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않은 인천연수구에 사는 5살 아래 여동생과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우연인지 4년후배와 결혼해 교회를 개척하고 22년 목회자로 살다가 교통사고로 남편을 떠나 보낸후 아들 하나를 잘키워 지난 5월 결혼을 시켰다. 당연히 참석해야할 입장이지만 정소가 너무 멀어 어쩔수없이 직접 참석은 못한데 대한 식사초대인 셈이다.
내가 생선류를 좋아한다고 소래포구에서 만나 생선회를 오랫만에 넉넉히 먹을수 있었다. 생선이 잘 안잡히고 모든 물가가 오르다보니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전에는 그토록 즐겼던 생선류가 이제는 그다지 식욕을 자극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식욕에 변화가 생겼음을 알게된다. 우리 아들보다 4살이 아래이지만 결혼을 먼저 했으니 한편 부럽기도 하다. 전북대 수학과 재학중 군입대하고 제대후 부친의 뜻을 이루고자 감신대로 입학을 했지만 결국 1년만에 자퇴를 하고 다시 경희대 전자공학과에 편입하여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지금은 삼성에 근무를 하고 있다.
제대후 감신을 가기로 했다는 말에 극구만류를 했었다. 목회자가 되고 싶으면 차라리 장신을 가라고 했지만 당시 미망인이 된 후 집근처의 감리교에 출석하던 여동생교회 담임목사의 강권이 있었던가 보다. 장로교출신은 절대로 감신의 풍토에 적응을 못한다고 만류를 했었다. 그러나 어떻든 목회자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전문인이 되었으니 잘된 셈이다. 그런데 학교후배의 소개로 만난 자매가 신앙인이 아니어서 3년을 사귀며 헤어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였노라고 하였다. 그래도 이제는 많이 마음문이 열렸다고 하였다.
우리 아들역시 부모와 떨어져 오랜기간 혼자지내다 보니 신앙에 문제가 많다. 그래서 동기분들 중에 딸있는 집과의 혼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를 못하고 있다. 마지막 교제했던 자매가 감신 교수딸이었는데, 미국시민권자라서 성향이 자신과 너무 잘맞는다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대학졸업후 자매는 바로 미국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같이 갈 형편이 안되는 아들은 헤어지기로 하였다고 하였다.
아내가 요즘 신경이 날카로움도 사실은 40이 다되도록 결혼을 못하는 아들때문임을 나는 잘 알고있다. 하지만 나의 결혼도 아니고 자식의 결혼인데 부모가 어떻게 할 도리는 없다. 몇년전 동기목사의 딸과 혼담을 주선했던 경험이 있는데 아는 사람끼리의 결혼이 결코 쉽지않음만 확인한 셈이라서 그 이후로는 절대 먼저 일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다. 오직 기도로만 응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