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기후변화 등이 원이
장기간 증세, 심해지면 치료 받아야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몸의 현상과 감정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의상 방금 식사했다며 사양하는 상황에서도 배고픔을 느끼고 꼬르륵거리는 창자의 외침과 입안에 번지는 침의 애절함을 모두가 한번 쯤은 거억할 것이다. 미소나 말은 거짓이 있을 수 있지만 몸은 결코 자신에게 거짓이 없는 법이다.
우리 몸에서 일상 겪는 미미한 하품이나 딸꾹질 조차 그냥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얼굴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경련은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흔히 눈언저리나 볼 등의 안면에서 씰룩거림이 있어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대하게 된다. 좀 피로해서 나타나려니 하여 며칠을 두고 지켜보기만 했는데 좀처럼 낫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한 경우에는 얼굴 전면에 경련이 발하여 타인과의 면전대화가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특히 장년이나 노년의 어르신들 중에는 안면경련이 오랜 기간 발병하여 고통을 받는 분들이 많다. 증상이 너무 심해서 사회생활이 두렵고 대인기피증까지 발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모두가 안면경련의 증상인 것이다.
안면경련이란 얼굴에 분포된 근육이나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떨리는 현상이다. 삼차신경과 안면신경 등으로 널리 알려진 안면의 신경들은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고 감수성에 예민한 신경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신경들은 보고 계통이 잘 정비된 군대조직처럼 상하의 정보전달이 잘 이루어져야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몸이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부의 급격한 기후변화에 노출되면 이상이 발생한다. 마치 군율이 엉망이어서 명령계통이 서지 않는 병영조직처럼 곳곳에서 사고 징후가 나타난다.
안면신경의 경우 뇌에서의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신경의 말초에서 이상동작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에 나타나는 증후가 주로 감각이상이나 마비 또는 경련으로 나타난다. 만일 안면의 신경들이 마비가 나타나면 구안와사가 되고, 과민한 반응이 나타나면 안면의 통증인 삼차신경통이나 안면의 근육의 떨림으로 나타나서 안면경련이 된다.
흔히들 안면경련은 병이 아니라고 가볍게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피로해져서 며칠 실룩거리다 사라진다면 별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길게 경련이 있거나 경련의 강도가 점점 증가하거나 발생빈도가 많아진다면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경우에는 중풍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하여 '풍기(風氣)' 라고 불리는 증후군의 하나로 보았다. 실제 안면경련환자 중에는 구안와사나 중풍과 같은 마비질환으로 발전하는 예가 많다.
현대의 병명에서 중풍은 뇌혈관 질환만을 한정하기 때문에 이해의 폭이 협소해진다. 그러나 과거 조상들은 중풍이란 광범위한 질환과 증상을 포함하는 거시적인 관점의 병명이었다. 특히 중풍의 풍 (風) 이란 바람을 의미하는 글자로 현대의 바이러스 질환이나 계절과 날씨에 장기적인 노출로 인한 손상을 포괄하는 개념의 병리적인 용어였다. 따라서 특정부위의 정상적인 기능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병리적인 근원을 풍으로 보고 이런 특징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면 중풍 (中風) 이라 하였던 것이다.
즉 현대의 뇌혈관질환 뿐만 아니라 피킨스병이나 치매 등에 따른 행동능력저하와 경련, 마비 등이 모두 중풍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안면경련의 경우도 중풍을 다스리듯이 치료해야 한다.
한방에서는 침요법이 있다. 안면부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경락과 기혈의 순환을 안정적으로 해주는 침 (鍼) 치료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약침 (藥鍼) 을 응용하여 기존의 침구치료에 한약의 약리적인 효과까지 직접적으로 자침하여 극소 조직의 흥분을 가라 앉히는 작용에 응용한다. 한편 한약으로는 이기거풍 (理氣祛風) 시키는 약을 위주로 하여 천마 (天麻), 백감잠 등의 약물이 배합하여 처방된다.
날씨가 추워지는 환절기에는 특히 보온에 신경을 써야한다. 한방이론에 한즉기결 (寒卽氣結) 이라 했다. 추운 기운은 만물을 움츠리게 하고 뭉치게 한다. 소통할 수 없는 것이다. 순환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냉기를 멀리하는 것이 질병을 예방하는 지혜다. 몸을 사랑하면 아픔이 보이고, 관심을 기울이면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몸에 대한 관심으로 이번 겨울을 건강하게 보낼 일이다.
- 안 수기 / 한방병원 원장 -
(강헌 선집 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