅전이 불국처럼 보인다. 천왕문의 주련이 멋들어진 행초다.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의 게송이라고 한다.
摘何爲妄摘何眞 무엇을 거짓이라 하고 무엇을 참이라 할까
眞妄由來總不眞 참과 거짓 본래 모두 참이 아니네
霞飛葉下秋容潔 안개 걷히고 낙엽 떨어져 가을 경치 깨끗하니
依舊靑山對面眞 옛 그대로 청산은 참모습 보여 주네
삼화사 아래 석평이 나오고 금란정(金蘭亭)이다. 유서 깊은 정자다. 정자 이름은 금란지교(金蘭之交)에서 따왔다
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이 맞고 교분이 두터워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 나갈 만큼 우정이 깊은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역경(易經) 계사상전(繫辭上傳)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는 나가 벼슬하고, 물러나 집에 있으며, 침묵을 지키지만 크게 말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하나로 하여 말하면 그 향기(香氣)가 난초(蘭草)
와 같다.(子曰 君子之道 惑出惑處 惑默惑語,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
금란정 12개 기둥에 각각의 주련을 걸었다. 무릉계곡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구다. 그 중 앞 4구는 다음과 같다.
石平忘地穿 돌이 평평하니 터 고르는데 흙 파는 일이 없고
亭小得山多 정자는 작은데 산은 많이 둘렀구나
路縣雲起棧 산길은 구름 이는 곳에 달려있고
巢古鶴歸臺 옛 보금자리에 학은 돌아오겠지
각 구의 출전이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亭小得山多(정자는 작은데 많은 산들이 둘렀구나)” 만이 고래로 자주 인용
되는 명구다. 남송시대 문인인 대복고(戴復古, 1167~ ?)의 5언율시 「題春山李基道小園」에 나오는 시구로 “心寬
忘窄地/亭小得山多(마음이 너그러워 땅 비좁은 것을 잊었고/정자는 작은데 산은 많이 둘렀구나)”가 대구를 이룬다.
금란정 옆에 삼척시 미로면 출신인 최인희(崔寅熙, 1926~1958) 시인의 「낙조(落照)」를 새긴 시비가 있다.
헤드램프 심지 돋우고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본다.
소복이 산마루에는 햇빛만 솟아 오른 듯이
솔들의 푸른빛이 잠자고 있다
골을 따라 산길로 더듬어 오르면
나와 더불어 벗할 친구도 없고
묵중히 서서 세월 지키는 느티나무랑
운무도 서렸다 녹은 바위의 아래위로
은은히 흔들며
새어오는 범종 소리
白石이 씻겨가는 시낼랑 뒤로 흘려보내고
고개 넘어 낡은 단청
山門은 트였는데
천년 묵은 기왓장도
푸르른 채 어둡나니.
먹자동네 지나 주차장이다. 19시가 넘었다. 먹자동네가 썰렁하다. 오늘도 주린 배 안고 서울을 간다.
26. 청옥산 학등 근처
27. 청옥산 정상 지나 연칠성령 가는 길, 멀리는 고적대, 앞은 킬문 님과 아사비 님
28. 청옥산 북쪽 골짜기에 핀 상고대 서리꽃
29. 청옥산 북쪽 골짜기에 핀 상고대 서리꽃
30. 고적대, 눈발이 날려 흐리다
31. 고적대
32. 무릉계곡 가는 길에 올려다 본 눈발 날리는 청옥산
첫댓글 눈 쌓인 태백산맥을 헤치는 악수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군요. 러셀하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전에는 러셀을 하지 않으려고 갖은 꾀를 냈는데, 지금은 그럴 기회가 내게도 오는 게 고맙기만 합니다.
산은 겨울산입니다.^^
@악수 맞습니다. 겨울산이니까요.
아실만한 분들이 겨울산 23을 8시간에 주파하시겠다니 새해초장부터 춘몽을 꾸셨구만요ㅎ
당일 귀경도 감지덕지
그러게요. 이제 노망이 드는 건지.ㅋㅋ
ㅎㅎ 애초부터 무리였지요. 러셀 하시느러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사비님은 계속 대간 가시더만요.
그래도 눈 덮인 청옥산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대간은 이제 골라 가야겠어요. ^^
한 20년전쯤 1월중순 평일 휴가내서 기차타고 무박으로 혼자 가서 저녁 8시쯤 겨우 살아서 하산한 기억이나네요(능선에 눈이 얼마나 많던지)
고생 하셨습니다
어느 가을날 오지에서 청옥산 가는 길에 노루궁뎅이버섯을 무척 많이 땄던 기억이 생생한데,
지금은 그 흔적도 없다고 하네요.
신가이버 님 정도로 산에 환장해야 하는데. ㅋㅋㅋ
회춘하신건가요? 형님말씀대로 노망(?..^^)은 아니겠지요? 두타산가는것도 만만치 않은 데, 청옥까지 대단하십니다..눈길을 그렇게 지쳐가시다니 고생하셨습니다^^
확실히 망각은 축복이기도 합니다.
전에 몇 번 갔던 길인데 전혀 생각나지 않아 새로운 길처럼 갔습니다.^^
@악수 좋은날 가면 덕순이도 꽤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