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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신냉전 속에서 세계 각국은 경제안보에 매진하고 있다. 탈냉전 이후 세계화 현상과 함께 구축되어 온 글로벌 공급망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거치며 취약성을 드러냈고, 미국과 중국은 탈동조화(decoupling)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 구조로의 재편을 추진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은 새로운 대안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멕시코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발효 이후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지역 경제권을 형성하였다. NAFTA를 대신하여 보다 강화된 요건을 갖춘 미국-캐나다-멕시코 간 자유무역 협정(USMCA, United Stated-Mexico-Canada Agreement)이 2020년 7월 1일에 발효되면서 멕시코는 북미지역과의 경제적 통합성을 지속하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NAFTA 체결 이후 누적되어 온 경제 및 안보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미-중 갈등 속에서 USMCA를 발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여러 국내·외적 과제가 놓여 있다.
NAFTA와 멕시코 경제
멕시코는 1954년부터 1982년까지 수입대체산업화, 국가 개입주의 등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경제 운영 방식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외채 위기는 멕시코가 개방적 경제로 나아가는 변화의 전기가 되었다. 멕시코는 수입대체 전략의 한계, 과도한 국가 개입, 방만한 공기업 운영 등의 문제점을 인식하였고, 1982년 이후 공공재정 축소, 관세 인하, 시장개방, 민영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이러한 개방정책은 1994년 미국, 캐나다와의 자유무역협정 NAFTA 체결로 이어졌다.
NAFTA가 발효되면서 멕시코 경제는 북미대륙과의 통합을 통한 개방성이 증대되었다. 1993년 GDP의 12%를 차지하였던 수출은 2021년에는 40%로 증가하였고, 북미대륙의 재화와 서비스 교역은 명목 가치상 4배 증가하였다.멕시코의 생산구조는 북미권에 깊숙이 통합되어 갔고, 시장 다각화보다는 미국 시장 집중화가 나타났다. <표 1>에서 보듯 1990년 멕시코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0.2%였으나, 1994년에는 84.4%, 2000년에는 88.1%, 2004년에는 88.5%로 증가하였다. 반면 또 다른 NAFTA 체결국인 캐나다와의 교역에서는 약간의 수출 증가가 나타났을 뿐 멕시코 교역 구조에서 그 비중이 한자리 수에 머물 정도로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표 1> 멕시코의 무역에서 주요국이 차지하는 비중 (단위: %)
자료: World Bank, 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
https://wits.worldbank.org/CountryProfile/en/Country/MEX/Year/LTST/TradeFlow/Export/Partner/all/ (접속일: 2023년 6월 14일)
*중국은 홍콩이 제외된 수치임.
멕시코의 대(對)미 수출을 견인한 것은 원료, 부품, 장비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멕시코의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여 조립한 다음 중간재 및 최종생산물을 다시 미국으로 수출하는 마킬라도라(Maquiladora) 산업이었다. NAFTA 협정으로 북미 3국 이외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관세가 높아지자 다국적 기업들은 멕시코 국경지대에 공장을 설립하여 관세를 회피하는 전략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마킬라도라가 멕시코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반에 육박하게 되었다1). 중국의 WTO 가입 이후 경쟁력 저하로 마킬라도라 산업이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공장이 밀집해 있는 북부와 중북부 지역은 자동차, 항공기 부품, 의료기기들을 생산하며 발전해 왔다. 멕시코의 북부 지역은 아시아와 비슷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편 수입에 있어서 미국은 NAFTA 이후 그 비중이 잠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다 2000년대 이후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반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96년까지 대(對)중국 수입은 멕시코 전체 수입의 1% 미만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20%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자국 상품에 ‘멕시코산’의 라벨을 붙이기 위해 멕시코에 공장들을 건설해 왔다. 멕시코 역시 주력 제조업인 자동차 산업에서 보듯 중국으로부터 원료와 부품들을 수입해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2). 미국이 NAFTA를 대신하여 USMCA를 새롭게 출범시키면서 역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한 것은 중국을 배제한 역내 공급망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비록 다른 지역의 신흥경제에 비해 실망스런 결과이지만 NAFTA 체결 이후 멕시코는 그 이전보다 부유해졌다. 2009년 미국경제 위기 당시에는 5.3%, 2020년에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8.5%의 GDP 감소라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2021년 멕시코의 GDP는 1993년보다 2.5배가량 증가하였다. 1인당 GDP도 같은 기간 2배가량 증가하여 2021년에는 1만 달러를 상회하였다.
