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일지는 유은하님이 중동에 있으면서 클럽게시판에 남기신 글을 일부 따온 것입니다. **
이라크가 인간방패들을 인질로 이용하지 않도록, 무기사찰에 순순히 응하고 유엔의 결정을 받아들여서
전쟁의 불씨를 일으키지 않도록, 그리고 미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멈추도록,
부시를 비롯한 위정자들,군수사업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시도록.
3월 7일의 유엔 안보리에서 개전이 부결되며, 미국이 전쟁도발을 포기하도록
그럼에도 전쟁이 개시된다면, 민간시설과 사람들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2003. 3. 7 유은하님의 게시물 '기도해주세요'중에서)
* 3월 6일(목) 한국이라크 반전평화팀 4진으로 이라크로 떠나다. '평화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IPT korea) 4진으로 이라크에 갑니다....(중략)....그런데, 얼마 전(2월 17일) 시사저널을 통해서 이들이 출국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에 임박한 이라크로 가서, 몸으로라도 전쟁을 막겠다는 평화운동가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자마자, 제 오랜 관심이었던 중동지역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왜 떠나가고 있는지를 주시하면서 인터넷을 뒤지게 되었습니다......그리고 '평화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 03. 04 ""3월 4일 마음을 정하기까지"")
* 이라크 현재에 도착하고 나서.... "한국인과 전혀 상관없는 이민족의 비극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포함한 수백만에 이르는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걸린 인류애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1. 미국 부시 행정부와 영국 블레어 정권이 준비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은 테러 방지, 화학무기 등 대량 인명 살상 무기 확산 저지, 이라크 민주화 등의 표면적 이유들과 전혀 상관없이 이라크에 매장된 석유 자원을 노리는 부당한 전쟁이다.
2. 이라크 전쟁은 한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한국인과 전혀 상관없는 이민족의 비극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포함한 수백만에 이르는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걸린 인류애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3. 임박한 이라크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 부시 행정부와 영국 블레어 정권이 주도하는 전쟁 책동을 고발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반전 평화 캠페인을 이라크 현지에서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4. 한국 이라크 반전 평화팀으로써 임박한 이라크 전쟁을 저지하는 반전 평화 활동뿐만 아니라 최근 북핵 문제 등으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에서도 부당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2003.03.04 "" "한국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활동기조와 활동계획")
* 3월 11일 암만에서 전하는 두번째 소식
"다들 아시다시피, 출발할 때는 이미 IPT 비자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휴먼쉴드 비자가 가능하다는 걸 믿고 나왔는데, 스페인 H.S의 대사관 점거 및 미국 스파이 문제 등으로 불가능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외국인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는 다 끊긴 것이죠.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언론사를 통한 비자를 받은 5명이 10일 저녁8시에 출발하려고 하는데, 그때 설치미술가 최병수 씨가 갑자기 위 출혈이 생겨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팀은 회의 끝에 11일 오전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같이 출발할 수 있을지, 놔두고 다른 사람들만 갈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는 하루가 생활의 단위가 아니라 1분 1초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런 긴장감을 가지고 어떻게 평생을 살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주세요. 아까 말씀드렸던 최병수 씨는 위출혈 상태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그림 “Savage of night"를 해방광장에 걸기 위해 병원에서 링겔을 빼버리고 나와 버리셨습니다..ㅠ.ㅠ 뭐라 설명이 안되는군요.
(2003. 03. 11 "두번째 소식 - 팀 일부가 바그다드로 갑니다.")
* '이제 외국인 안 주기로 했잖아, 왜 자꾸 연락하는 거야. 안된다구 그래'
'그래도 닥터 하사미, 이 코리안 사람들은 이라크 못 가면 우릴 자꾸 괴롭힐 거에요. 제발 이라크 들어가게 해주세요, 예?ㅠ.ㅠ'
야전 사령부 같기도 하고 옛날 상해 임시정부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회의를 막 진행하고 있다가, 바그다드에서 전화 한 통을 받으면 급히 사안이 바뀌어서 처음부터 논의를 다시 해야 하는 긴박함이 흐르는, 여긴 참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어쩌면 일생 다시는 경험해보지 못할 것 같은.
