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참고말씀: 욥1:5; 잠14:9; 사53:3-6; 마21:9; 24:38,39; 27:22,23; 눅1:31; 요6:14,15; 14:16-18; 고후13:5; 계3:20
읽을말씀: 마21:9; 마1:21,23,24
주제말씀: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까?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많은 인파가 나와서 예수님을 맞이하고 또 환호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
그런데 불과 5일 뒤에 이들 중 상당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폭도들로 돌변하고 맙니다.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 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으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마27:22,23)
어떻게 된 것입니까?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만 생각했습니까? 정치적 군주, 즉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킬 새로운 유대인의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요6:14,15) 하지만 예수님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시지 않자 결국 그분을 죽음의 자리에까지 내몰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슨 생각을 한 번 해보게 됩니까? ‘만일 그들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짜 이유를 알았어도 그렇게 했을까?’라는 점입니다.
혹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된 이유들을 알지 못한 채, 제멋대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움직이려 하며, 그러다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시지 않으면 밀어내고 멀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라도 우리의 이런 모습들을 회개하고 예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기를 원하고, 또 이 땅이 오신 진짜 이유들을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첫째,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잘 만나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며, 좋은 집과 좋은 환경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참고로, 예수는 히브리어 ‘여호수아’(뜻: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의 헬라어 형이며, 이를 아람어로 바꾼 것이 바로 ‘예수아’입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무엇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까? 온갖 고난과 모욕,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3-6)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런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노아 때처럼 온통 다른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 않습니까?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8,39)
원컨대 우리의 구원 문제에 관심 갖기를 원하고,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또 죄 문제에 대수롭게 넘기지 말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잠14:9) /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1:5)
둘째,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24)
또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24) 즉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지금도 우리 가운데에 내주하시며,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또한 누구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님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온통 다른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교제나 사귐 등에는 무관심한 채, 온통 단순히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만들기에만 여념이 없으며, 신입생이나 새 가족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우리끼리만 잘 지내는데 열심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이제라도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는지, 또 우리를 위해 무엇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셨는지를 깨닫고, 예수님께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한 주간이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과의 사귐에 진심인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