그러나 멕시코가 이룬 발전은 불균등했다. 북부 지역이 크게 성장한 반면 낙후된 기술을 사용하는 영세 농민들, 생계농, 빈곤층 자영업자들로 채워져 있는 남부 지역에서는 많은 이농인구가 발생하였고, 미국으로 이주하려는 불법 이민자들의 공급지가 되었다. 멕시코 경제에서 북부와 남부, 제조업과 농업 사이의 불균등한 발전, 비공식 경제부문에 고용된 인구의 과도한 비중 등은 안보문제라는 또 다른 심각한 사안과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와 안보 문제의 복합
멕시코의 안보문제는 외부로부터 제기되는 군사적 침략과 위협이라는 전통적 안보 요인보다는 마약과 관련된 범죄 등 내부의 치안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멕시코의 마약조직 문제는 과거부터 존재하였다. 세계 최대 마약소비시장인 미국과 주요 마약 생산지인 중남미 사이에 위치해 있는 멕시코는 마약의 주요 유통 경로이다. 특히 미국이 남미 에서 자국으로 오는 해상 루트를 강력히 통제한 이후 멕시코는 마약 밀매의 더욱 중요한 유통경로가 되었다. 미국의 마약정책,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의 분권화, 부패하고 무능한 치안조직, 정부의 잘못된 대응정책은 마약문제가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까지 이르게 만든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멕시코가 마약조직의 불법적 행위들로 인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것은 NAFTA 체결 이후 멕시코가 직면한 경제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농민들의 농촌이탈과 미국으로의 불법 이민이 유발되면서 농민들은 수익성 높은 마약 밀매에 개입하였고, 마약 카르텔은 불법 이민자들에게 루트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거나 이들을 마약 밀매 운반책으로 이용하였다.
마약 카르텔이 야기하는 문제는 펠리페 칼데론(Felipe de Jesus Calderón Hinojosa) 멕시코 전(前)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하여 마약 조직에 대한 전쟁을 시행하면서 더욱 폭력적인 국면에 들어섰다. 마약 카르텔의 수장을 죽이거나 체포하는 방식이 진행되면서 주요 카르텔이 파편화되었고 오히려 갱단의 숫자가 2010년 76개에서 2020년 200개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들은 마약 루트의 통제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였고, 이로 인해 멕시코의 범죄율과 살인율이 치솟게 되었다. 2020년 멕시코의 살인율은 10만 명당 27명으로 미국의 6.3배에 이른다. 소규모 마약 조직들이 난립하면서 마약 이외의 영역으로까지 사업다각화가 이루어져 강탈, 인신매매, 총기 밀매 등이 행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 원료를 수입하여 신종 합성 마약을 생산하는 등 기업화된 양상을 띠게 되었다3).
특히 국가 치안조직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멕시코의 많은 농촌 지역이 범죄집단들의 통제 아래 놓여 있다. 몇몇 주에서는 멕시코의 주요 농업 수출품인 아보카도 시장을 통제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어업과 목재 시장, 철광석의 불법채굴에도 관여하고 있다. 마약 카르텔의 활동은 멕시코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갱단에 의한 갈취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있는데, 농부들과 소규모 사업자들은 이들에게 힘겹게 돈을 바치고 있으며 이들의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 사업의 확장을 주저한다.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멕시코 대통령은 전임자들의 접근법을 실패한 전략으로 비판하며, 빈곤을 줄이면 범죄가 감소할 것이라는 관점에 따라 ‘총알 대신 포용(Abrazos no Balazos)’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빈곤이 범죄의 원인이기에 복지를 통해 이에 대응해야 하며 범죄의 결과보다는 원인의 해결을 공약하였다. 이에 따라 교육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한 젊은이들과 남부의 가난한 농민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 낙후된 남부 주들을 관통하는 철도 건설 등 인프라 사업을 진행하였다. 반면 마약 조직에 대해서는 군에 의한 치안 업무를 제도적으로 강화함과 동시에 이들이 마약 조직과 직접적으로 대치하지 않도록 하는 모순적인 정책을 채택해 왔다. 그는 부패를 이유로 연방경찰을 해체하고 대부분 군인으로 구성된 10만 명 규모의 국가방위군(National Guard)을 창설하였다.