방금 두 번째 팀(5명)이 떠났습니다. 관광비자를 통해서 가게 된 박기범, 성혜란, 이해종, 정재원, 그리고 기자 한 분이 포함되었네요. 미국은 개전을 17일로 잡고 있지만, 영국이 잘 협조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요. 1팀을 보낼 때보단 좀더 신나게, 숙소 앞길에 바그다드로 가는 차를 세워놓고 ‘반전평화 파이팅!’ 기분 좋게 외치고 떠나보냅니다. 그토록 밟고 싶어했던 땅으로 다시 들어가는 분들의 표정을 보내 제 마음도 푸근해지네요.
어제 오전 비자 문제로 대사관에 갔다가 저녁에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했더니 빨랑 오라고 하더군요. 급히 달려갔더니 담당자 아저씨는 안 계시고(하두 제가 찾아오니까 여기 직원들이 다 알아봅니다-.-), 망연히 앉아 사람을 기다리는데 왠일인지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던 중 최병수 씨가 그린 ‘Nest of Savage'라는 그림을 무대 삼아서 춤을 추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이 위출혈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농담 비슷하게 한 말이 있었거든요. ‘그 그림말이죠. 6미터 8.4미터면 무대로는 충분하거든요? 그냥 그림만 걸어놓으면 너무 정적인데요, 그 위에서 짧은 공연, 그야말로 퍼포먼스를 하면 어떨까요. 땅을 치고, 그림 속 아이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미사일 밭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아픈 춤을 추는 모습 말이죠.
(2003. 3. 16 "세번째 소식 - 통곡의 비자")
22일 유은하 회원님이 보내주신 이라크 상황입니다.
여섯 번째 편지- 전쟁 중에라도 할 일은 있습니다
3월 19일
개전 시간을 몇 시간 앞둔 19일 오후 팔레스틴 앞 삼거리에 나갔을 때입니다. 두 개의 슬로건이 담긴 피켓을 만들고, 한 이라크 여인의 모습 담긴-거기에는 “Do you willing to kill her" 큰 사진을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우리를 따라다니는 구두닦이 소년들과 암만 휴먼쉴즈 사무실에 있다가 우리랑 비자를 신청했으나 나오지 않아 급기야는 관광비자로 들어온 Philip Latasa 아저씨를 호텔 앞에서 만나, 놀라움도 잠시, 같이 피켓팅을 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여인 사진을 다른 이라크 소년에게 주고, 저는 ”We are with you"라고 적은 조잡한^^;; 종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틴 앞을 드문드문 오가는 기자들, 그리고 피난가는 바그다드 시민들을 마주대하며, 또 눈물이 나려 했습니다.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지금은 이것밖에 없어요. 우리들한텐 힘이 없네요.’
알 파나르 호텔로 돌아온 직후 길거리에선 바그다드 시민들의 거리 시위와 구호 소리가 계속 들리고, 거리엔 경찰이 깔리고,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은데도, CPT 6명을 비롯한 12명의 사람들은 아동 병원과 정수 시설 사이에 Tent를 치러 가겠다고 합니다. 길거리에서 앉아 회의가 계속되고, 마지막 만찬^^;;을 잠시 휴먼쉴드 사이트에서 방독면 가지러 나온 상현이와 한상진 선생님과 먹고, 상현이를 다시 사이트로 떠나보냈습니다.(말 참 되게 안 듣는군요. 한국에 돌아가면 두고두고 구박해야겠습니다.)
텐트 치러 저도 같이 가겠다고 짐들을 챙겨 내려왔는데, ‘은하야 상황 봐서 며칠만 머물 수 있으니까 짐 조금만 가져오렴’ 해서 Emergency kit과 침낭, 작은 배낭만 들고 나왔습니다. 막 떠나려 하는데 헐레벌떡 와자드 알 하시미가 와서 말렸나 봅니다. “오늘은 너무 늦어고 위함하니 내일 아침에 가라”고요. 이런, 내일은 더 위험하잖아..하는 수없이 텐트 필 짐들은 Andallus 지하실에 옮겨 놓았고 아침 9시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약간 웃음이 나더군요. 휴먼쉴드보다 IPT가 더 골치 아프겠다^^;;
우리가 가는 정수 시설은 91년 걸프전 때 폭격 당했던 곳이라 하더군요. 거기가 파괴되면 근처 아동병원이나 공장이 전혀 돌아갈 수 없어서 수개월 전부터 CPT에서 계속 방문해 왔습니다. “Water is Life"라는 슬로건을 걸고, ”이곳을 폭격하면 범죄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병원과 정수장에 걸어놓고, 개전 이후의 한 활동 거점으로 삼는 거지요.
