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묵상] 스크루테이프 편지
"요즘 악마들은 모두 교회에 살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변질되었는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 셔터스톡
철저한 무신론자였다가 서른한 살 때 회심하고 크리스천이 된 C.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수로,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연구한 학자이자 <고통의 문제> <나니아연대기> <순전한 기독교> 등 뛰어난 책을 쓴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C.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라는 글도 썼는데, 대악마 스쿠르테이프가 후배 악마에게 '인간을 미혹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서른한 개의 편지입니다.
스크루테이프라는 이름은 배배 꼬인 나사를 뜻하는 스크루, 손가락을 비트는 고문기구인 썸스크루(thumbscrews),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의 주인공이자 지독한 구두쇠인 스크루지, 그리고 촌충을 가리키는 테이프웜(tape worm), 형식적 관료주의에 젖은 행정서류의 빨간 끈을 가리키는 레드 테이프( red tape) 등을 합성해 만든 조어(造語)입니다.
그리스도를 원수, 그리스도인들을 환자라고 부르는 스쿠르테이프는 "요즘의 악마들은 모두 교회에서 살고 있다"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분개할만한 발언이지만, 실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크리스천들의 신앙적 각성을 촉구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면 사탄도 그 옆에 제 소굴을 판다"고 경고했습니다.
사탄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영역은 세속의 자리가 아닙니다. 세상은 어차피 악령 앞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 악령이 노리는 곳은 다름 아닌 교회와 신자들의 영혼입니다.
C.S. 루이스가 스크루테이프의 입을 통해 밝히는 악령의 속셈은 '하늘나라의 소망을 발전.진보.성장 등의 상대적 가치로 대체시켜, 현세적 성취의 욕망에 눈멀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원성을 정체(停滯)상태로, 불변성을 역사의 퇴보로 인식하게 만들고, 참과 거짓의 분별 대신에 파벌과 편 가르기로 대립과 투쟁을 이끌어냅니다.
악령은 내면의 영성을 망각하고 현실적, 외형적인 것에 집착하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감정과 습관에 치우쳐 겸손과 회개를 멀리하게 만듭니다. 내면의 진실이 아닌 외부의 평가를 중요시하고, 복음의 소망이 아니라 현실적 욕구를 추구하라고 속삭입니다.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정치인에게는 선거 때의 표밭으로, 기업인에게는 경제활동의 중개소로, 예술인에게는 재능과 재주의 거래장소로 제공되고 있지 않은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예배(요한복음 4:24)가 형식적 종교의식으로 변질되고 있지 않은지, 그리스도를 머리로 섬겨야할 교회(에베소서 1:22)가 사람을 머리로 삼고 있지 않은지 두렵습니다.
영성(靈性)신학자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이 '우리 시대에 가장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신앙서적의 하나'라고 높이 평가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으면서, 오늘 우리의 신앙현실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글 | 이우근 ・변호사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