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보기엔 그럭저럭 구색을 맞춘 듯한 약 이름. 약효군이나 주성분이 같으면 한두 글자만 요리조리 바꾼 듯 엇비슷한 약들도 나름대로 ‘이름’이 있다. 과자 음료수처럼 톡톡 튀는 것은 아닐지라도 의약품 개발자나 오너들이 ‘자식처럼’ 지은 이름들. 궁금해 하는 이가 별로 없어 그냥 묻혀버리기 쉬운 약 이름의 숨은 의미를 해부해 본다.
블록버스터 의약품들 중 ‘마지막’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명실상부 ‘히트’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이 있으니 바로 ‘Z’로 시작하는 약들이다.
Z의 성공은 잔탁(Zantac) 이후에 봇물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nti-acid와 Z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잔탁’은 ‘이보다 더 좋은 위장약은 없다’, 즉 가장 좋은 마지막 위장약이라는 뜻으로 Z를 따다 썼다.
이전까지 'Z'는 끝났다, 혹은 죽는다는 의미로 암울한 결말을 상징했지만, 이후로 Z의 전성시대를 견인하는 역사적인 이름으로 남았다.
국산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Zydena)’는 ‘연인의, 결혼의’를 뜻하는 라틴어 'Zygius'와 ‘해결사’라는 뜻의 'Denodo'를 합성한 말로 중년, 갱년기 부부의 성생활 해결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함께 자이데나의 주성분인 유데나필의 ‘데나’에 잘 된다는 뜻의 ‘잘’을 합쳐 ‘잘 되나, 자 이제 되나’를 유머러스하게 축약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밖에 고지혈증치료제 시장의 강자 ‘조코(Zocor)’, B형간염 치료제 ‘제픽스(Zefix)’, 비듬약 ‘니조랄(nizoral)’ 등에도 ‘Z’가 상징하는 역설적인 성공의 주문이 작용한 것일지 모른다.
딱딱한 효능효과, 재치있게 바꿔 살려
‘승리(Victory)’의 염원을 담은 약 이름들도 있다.
항혈전약 플라빅스(plavix)는 ‘혈전’을 뜻하는 라틴어 ‘plaque’와 승리를 뜻하는 ‘victory’가 만나 붙여진 이름이다. 혈전을 억제한 의약품 시장에서 승자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
플라빅스 제네릭인 크리빅스(clivix)는 오리지널을 자연스럽게 연상하도록 다리를 놓으면서 ‘클리닉’이라는 치료적 단어를 붙여 제네릭 경쟁의 ‘승리’를 점하고자 했다.
약효를 내세운 이름 중에는 금연의 효능을 확실히 쐐기 박은 ‘니코스탑’, 두통이여 잘 가라는 뜻의 ‘펜잘’, 비타민 B와 C 복합제를 살린 ‘비콤씨’, 혈관(vaso)을 깨끗하게 한다(clean)는 ‘바소크린액’ 등이 눈에 쏙 들어온다.
트렌드가 두드러지는 비만약 중에는 슬리머, 살사라진 같은 것들은 굳이 무엇에 쓰는 약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이름이 이색적이다.
승리-축제 등 긍정적 의미 즐겨 차용
대체로 오리지널이나 성분명을 따라가는 전문약 시장과 달리 일반의약품 시장은 작명의 폭이 넓은 편이다.
장수약 브랜드를 그대로 살려 낯설음을 줄이면서 차별화를 시도한 ‘라인 익스텐션’ 기법이 눈에 띈다.
훼스탈은 소화기능의 통쾌하고 시원한 이미지를 축제(Festival)과 연결시킨 오리지널 브랜드를 ‘훼스탈 포르테’로, 자양강장제 박카스는 ‘박카스D’, ‘박카스F’로, 피로회복제 아로나민은 ‘아로나민 골드’로 브랜드 파워의 아성을 이어갔다.
필수 상비약 감기약도 재치있는 네이밍이 허용되는 영역이다. ‘콜콜코정’, ‘베이비콜콜시럽’, ‘코싹’ 같은 약들은 굳이 코감기약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제약사 관계자는 “네이밍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외주 업체의 도움을 받는 다른 업계와 달리 대부분 제약사는 스스로 제품 작명에 회사의 프라이드를 최대한 담아내려 한다”이라며 “인지 대상이 소비자보다는 의사 약사 등 전문가에게 치중된 제약 시장이 특성상 브랜드만 단독의 승리는 있을 수 없지만, 네이밍에는 항상 자식같은 애착이 따른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