그쪽으로 가는 것을 가지고도 몇 가지 논란이 있긴 했습니다. 가서 우리가 휴먼쉴드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하지만 다른 점은, 정부가 배치한 곳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 찾아 낸 곳이고, 주민들과 계속 관계성을 발전시켜왔고, 정수 시설의 중요성을 알림과 동시에 아동병원일도 함께 도울 수 있는, 즉 시설 안에 머물러 있는 데 그치는 휴먼쉴드가 아니라는 게 마음에 듭니다. 제발 내일 폭격이 조금 늦어져서 그곳에 갈 수 있어야 할텐데요...전 IPT 멤버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텐트 치러 가는 사람들에게 ‘곧 다시 만날 거야, 잘 지내렴’하며 인사해 줍니다^^아웅 졸려..
첫 번째 폭격, 그 이후
3월 20일 새벽, 첫 번째 바그다드 공습이 있었습니다. 새벽 4시쯤 짐들을 반공호로 내려놓았는데, 그리고 한상진 선생님 방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30분쯤 누웠을까 우웅- 비해이 날아가는 소리와 폭음, 건물이 흔들리는 느낌에 깨었습니다. 이제 시작하나보다 깨었는데 하늘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얼른 창가로 나갔더니 하늘 곳곳에서 번쩍번쩍, 여기저기 폭음, 땅에서의 응사 소리, 폭음은 점점 가까워지고 자동차들은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이 더 슬프게 들리고, 길거리 개들도 어디론가 도망칩니다.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조금은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하 1층에 있는 반공호에 한두 가족이 피신해 있고 또 한 가족에 1층 커피숍에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 에킬, 어머니 보르지리아. 3살짜리 말하데와 1살 세이렌 두 딸이 같이 있었죠. 애들은 낯을 좀 가리고 아무리 부모나 내가 안정시키려해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잠깐 반공호에 가서 누웠을 때도 건물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잠을 잤습니다. 이렇게 자고 있는데 전화 받으려고 한 번 깨고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잠깐 반공호에 누웠을 때도 건물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잠을 잤습니다.
한상진 선생님이 깨우기에, 텐트 치는 데 같이 가겠다고는 했지만, 내심 거리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심, 후아저씨의 명령 “개전되면 길거리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는 등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가기로 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여기 있는 목적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니까요.
주님의 장막, 정수장 옆 텐트
20일 오전 11시에 정수장에 도착, 좀 작은 텐트(여자용)와 큰 텐트(남자용)를 쳤습니다. Peggy 할머니와 Betty 할머니, Martin 아저씨(연세는 60이나 되시지만, 참 즐거운 분이므로 아저씨로 불러주기로 했습니다^^) Shane, Cliff 할아버지 Charlly 할아버지 와 저, 7명입니다 텐트를 다 치고 나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편 107편을 마틴 아저씨가 읽고 출애굽기 13장을 페기 할머니가, 이사야 65장을 쉐인이 읽고, 말씀을 통해 생각한 점들을 이야기하고 돌아가면서 기도했습니다. 특히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나눌 때에는 목이 메었습니다.
두 번째 폭격
저녁 9시, 어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비행기들이 하늘 곳곳에 나타났습니다. 아직 바그다드 외곽인 것 같고 대형 미사일은 아닌 것 같고, 전투기에서 아래로 쏘는 것은 흰 빛이고, 아래에서 비행기를 향해 쏘는 것은 붉은 색으로 나타납니다. 사방에서 불빛을 보니, 참...그래도 농담하며, 먹을 것 먹어가면서 편안하게 있는 마틴 아저씨를 보니 마음이 좀 낫습니다. 민간인 피해는 안 났으면 좋겠는데,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열심히 병원을 뒤져봐야지요.
