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팀은 명문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100% 긍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모름지기 명문이라 함은 강한 면모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저력이란 것이다. 올 시즌 K리그에서도 명문의 변치 않는 저력을 확인시켜 준 팀이 있다. 바로 플레이오프 진출 팀 중 가장 예상치 못했던 주인공 포항이다.
포항은 2006 시즌을 앞두고 골키퍼 김병지와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수비수로 평가받던 산토스 등 지난 수년간 팀 수비를 책임지던 경험 많은 선수들이 빠져나갔다. 이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팀에 데려온 것은 팬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B급 선수였다.
두 시즌 간 부천에서 뛰었지만 큰 인상은 심어주지 못했던 고기구, 주전과 백업을 오가던 전남의 수비수 이창원. 다른 팀 입장에선 비중이 클 외국인 선수도 프론티니, 엔리끼 등 브라질 내에서도 그리 돋보이지 않은 이들로 영입됐다.
전력 하락이 점쳐진 것은 당연했고 대부분이 예상하는 우승 후보에 포항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즌 개막 직전 최태욱이 J리그에서 돌아왔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전기리그를 거의 버리다시피 했고, 유스 시스템 출신의 어린 선수들이 베스트 11의 절반 이상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포항은 전후기리그 차곡 차곡 승점을 쌓으며 2004년 이후 2시즌 만에 플레이오프에 복귀했다. 성남, 수원 그리고 플레이오프 진출을 마지막 희망을 잡고 있는 서울과 울산 등이 쏟아 부은 투자와 비교할 수 없는 액수로 동등한 효과를 거두는 실로 경제적인 성과를 올린 셈이다.
올 시즌 포항의 성공을 분석하는 데 이어 가장 먼저 언급해야 될 인물은 세르히오 파리아스 감독이다. 그 동안 K리그에서 실종됐던 공격 축구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신선한 충격을 준 그는 K리그에서 맞은 두번째 해에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홈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철학을 후기리그 홈 전승으로 실천하며 주목을 받았다.
파리아스 감독이 이끄는 올 시즌의 포항은 무형의 틀에서 나오는 유형의 힘이 인상적이다. 포항의 포메이션 시스템은 3-4-3이나 3-5-2와 같은 숫자로 설명하기 힘들다. 평소 센터백을 보던 선수가 윙백에 서는가 하면 때론 허리에 중앙 미드필더 성향의 선수만을 배치하기도 한다. 숫자나 특정 성향 선수를 배치하는 데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는 브라질 특유의 자유로운 연상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인 축구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팀이 보유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올 시즌 포항의 선수 기용을 분석해 보면 15명 안팎의 주요 선수에 집중되는 타 팀과 달리 20명이 훌쩍 넘는 선수가 주전급으로 활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덕분에 정성룡, 신화용, 신광훈, 황재원, 황진성 등이 팀의 주연급으로 떠올랐다. 팀 전력에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두 선수 이동국과 김기동이 시즌 절반 이상을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상황에 따라 팀 전술과 선수 기용에 적발한 변화를 주며 기복 없는 경기력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
K리그 최초의 브라질 출신 감독인 파리아스는 외국인 감독의 무덤에서 91년 대우 로얄즈를 이끌었던 비츠케이(헝가리)에 이어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하는 이방인을 꿈꾸고 있다. 그간 비일비재했던 외국인 감독과 국내 코치 진의 갈등도 파리아스 감독에게는 거리가 먼 얘기다. 포항이 골을 터트린 후 아이들처럼 얼싸안으며 모이는 코칭스탭의 모습은 참 보기 좋은 장면이다. 그와 포항의 계약이 끝나는 2007년 이후의 진로야 어떻든 지금의 모습이 계속된다면 90년대 중반 모든 선수와 팬의 존경을 받았던 니폼니쉬 감독의 아우라를 넘는 외국인 감독이 K리그 역사에 남겨질 것으로 보인다.
그라운드 밖에서 포항의 이끄는 것이 파리아스 감독의 몫이라면 그라운드 안에서는 팀의 최고참 김기동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현역 선수 중 가장 오랜 시간 K리그에서 뛰고 있는 그의 팀 내 비중은 고기구, 오범석, 황진성, 황지수 등은 물론 이동국보다도 높다고 할 수 있다.
물 흐르는 듯한 경기 운영, 우리 나이 35살이라고 믿기 힘든 활동량, 그리고 때론 우아한 곡선으로 때론 날카로운 직선으로 상대 수비라인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패스까지. 시골 동네 형과 같은 선한 인상의 이 경험 많은 미드필더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자신의 축구인생 종막에서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김기동의 축구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모두 외국인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포항에서 프로 선수로서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 그가 본격적으로 축구에 눈을 뜬 것은 니폼니쉬라는 지도자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을 언급하는 데 있어 니포 감독의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2003년 포항으로 돌아와 이적 다음 해에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던 그는 체력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고 자신을 팀 전술의 중심에 세우는 파리아스 감독의 믿음으로 리그 우승을 향한 세번째 도전을 앞두고 있다.
