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미국 이민 삼십여 년 차인 저는 이명박 집권 후 쇠고기수입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블로그를 매개로 교제하던 분들을 통하여 2008년 6월 이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가입이후 지금까지 단체 메일과 쪽지를 통하여 카페의 주요 활동상황을 듣기는 했지만 개인형편상 지속적인 방문 등의 활동을 하지 못하다 이번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부터 시작되어 편파적인 언론과 부정한 권력에 대항해 지난 9년간 투쟁해 오신 카페 임원들과 회원들에게 감사드리며 또한 투쟁에서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인사와 더불어 아래 글 하나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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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끝 잔치 시작
물론 해야 할 일들, 처리되어야 할 일들이 끝난 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끝날 수 없는 것이 삶과 역사의 과업이다.
그러나 그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거다.
박근혜 탄핵소추가 이뤄지기까지 그것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이었다.
단순히 박근혜 한 사람을 끌어내리자는 싸움이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박정희 신화, 그리고 그 신화와 얽히고설킨 추잡한 이해관계와 적폐를 씻어버리자는 싸움이었다.
그것이 싸움이었던 것은 그만큼 뿌리가 깊었고 그 신화에 둥지를 틀었던 세력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패악과 적폐의 둥우리를 털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탄핵소추 통과와 기대되는 헌법재판소의 인용(認容)은 그래서 한민족에게 주어진 천부(天賦, Given by Heaven)의 기회가 아닐 수 없으며 이제는 그 기회를 결과로 바꾸는 작업이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싸움, 전투, 혹은 전쟁이었다면 지금부터의 과정은 잔치가 되어야 한다.
헌재의 인용을 촉구하는 한편 민족사에서의 불의 부정 불법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축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 적폐를 청산하고 한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차기 지도자를 뽑는 경선과 본선의 모든 절차들도 잔치가 되어야 하며 마땅히 그 성취가 이뤄져야 하는 당위성만큼, 혹은 그 이상, 꼭 이뤄진다는 필연성도 널리 알려져야 한다.
사실 한국시민들의 잔치의식은 역사 속에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왜적과의 전쟁을 강강술래라고 하는 군무로 감당한 흥이 넘치는 백성 아닌가!
서민들이 탈춤으로 양반들을 조롱하던 문화민족 아닌가!
그런 잔치의 여러 가지 모양을 우리는 이미 벌어진 촛불시위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잔치는 좀 더 편하고 즐겁게 헌재의 올바르고 조속한 탄핵용인을 촉구하기 위하여, 또한 새로 등장할 정치지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하여 지속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차기 지도자를 위한 경선과 본선도 이에 못지않은 잔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사에 정권창출의 과정이 잔치가 되었던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오직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 개싸움), 중상모략, 배신(등에 칼을 찌르는 Backstabbing) 등이 횡행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탄핵소추를 마치자마자 대선가도에 오른 후보자들과 그 후원자들의 언행을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볼 뿐 아니라 질타의 발언을 쏟아내기도 한다.
나는 지금 탄핵정국이 지나가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선정국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경선과 대선을 위한 대비책과 정책과 작업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위에 언급된 진흙탕 개싸움의 구태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모든 작업들이 잔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아직도 진흙탕 개싸움을 하더라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구태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일말 다행인 것은 몇몇 유력후보들이 정당한 경쟁- 좀 더 좋은 표현을 쓰자면 잔치 같은 경선, 잔치 같은 대선을 치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도 이런 잔치로서의 정치여정에 동참할 수 있는 “정치소비”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투구에서 벗어나 잔치로서의 정치여정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또한 이미 여러 시민들 뿐 아니라 몇몇 후보들에 의해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책을 내세우고 견주는 것으로 이뤄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권력지향적임은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고 정책지향이라 함은 권력은 다만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법에 의해 주어진 직분임을 인지하고 자신의 정책을 주장하는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나타나는 후보들의 합종연횡도 권력지향적이라고 한다면 더러운 이전투구가 될 것이며 정책지향적이라고 한다면 아주 바람직한 민주주의와 정책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다.
당연히 정치가 당사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이에 대한 분명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정치가, 혹은 그 후원자들이 권력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정책지향적인지, 그리고 그의 과거 행적이 얼마나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분별하고 자신의 건강한 정치소비 의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의 적폐를 일소(一掃)하고 새로운 정치문화,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시작하는 한 걸음이 아닌가 싶다.
투표권도 없는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
내 말을 들으라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러저런 현상들을 보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 시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몹시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그런 면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은, 그 시민들은 지금까지의 적폐, 특히 정치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그 순간 세계인의 행복과 번영에 공헌하는 세계 속의 도덕민족으로 우뚝 설 그 날이 조속히 오리라고 나는 확실하게 믿는다.
두 가지 부언하자면...
첫째, 대통령의 관저를 청와대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좋겠다.
이는 이미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위치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 혹은 실질적 의미가 대통령 업무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나 싶어서다.
둘째, 한국 행정부의 수장을 대통령(大統領)이라고 하는데 이 명칭은, 내가 보기에는, 사실 엄청나게 광오(廣傲- 넓을 광 거만할 오로서 자체조립한 한자다.)한 표현이다.
특히 미국의 President라는 직명에 비교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그저 문자적으로 광오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 말이 암시하는 뜻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 중에 광오(狂誤- 미칠 광, 그릇할 오)에 빠진 자들이 많았지 않았나 싶다.
혹자는 분권적 내각제가 그 답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대통령 자신과 그 외 모든 관련자들이 대통령이란 엄청난 이름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제는 전권을 휘두르는 지배자가 아닌, 국가와 시민의 “큰머슴”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어느 정도 공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이상의 두 가지가 풍수지리나 성명학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입장이 애초에 운명론자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풍수지리나 성명학이라는 것이 자연과학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고 한다면 그도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대한민국, 그 모든 시민들의 행복과 번영과 영광을 위하여~~!!
대한민국 만세~~~~다.
I love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