바그다드 분위기
폭격 이후의 바그다드 분위기를 묻는 전화가 수없이 온다고 한상진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제가 정수장으로 가 있는 게 넘 다행인 듯^^ 거리가 텅 빈 느낌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피난가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혹은 바그다드는 평양과 비슷해서, 이곳을 떠나면 사회적 생명이 끊어지기 때문에 전쟁이 나고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폭격은 주로 밤에 이뤄지기 때문에(비행기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거겠죠. 미군 쪽에선 유도장치가 있으니까 밤이어도 상관 없고, 땅에서야 비행기 맞추기 어렵고-.-) 낮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거리에 드문 드문 연 가게들이 있지만, 음식 값은 10배까지 뛰었다고 하고, 팔레스틴 호텔 식당도 문을 닫았고, IPT가 머무는 알 파나르 호텔 식당만 문을 열었군요. 다들 이리로 밥 먹으로 옵니다. 그런데 오늘 CNN이 팔레스틴에서 나가면 여기도 안전하지 않다는군요.-.-
첫 번째 폭격이 지나간 20일, 정수장에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준 방(원래 휴먼쉴드를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 같은)에 들어가 TV를 잠시 켰습니다. 폭격 장면이 나오고 뭐라뭐라 아랍어라 떠드는데 뭔진 잘 모르겠지만, 해골로 만든 자유의 여신상도 보이고, 미군이 움직이는 장면과 이라크 군인들의 대열 등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웃기기도 하고 긴장도 되는 것이 우리나라 현철 비슷한^^ 국민가수처럼 보이는 사람이 노래를 하는데, 화면은 후아저씨^^ 및 이라크 군인들,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군요. 가수가 나올 때는 옆에 울긋불긋한 꽃과 하트 모양이 흐르고~(뭐라 묘사가 잘 안되는 군요) 아무튼 그런 텔레비전 며칠만 보고 있으면 후세인에 대해 완전히 세뇌가 될 것 같더군요.(그만큼 멋있게 찍었다는 거죠)
우리가 하는 일들
폭격이 지나고 난 아침이 어떤 기분인지 아시나요. 여전히 푸른 하늘, 여전한 새 소리, 수영장 같은 정수 시설, 휴먼쉴드를 위해 만들어 놓은 깨끗한 침대가 있는 방...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들에게 꽃을 전해 주는 소년..모든 게 이상스럽게 평화스럽고 조용합니다. 아이러니지요. 7명 중 3명(페기, 베티 할머니랑 찰리 할아버지)는 고아원에 가고, 나머지 4은 근처 마을을 산책하면서 다리까지 같습니다. 마틴이 가져 온 ‘평화의 물(세계 곳곳에서 가져 온 물을 섞은)’을 티그리스 강 다리 중간에 가서 뿌리고(외국인이 거리에 나오면 곧 경찰이 튀어 오지만 IPT임을 증명하는 편지를 보여주고, 우리가 강 건너 폭격지점까지 가려는 것이 아니라 다리 중간까지만 가겠다는 것을 말해 주고 통과를 받습니다. 다리 위로 지나다니는 한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우리가 온 목적들을 이야기해주고..하면 제 생각에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아무도 우리를 적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거죠. 특히 민간인들은 말에요. 미군이 공격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의 손님이다..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틴 아저씨는 미국 대학생들과 어린 아이들이 써서 준 편지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모든 미국인이 정부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이 나라를 공격하고 있는 것, 정말 미안하다’라고 설명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 이 때죠.
두 번째 폭격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조용한 이 도시, 길거리 곳곳에 경찰과 군인들이 모래진지마다 몇 명 있긴 하지만 많은 이들은 바그다드 외곽에 배치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이 도시를 지키려는 이라크의 입장이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텅 빈 느낌의 도시를 초토화시켜서 뭘 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전쟁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수 없지만 이라크 쪽의 반격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때때로 전쟁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기 때문에 잠을 편하게 잘 수가 없습니다. 때마침 기도시간을 알리는 스피커 소리, 상현이는 잘 나왔을지 걱정입니다. 언제 이곳도 폭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래도 졸린 건 졸린 겁니다. 9시 30분 폭격이 거의 멈춘 듯 계속됩니다. 꽤 가까운 곳에서 보일 때는 비행기가 내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둘씩 짝을 지어 3시간씩 불침번을 서기로 하고 텐트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하나님 혹시 저를 데려가시거든 순식간에 데려가주세요. 너무 오래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그렇게 중얼거립니다.