주말 있었던 홈 경기에서 K리그 최고의 압박과 중원 장악을 자랑하는 수원의 미드필드 진을 휘젓는 그의 모습은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수원을 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동의어가 됐다. 후방의 살림꾼 황지수,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멀티 플레이어 오범석, 팔방미인 오승범, 박원재, 황진성 등 젊은 선수들을 독려해야 하는 그는 허리에서 풀어나가는 축구의 묘미를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줄 기세다. 부천에서, 포항에서 각각 한번씩 우승 직전에 좌절한 김기동 본인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천명했다.
90년대 말 이후의 포항 축구를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선수는 이동국이다. 지난 2년 사이 한국에서 가장 기구한 운명에 처했던 선수였던 그는 자칫 자신을 절망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던 무릎 십자인대 부상을 딛고 29일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스틸야드로 돌아왔다. 복귀전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지만 그의 이름이 울리는 것만으로도 스틸야드를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것이 포항의 아들인 축구 선수 이동국이 갖는 가치이며 상징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감안해 추측할 때 올 시즌은 이동국에게 있어 포항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모기업 포스코에 대한 의존에서 멀어지고 있는 팀이나, 경기가 떨어져 과거의 역동성을 잃은 도시의 분위기는 더 이상 한국 최고의 선수를 붙잡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시즌 초 이적을 놓고 큰 열병을 앓았던 선수 본인도 이제는 고향을 떠날 수 있다는 각오가 마음 한 켠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 결혼 이후 축구 선수가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사정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은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된 한국 사회에서 향후 프로 축구가 겪게 될 슬픈 운명을 보여주는 서막 같다.
하지만 이동국 입장에서는 이대로 떠나는 것은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98년 데뷔 이후 늘 포항의 얼굴로, 포항이 명문 클럽임을 보여주는 계승자 위치에 서 있었지만 단 한번도 정규리그 우승컵을 안겨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이번 플레이오프는 이동국에게 있어 월드컵 출전 좌절로 상처 입었던 자신을 위로하고 축구 선수 이동국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고향에 우승을 선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현재의 이동국이 풀 타임을 뛰며 90분 내내 상대 팀에 위협을 가하기란 힘들다. 차범근 감독의 말처럼 무리해서 이동국을 투입한다면 그것은 상대 팀에 도움을 주는 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파리아스 감독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포항은 이동국 없이도 계속 승승장구 했다. 누구도 이동국의 투입을 앞세워 파리아스 감독을 압박할 순 없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동국이라는 공격수가 갖는 무게감이다. 그라운드에는 고기구, 프론티니 등이 뛰겠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가 이동국이라면 상대 팀 선수와 감독은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긴장을 풀 수 없다. 현역 공격수 중 단 한번의 찬스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선수, 짧은 시간에도 자신이 갖춘 파괴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수가 누군이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3년 이후 무려 13년 만에 엠블럼 위에 4번째 별을 달 기회를 잡은 포항. 이제는 스틸야드를 메우는 이들이 제철소의 거친 노동자가 아닌 가족 단위의 팬으로 바뀌었지만 포항이 갖는 축구에 대한 시뻘건 용광로 같은 붉은 피는 달라진 것이 없다.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한국의 영원한 축구 도시에서 K리그를 대표하는 3명의 인물이 꾸는 우승의 꿈. 그 꿈의 실현에 플레이오프 일자가 다가올 수록 기대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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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감 않가는건.. 울산이 쏟아부은 투자라는거에... 울산은 이적만 시키고 정작 미들진영은...;; 이호선수마저 나갔을때도 영입은 없었죠...;;
그래도 선수들 연봉이나 사정으로보면 투자한거죵~~ 현선수단스쿼드로보면말이죵~~~~
포항 우승 가는거야~~~^^
꿈~꿈~꿈~꿈.......참 어감이...꿈이라니....왠지 현실은 안그렇다는 얘기 같잖수!! 이미 가시화된 목표인데.......
이동국 선수 이적안했음 하는데.. 진짜 올해도 이적하려 했으나 지역유지분들(?)의 반대로 실패했다고 하는데 진짜 우리나라 유일한 프렌차이즈 스타인데... 이적하면 안되...
이적하려고 했던것은...몰래 수원이랑 이적진행시키던 구단에게 배신감느껴서 그랬다고 그런거였다던데..지금 이관우 선수가 수원으로 이적한 것처럼 말이죠ㅎㅎ 하지만 안가줘서 너무 고마웠음 ㅜ
최고의 글입니다..
포항 너무 좋아 진짜
아 정말 내가 수원지지자가 아니었더라면,난 포항을 사랑했을수도
이동국 이번에 깔끔하게 포항 우승시키고 해외진출하자!!!
이동국 가지마.ㅠ
포항 별4개 다는거야~
동국씨 해외가서 발리슛 보여줘!
진짜...갈껀아니지??동국이형~!!!!
포항포항포항포항
동국이형 갈꺼면 해외로...
포항화이팅~~!수원전......이길꺼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