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천 / 최영애
일상의 무게가 버거워질 즘에는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카톨릭의 주요 성지 순례길이자 현대인들의 힐링 여행으로 각광받는 먼 곳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좋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독특한 길이면 족하다. 그중에 제주 올레길은 내게 주어진 조건에 알맞은 성지순례길 같다. 그곳은 나약하고 무력해지는 나를 움직이게 하고 완전한 자유를 얻게 한다.
우거진 숲길 올레 17코스에 들어선다. 낯선 풍경 앞에 서면 늘 설레게 된다. 인적 없는 길은 나뭇잎 사이를 뚫고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차지하고 있다. 청아한 새소리가 한라산의 기운을 온몸으로 전해준다. 벼랑 계곡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쉬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울창한 숲으로 몸을 가리고 있다. 변해가는 세상과는 동떨어져 억겁의 세월을 홀로 견뎌내고 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도 이런 곳이 있나 여기며 묵묵히 바라본다. 깎아지른 절벽과 단풍으로 물던 오래된 나무들이 고고한 장관을 이루고 판상절리, 주상절리의 기암이 더하니 세상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는 천혜의 비경이다. 오늘 선택한 이 길은 어떤 풍경을 펼쳐내어 감동을 줄까 마음을 졸이던 터다.
복잡한 인간사 근심을 없애준다는 '무수천無愁川'에 다가섰다. 얼마나 아름답고 한적하면 평생 이 이름을 달고 있을까.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라 하여 없을 무無, 물 수水가 붙여진 '무수천無水川'이란 또 다른 뜻의 이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근심을 없애준다는 이름에 마음이 더 다가간다. 비운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하지만 강렬하고 성스러운 기운이 깃든 기암괴석이 가득한 풍광 앞에 서니 온갖 시름이 사라지니 말이다. 눈과 마음이 온통 넋을 놓고 정신없이 빠져든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가 이다지도 큰 것이라면 이 무수천에서 영원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무수천 의미에 백 번도 더 고개를 끄덕이겠다.
비가 내릴 때만 잠깐 폭포를 만들기는 한다. 지하로 내려간 물은 다시 솟아 작은 소를 채운다. 청자 빛 물색은 저리도 푸르게 느껴질까. 영롱한 물빛을 드러내는 유리 같은 맑은 소들이 오묘함을 더한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저 물빛에 물들고 싶다. 물이 들면 내 삶도 좀 괜찮은 생으로 살아질까. 모든 것은 고통 후에 주어지는 것. 얼마나 깎아내는 모진 고통을 견뎌야 천상의 비경으로 설 수 있을까.
한라산 정상에 기원起源을 둔 계곡을 올려다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끝 가는 곳을 훑어본다. 마치 용이 승천하면서 지나간 듯 꿈틀거리는 용암들이 한라산을 헤집어 벼랑은 기이하고 험하다. 물살이 깎아놓았을까. 바람이 불어와 다듬어 놓았을까. 해골바위, 병풍바위, 대문 형체, 동물 형상의 거대한 바위들이 단풍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용암이 뿜어대는 동안 세차게 저항했던 우레 같은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깊은 협곡 사이에 드는 햇빛조차 대자연이 빚어놓은 형상 앞에 신비감을 더한다. 쳐다보고 내려다볼수록 경탄과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신은 전시장을 만들어 놓았다. 아름다운 풍경화로, 구상과 추상으로 미술전을 펼쳐냈다. 마주하고도 믿어지지 않는 기이하게 빚어놓은 형상들. 말도 생각도 멈춘다. 일순간에 천년의 바람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온다. 발끝까지 청량감이 밀려든다.
미술사학자 해밀턴은 '화산은 인류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난폭한 폭행'이라 했다. 신은 불덩이를 하늘에 뿜어 지옥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간에게 자연의 위용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호통 친다. 지금도 무례한 인간을 각성시키려는 신의 분노가 지구 곳곳에서 폭발하고 있다.
무수천. 풍경을 마주하니 떠날 때 두고 온 곳곳의 시간들이 보인다. 살아온 삶이 너무 요란했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만큼 가혹했다. 이별의 상처도 묻어두니 아프다. 해야 할 속말도 아직까지 가슴에 품은 채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이것들이 삭힐까. 얼마를 더 살아내면 무수천처럼 고요하고 담담해 질까. 내가 원하던 삶이라기보다 주어진 것에 책임을 다하며 살아내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선가 위로의 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먼저 떠난 그리운 이의 다독임이 무수천 바람에 실려 온다. 혼자 살기 힘든 세상, 다 살아낸 후에는 소란스러우면 이곳으로 오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가슴 깊은 곳이 울컥 인다. 맑디맑은 모습으로 남은 생을 살라고 다독이는 바람이 다시 인다. 떠나오길 잘했다. 아직 포기해야 될 것이 많고 내려놓아야 할 것도 적지 않다. 잃어버린다고 여기면 고통스럽다. 고통스러워야 될 이유마저 버리면 한결 가벼워진다. 집 떠나는 건 멀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 곁으로 가까이 가는 길. 털어버리자. 가벼워지자.
마음이 경건해진다. 아픔도 그리움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라산 용암이 난폭하게 흘러내린 흔적도 남아있다. 다만 천년의 바람이 흐르면서 무수천 비경을 만들었다. 모질게 살아왔던 삶들도 그렇게 흘러 보내고 나면 조금은 고운 빛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한순간 천국을 보았다. 잠깐 꾼 꿈처럼. 무수천은 긴 세월 동안 치솟던 용암들이 울부짖었던 기억을 잊은 듯 고요하다. 누구든 살아있는 날까지 남은 길을 걸어야 한다. 영원히 머물고 싶은 무수천에서 발길을 돌린다.
제주올레의 상징인 파란색과 주황색 두 가닥 리본과 화살표가 끌어주는 방향으로 순례자처럼 걷는다. 마음을 채웠던 생각의 무게가 얼마였기에 이토록 무거웠을까. 털어내니 천근같은 발걸음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지난 길을 잘 걸어왔듯이 남은 날들도 걸어내고 싶다.
올레길 끝자락에 섰다. 석양에 물이든 하늘도 바다도 온통 붉은색으로 출렁인다. 바라보는 내 몸도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간다.
세속 풍랑에 흔들리는 날에는 다시 오고 싶다. 오늘 내가 마주 섰던 무수천 계곡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