여기에선 ‘앗살라무 알라이쿰’ 하며 오른 손으로 가슴에 손을 댑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선전선동하는 정부, 너무나 순박한 사람들, 독재, 모든 것이 북한을 자꾸 떠올리게 합니다. 폭격이 시작되면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와서 일기를 쓰고 녹음을 합니다. 전쟁의 증인이 되는 건 중요하니까요.
휴먼쉴드 구출 작전
20일 오전이 되어도 상현이가 안 나왔다는 것을 안 한 선생님이 정수장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는군요. 저랑 같이 상현이를 찾아가 데려오기로 하고 휴먼쉴드 사무실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랑 주소를 가지고 북부 바그다드 발전소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부 발전소가 한두개가 아니라는군요..ㅠ.ㅠ 택시를 타고 한 곳으로 갔는데, 거기가 아니고, 전화도 안 받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어쩌나 싶어 발을 동동 굴렀는데, 그곳 한 매니저가 나오시더니 한참을 전화 이곳저곳 해보시더니, ‘거기 혹시 코리안 있습니까’ 하더니, 여기가 맞다고 하면서, 한 곳을 알려줍니다. 쌩쌩 달려 찾아갔더니, 발전소는 아니었고, 한 Red French Wine이라는 변전소였답니다.^^ 아무튼 행정을 엉망으로 해놓은 휴먼쉴드에 화는 나고, 그곳에 있는 기무라 신부님을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상현이를 찾아봤더니, 옷이랑 책 한두 개는 있는데 애는 없더군요.@.@ 어디갔나 싶어서 주변을 뒤지는데, 좀 이상한 게 가방이 없는 거게요. ‘옳지, 빠져나갔구나’ 싶어서, 거기서 상현이를 기다리는 걸 사양하고 다시 저는 정수장으로 선생님은 팔레스틴으로 갔습니다(알고 보니 운전기사와 비밀경찰에게 돈을 좀 주고 빠져나왔더군요^^;;) 후유...
텅 빈 병원
21일 오후에는 몬수르 병원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전날 폭격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지요. 37명 민간인 피해가 났다는데, 병원이 너무 어려워서 집이나 개인병원으로 갔을 거라고 하더군요. 헉..이건 잘 몰랐던 건데, 아동병원에 있던 아이들도 개전이 되기 전에 다 가정에서 데려갔고, 정말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안되는 아기 2명만 병원에 있더군요. 경제 제재 조치로 병원에 약이 없고, 치료 기구도 부족하고 의사도 별로 없는 상황인데다, 걸프 전 때는 병원도 폭격을 당한 터라 아무도 병원이 더 위험하다고 여기는가 봅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가족과 함께 있으려는 거지요. 병원 매니저로부터 이런 설명들을 들은 팀원들은 참으로 암담해지고, 베티 할머니는 ‘도대체 우리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거지’ 하면서 우시더군요. 열화우라늄 탄인가 뭔가 때문에 기형아가 나오고, 암이 계속 발생해서 지난 2월에만 이 병원에서 70명의 아이들이 암 때문에 죽어 나갔다는데,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 슬펐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폭격은 한번에 사람들을 죽이지만, 경제 재제는 서서히 사람들을 죽이는구나” 이게 뭐냐..싶습니다.
