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름 없이
큰절을 지나쳐 꼬불꼬불 더 높이 산을 탔다. 산수 경색이 점입가경이었다. 계곡을 가르고 저만치 줄달음쳐 가는 물줄기, 멍청한 바위들, 은은한 녹향, 삽상한 송운, 조잘대는 새소리, 천공에 떠 있는 흰 구름…. 첩첩산중 깊숙이 사람의 종적이 끊어졌는데 빠끔히 뚫린 오솔길 따라 얼마를 걸었을까. 산모롱이를 돌아드니 기와집 서너 채가 옆옆이 늘어앉아 졸고 있었다. 간간이 이어지는 풍경 소리는 저 홀로 풍정에 겨웠고 자그마한 연못엔 사람도 풍경 소리도 모르는 척 하얀 연꽃이 피어 있었다.
보아하니 그 난야(蘭若)엔 여승들뿐인 듯했다. 나를 보자마자 하나같이 방문부터 닫아 버렸다.
이 나그네가 기웃거리게 된 것은 주련의 시구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 시를 베끼고 싶었지만 필기구가 없었다.
필기구를 빌릴까 하였으나 사람이라곤 먼눈에 스님 한 분이 보였을 뿐이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조용조용 다가갔더니 스님은 저쪽으로 휘적휘적 가버렸다. 나는 연못 가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하얀 연꽃이 하도 아름다워 얼마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방금 백련(白蓮)의 화신인 듯 유난히도 얼굴이 흰 한 여승이 다소곳한 자태로 내 곁을 막 스치고 있었다. 스무 살은 넘었을까, 아리따운 자태에 정신이 아뜩했다. 젖은 듯한 크고 깊은 눈은 어쩐지 슬픈 과거를 가진 여자 같아 보였고, 조금 야윈 얼굴은 청순가련했다. 얼굴과는 달리 승복에 갇힌 몸매는 터질 듯 흐벅졌고 확 드러난 허연 목덜미께로 한낮의 햇볕이 어떤 열정처럼 마구 부서지고 있었다.
시가 하도 아름다워 베끼려 하나 필기구가 없다는 내 말에 스님은 뜻밖에도 이렇게 응수했다.
“연꽃을 보시나요?”
꽃의 본분사(本分事)를 물었던 걸까. 처염상정(處染常淨), 독탈자재(獨脫自在)를 물었던 걸까. 나는 어쩐지 말이 나오지 않아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西風動林野
一聲寒雁唳長天
이 시를 봉사 무장 떠먹듯이 해독해 보다가 좀더 말을 걸어 볼 요량으로 이 시를 우리말로 번역해 주기를 스님에게 청해 보았다. 수줍은 듯 망설이더니 이윽고 나직이 읊어 주었다. 천만 뜻밖에도, 감정을 넣어서 리드미컬하게 읊는 것이 아닌가.
산사 고요한 밤 앉아서 말없고
적적하고 요요하니 본디 저절로 그러해
어인 일일까 서풍은 수풀을 흔들고
한 소리 겨울 기러기 장천에 우는구나
이 시는,『금강경』의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 나오는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應無所住 而生其心)라는 구절에 부친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사의 선시인 줄을 내 주제에 어찌 알았겠나.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는 이 말을 듣고 선종의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처음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이 시의 뜻이라든가 출처 같은 것을 섣불리 묻다간 무식만 드러내 보일 것 같아 다만, 스님의 낭송을 듣자니 너무 애틋해진다고만 말했다. 내 말에 스님은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새치름해 보이던 첫 인상과는 달리 스님의 본새는 차차 오랜 친구 같아졌다. “한 번 더요.” “한 번 더요.” 이렇게 나는 스님을 자꾸 졸랐다. 몇 번을 읊었을까? 나중엔 둘이서 노래를 부르듯 같이 읊었다. 하나는 원시를 하나는 번역시를 읊기도 했다. 문득 마주 보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런 웃음이 우스워 킬킬거리기도 했지만 잠긴 듯, 수수로운 듯 스님의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헤어질 때 스님은 돌아앉아 잠시 뭔가를 적는가 싶더니, 내게 자그마하게 접은 쪽지 하나를 쥐어 주었다. 꼭 집에 가서 펴 봐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 쪽지가 불학에 판무식이었던 내겐 말하자면 일지경(一紙經)이었던 셈이다.