치안 유지업무를 군대에 의존하는 것은 단기적인 성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멕시코에서 군대는 다른 정부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문적이고 부패로부터 자유롭다고 여겨져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군대의 활용을 본격화한 것은 칼데론 대통령이었지만 엔리케 페냐 니에토(Enrique Peña Nieto) 멕시코 전(前)대통령 하에서도 질서회복을 위해 군의 역할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공적 치안 영역의 군사화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는 군대에 범죄혐의자를 구금하고 범죄 현장을 보존하는 것에 대한 관할권을 부여하는 것을 포함하여 치안영역에서 군의 역할을 공식화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였다. 집권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2022년 군이 치안 역할을 맡는 것을 2028년까지 연장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이 효과를 내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방경찰을 해체한 후 창설한 국가방위군은 법과 질서에 대해서 거의 훈련을 받지 않은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수사 역량이 취약하다. 연방경찰은 1만여 명의 수사관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국가방위군 소속 수사관은 수백 명에 불과하다. 연방경찰의 해산은 멕시코의 범죄대응 수사능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2018년에 3만 8,000명 규모의 연방경찰이 2만 2,000명을 체포했던 반면, 10만 명의 인원을 갖춘 국가방위군은 2021년에 단지 8,000명을 체포했을 뿐이다4).
나아가 군의 영향력이 이제 치안영역을 넘어 경제와 다른 국가기관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군은 국제공항, 철도, 석유정제시설의 건설까지 맡고 있으며 항구를 관리하고 관세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USMCA 속 멕시코의 과제
미국은 코로나 19를 경험하고 중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면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자국 또는 인접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리쇼어링(reshoring), 니어쇼어링(near-shoring), 얼라이쇼어링(ally-shoring) 등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급망을 다각화하려는 다국적 기업들도 중국을 대신할 투자처를 재검토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 바로 옆에 존재하는 제조업의 허브로서 중국을 대신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멕시코는 중국을 대신할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며, 투자자들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을 위한 주요 물자가 중국으로부터 수입되고 있으며 멕시코 내에서는 공급자를 찾을 수 없다. 산업공단 바깥의 열악한 인프라가 개선되어야 하며,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전력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이전 정부에서 추진된 에너지 산업 개방정책을 뒤집고 비효율적인 국영전기회사에 전력공급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친(親) 국영기업정책을 추구하면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부패 문제 역시 해결할 과제이다. 멕시코에는 여전히 부패가 만연해 있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부패 척결을 약속하며 대선에서 승리하였지만 2017년과 2019년 사이 뇌물의 빈도와 양 그리고 부패행위의 수가 모두 증가하였다5).
USMCA는 멕시코 경제에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미-중 갈등 속 경제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USMCA에는 중국과의 무역과 투자를 방해하기 위한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멕시코나 캐나다가 중국과 FTA를 체결할 경우 중국산 제품이 이들을 통해 미국 시장으로 우회 수출되는 문제를 우려하였고, 회원국이 ‘비시장경제국가’와 FTA를 체결할 경우 다른 당사국이 USMCA를 종료시킬 수 있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는 사실상 중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역내에서 소재 및 부품의 생산을 확대시키기 위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였다. 이는 소재산업 등 공급망에 대한 투자가 멕시코에 유치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멕시코의 주요 제조업인 자동차 산업의 경우 북미지역 내 소비자가격의 인상과 제조사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소지가 있다6). 미-중 갈등과 USMCA 속에서 멕시코는 분명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으나 이것이 발전의 동력이 될지 위기의 원인이 될지는 멕시코의 대응 노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 각주
1) 김학훈, “멕시코 IMMEX 프로그램과 마킬라도라 산업의 변화,” 『한국경제지리학회지』, 제24권 2호 (2021), p. 147.
2) Goodman, Peter S., “Chinese Firms Spend Billions Building Factories in Mexico,” The New York Times, February 11, 2023.
3) “AMLO’s Military Ambitions: Sergeant López Obrador,” The Economist, May 1, 2021, p. 37.
4) “Mexico: Narco Nastiness,” The Economist, September 3, 2022, p. 36-37
5) “Mexico: How not to Handle a Scandal,” The Economist, August 29, 2020, p. 10.
6) 김서림, “미국통상정책의 변화에 따른 USMCA의 발효와 전망에 대한 연구,” 『무역연구』, 제16권 5호, (2020), pp. 557-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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