Apil 의사 아줌마랑 Zahed 아랍어 잘하는 아줌마는 계속 병원들을 돌아다니면서 민간인 피해상황을 돌아보고, 의료지원 가능성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저희도 병원 측에 언제든지 우리들이 필요하면 말해달라. 우리는 준비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닫힌 한국대사관
이쪽에선 국제전화도 할 수 없고, 인터넷도 되는지 안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제는 한상진 선생님과 저, 상현이 우리나라 대사관에 찾아갔습니다. 문은 닫혀 있고 이라크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기가 막혔습니다. 한국대사관에 한국인들이 들어갈 수 없다면 도대체 뭐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전화만 하고 나오겠다고 하니까, 한명씩만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한 선생님이 들어가 보더니 ‘모든 문을 잠가 놓았다’고 하더군요. 한국이 이곳에 파병을 준비 중이라던데, 저희들과 한국군이 마주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 번째 폭격
어제 밤 8시부터 세 번째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는 게 이제 좀 공포스럽더군요.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스타워즈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그러나 우리에게 미사일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폭음과 불빛 뿐, 그것이 사람들과 잘 연결되지는 않는, 아하 이것이로구나. 실제로 눈 앞에 보고 있는데도 이런데, 미디어로만 보면 얼마나 더 감이 떨어질까. 직접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것을 보지 못하면, 이 전쟁이 단순히 무기 대 무기의 대결 혹은 건물만 파괴하는 것으로 여겨지겠구나. 이렇게 지내다보면, 이 도시에 있다뿐이지, 모든 게 ‘강 건너 불구경’이 되겠구나. 참으로 무력감을 느낍니다. 찾아가보고 싶지만, 폭격 중에는 이동할 수 없고, 낮 동안엔 폭격 장소로 택시조차 이동하지 않습니다. 거리로 혼자 나가거나 폭격 장소로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체포나 추방을 자초하는 일입니다.(오늘 CNN이 추방당합니다. 조성수 뉴스위크 사진기자도 쫓겨다니고 있고, 상현이도 호텔 건물에서 폭격 장면을 사진 찍다가 들켜서 더 이상 호텔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무력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더 철저하게 느낄랍니다.
9시쯤부터 2-3시간씩 불침번을 서기로 했습니다. 어제는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먹고(텐트로 가져나온 것은 몇 조각 빵과 땅콩버터, 당근과 과일 몇 개, 건포도 등입니다. 8시부터 마틴 아저씨로부터 응급처치 교육을 받고 있는데 세 번째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틀 전보다 훨씬 심한, 폭음과 불빛은 점점 가까워지고, 공격 시간도 띄엄띄엄 밤새 계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밖에서 하염없이 구경을 하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다시 모여보자 해서 7명이 휴먼쉴드 용 숙소에 모여서 함께 찬양하고 노래를 했습니다(CPT가 가져 온 찬양집에서 곡을 누가 먼저 제안하면 함께 부르고, 마틴 아저씨가 가져 온 노래집(가사랑 코드가 적힌)에서 또 선택해서 부르고...요한 웨슬레가 선교를 가던 중에 만난, 폭풍 속 배 위에서도 전혀 흔들림없이 찬양하던 퀘이커 교도들을 제 눈 앞에 보는 듯했습니다(마틴 아저씨는 퀘이커입니다)
22일 유은하 회원님이 클럽에 전해주신 긴박한 이라크 상황입니다.
** 3월 19일 밤 11시에 클럽에 전해오신 소식입니다 **
"방금 제 방 전면의 유리창을 테이프를 얼기설기 붙였습니다. 창 앞 베란다가 있고, 바로 티그리스 강이 보인다고 좋아했는데, 강 건너 편에 폭격 예상시설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은 바그다드에 왔을 때부터 아파트 창에 웬 넓은 테이프들을 붙여놓았나 싶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모든 건물 창들에 테이프들이 붙기 시작하더니, 엊그제부터는 쇼윈도들에도 보호용 쇠창살 같은 것들을 다 설치하더군요(모양은 좀 예쁩니다^^;;) 오늘 과일을 사기 위해 시장에 갔다 왔는데, 바그다드 시내에 여기 저기 모래진지들이 생겼더군요. 폭격 이후의 시가전을 대비하는 것이겠죠. 미군이 바그다드를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미사일이?) 1분에 3천발이라는 소문이 흉흉하게 들립니다. 이런 중에 창문에 테이프를 좀 붙인다고 충격이 좀 덜해지나 싶은데(제가 무슨 폭탄 같은 걸 봤겠습니까. 영화에서나 본 것들로 상상을 좀 해보는 거죠. 강 건너에 폭탄이 떨어지면, 여기까지 충격이 어느 정도나 미칠까... 정도죠 뭐) 충격 때문이 아니라, 어차피 창은 깨지는데, 그 파편이 확 튀어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거라네요. 이런..제 방은 작은데다가, 창 바로 앞에 침대가 있는데, 쩝..테입을 좀 꼼꼼하게 붙이고 커튼 잘 닫고 자야겠습니다."