홍자성(洪自誠)의 글이 적혀 있었다.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雁渡寒潭 雁去而潭不留影
바람이 성긴 대에 불매 바람이 지나가면 대에 소리가 머무르지 않고
기러기가 겨울 못을 건너매 기러기 가고 나면 못에는 그림자가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시도 있었다.
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雪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和子由澠池懷舊」抄
인생 도처에 무엇과 같아야 하는 줄 아는가
마땅히 날아다니는 기러기 눈 밟듯 해야 하느니
눈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지만
기러기 날고 나면 어찌 다시 동서를 알겠나 ※
설니홍조(雪泥鴻爪)란 말이 생겨난 시로 잘 알려진, 소동파의「면지에서의 옛일을 생각하며 자유에게 답한다」(和子由澠池懷舊)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야보도천 선사는 『금강경』의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라는 구절에 부쳐 서풍이 수풀을 흔들고 겨울 기러기 장천에 운다고 은유하였을 뿐 말을 다하지 않았지만 소동파와 홍자성은 수다스레 다 말해 버렸다.
여기에 부쳐 이 사람도 한마디 거들어 볼거나.
수풀에 부는 바람 불고 나면 그만이고
가지에 재잘대는 새떼도 날고 나면 그만인데
왜 바람만도 못합니까 왜 새만도 못합니까
선득하던 그 순간 무딘 날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아려요
불고 나면 그만인 자리
날고 나면 그만인 자리
그만인 그 자리가 너무 아득해
세월이 가도 이 가슴이 이리 아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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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
雪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老僧已死成新塔
壞壁無由見舊題
往日崎嶇還記否
路長人困騫驢嘶⎯⎯「和子由澠池懷舊」
인생 도처에 무엇과 같아야 하는 줄 아는가
마땅히 날아다니는 기러기 눈 밟듯 해야 하느니
눈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지만
기러기 날고 나면 어찌 다시 동서를 알겠나
늙은 중은 이미 죽어 새 사리탑을 이루었고
허물어진 벽은 옛 글씨가 보이지 않네
기구하던 지난날을 아직 기억하는가
길은 멀어 사람은 지치고 절룩거리는 나귀는 자꾸 울었었지
가우 원년(1056) 3월, 스물한 살 蘇軾은 동생 蘇轍과 함께 과거를 보려고 아버지(蘇洵)를 따라 수도 開封으로 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면지(澠池:지금의 하남성 면지)의 서쪽 二陵에 이르러 타고 가던 말이 죽어 버려 거기서 면지까지는 나귀를 타고 갔다. 면지의 어느 절에서 하룻밤 묵었다. 그때 길은 멀어 사람은 지치고 절룩거리는 나귀는 자꾸 울었다. 5년 뒤 가우 6년(1061) 겨울, 蘇軾은 鳳翔府僉判으로 부임하기 위해 면지를 거쳐 鳳翔(지금의 섬서성 봉상)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이때 동생 蘇轍로부터 부쳐 온「면지의 일을 생각하며 자첨 형께 보냅니다」(懷澠池寄子瞻兄)라는 시를 받았다. 이 시에 화답하여 보낸 시가「면지에서의 옛일을 생각하며 子由에게 답한다」(和子由澠池懷舊)라는 시이다. 그때 환대해 주던 스님은 죽어 사리탑만 남았고, 낡은 벽은 허물어져 써 놓았던 글씨는 흔적 없었다. 때마침 눈이 와서 봉상으로 가는 스물여섯 살 蘇軾은 쓸쓸한 정회를 주체할 수 없었으리라. 설니홍조(雪泥鴻爪)는 이 시에서 생겨난 말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