"IPT 분들도 내일부터는 전시 체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오늘은 밤을 새워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하고 계시네요. 이 아름다운 거리,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알라딘의 요술램프, 날라다니는 양탄자 등의 조형물들이 거리 곳곳에 있습니다. 책에서만 보던 문명의 발상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바벨론 시가 아직도 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출발했던 갈대아 우르도 있는,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은 이 나라가 24시간 후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갑갑해집니다."
"어제 저녁부터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맑았던 바그다드의 하늘이 구름으로 어두워집니다. 밤새 덜컹거리는 창 때문에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이것이 좋은 징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래는 3월 말이나 4월 초쯤 모래 바람이 시작되어 50일쯤 분다고 했는데, 그래서 한국팀끼리는 “3월까지만 잘 버티면 전쟁이 안 날수도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렇게 빨리, “제 시간에!!” 불어주기 시작하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침 회의 때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했습니다. 한 사람이 제안한 것은 이라크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가서 함께 피크닉을 하고 축제를 벌이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아직 당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사람들과 더 깊이 교제하자고 했습니다. 또 한 의견은 CPT가 준비해 온 것인데, Al Monsour 아동병원과 정수 시설 사이 공터에 평화 캠프를 치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환자도 돌보자는 것입니다."
"미국에게는 전쟁 반대와 경제 제재 철폐를, 이라크 사람들을 향해서는 모두들 당신들을 떠나도 우리들은 끝까지 당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걸 구석에서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다리 위 같은 데서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IPT 멤버들의 동의를 얻어서 1시 반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때까지 각자 현수막과 각자 메시지가 적힌 종이들을 만들어 오기로 했죠. 우리가 정한 슬로건은
“Never again Sanctions, Never again War!"
"We are with You"로 정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기 상황은 미리 스케줄을 잡아 놓을 수가 없답니다. 와 있는 여러 평화 운동가들도, 휴먼 쉴드도, IPT도 상황을 보고, 그날그날의 스케줄을 잡아 갑니다. 하루 정도 전에 무슨 시위나 행사가 있으면 팔레스틴 호텔이나 알 파나르 호텔 등에 A4크기의 공지가 붙습니다. 그러면 함께 참여 하고 싶은 이들이 가는 형식입니다. 정말 중요한 사안일 경우에는 많이 몰려가기도 하고, 각자 흩어져서 시위하기도 하고. 국적도 다르고 생각이나 배경도 다르지만,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서 왔다는 한 가지에서는 일치하므로 함께 할 수 있는 거죠."
유은하 간사님은
고대 출신이시고, 기연 활동에 몸담으셨으며...
학생복음화 협의회 간사와 한국리더쉽 학교 간사로 활동을 해고
All Nations 경배와 찬양팀, 동안교회 청년회 회장, 동두천 다비타 공동체 등을 섬기신 분...
기독인 연합회 일을 많이 하셔서...
그리고
유은하 간사님은 아나뱁티스트와 연계하여....(메노나이트:재침례파의)
인간방패가 아닌...
이라크 평화 유지팀 IPT로 바그다드에 계셔.
자주... 심정이나, 사역 보고들이 싸이월드 은하간사님 클럽이나, 여러 클럽에 올라오는데...
개전된 상황에서
은하간사님이 하는 일은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온 세계가...
하나님이...
이라크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라크인들에게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그리고 이 전쟁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해.
하나님은 이라크 사람들을 버리지 않았으며,
거기 함께 계시다라는 것의 증인으로...
한겨례등... 여러 대중언론에 의해서도 다루어진 기사가 꽤 있고...
음...
싸이월드 들어와 보면... 아주 자세하게 알 수 있어.
참고로 말하자면...
은하간사님을 비롯한
인간방패 팀들이나, 평화 유지팀은...
자국으로 부터 버럼받고...
우리나라가 파병을 하면... 은하간사님은 적대국의 수도에서 적대국의 이로운 행동을 한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