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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핫이슈] 1905년 을사늑약 후에는 초대 통감으로서 조선 침탈의 주역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에서 살해한 뒤 감옥에 갇혔던 안중근 의사(1879.09.02.~1910.03.26.)의 마지막 글씨가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순국 직전 옥중에서 남겼던 이 글씨는, 100년 넘게 일본을 떠돌다 지난해 말에서야, 고국으로 돌아왔다.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에서
일본에 머물다 국내로 환수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는 1미터가 넘는 긴 종이 위에 거침없이 써 내려간 듯한 한자 8글자로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순국 직전 쓰인 작품이며,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당시 국제 정세를 직시한 통찰과 비분강개한 심정이 담겨 있다.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는 ‘국제법(만국공법)도 대포(무기)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재판에서 만국공법(당시 국제법)에 따른 정당한 ‘전쟁 포로’로 인정받아 재판받길 요구했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무시하고 단순 살인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이 글귀에는 강대국의 약육강식 논리와 명목상에 불과한 국제법의 한계를 간파한 안 의사의 서글픔과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씨 왼쪽 아래에는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인 安重根 書’라는 문구와 함께, 넷째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진 안 의사의 왼손 손바닥 도장(장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세로 1m 크기의 ‘만국공법불여대포’
이 유묵의 최초 소장자는 당시 뤼순 감옥의 형무소장이었던 구리하라 사다키치. 그는 안 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복해 사형 집행 연기를 요청하는 등 배려를 보였던 인물이다. 구리하라 이후 ‘평문광생 뇌협일인’이라 밝힌 인물 등을 거치며 일본 내에서 최소 세 차례 이상 소장자가 바뀐 채 보존되어 왔다.
국내 환수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의해 이뤄졌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현지 협력망을 통해 존재를 확인한 후 조사 및 협상을 진행하였고, 정부 지원을 통해 국내로 반입·환수되었다.
유묵의 역사적·예술적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유묵 뒷면에 하얼빈 의거부터 사형 집행까지의 경과, 표구 경위, 소장자 내력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 유묵의 진본성과 역사적 가치를 명확히 증명해 준다.
이 유묵의 서법(書法)적 완성도 또한 관계자들은 ‘최고의 경지’로 입을 모은다. 힘이 있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기개와 균형미를 갖추고 있어, 안중근 의사의 유묵 중에서도 서예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중앙홀에 자리한 안중근 의사의 좌상.
국가유산청은 8월 13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만국공법불여대포>에서 보여지는 안 의사의 서체는 행서(行書-해서와 초서의 중간 형태)로, 해서(楷書- 글씨를 흘려 쓰지 아니하고 정자로 바르게 쓰는 한자 글씨체)의 획을 약간 흘려 쓰는 한자 글씨체를 기본으로 하면서 해서와 초서(草書-필획을 가장 흘려 쓴 서체로, 획의 생략과 연결이 심한 글씨체)를 혼용한 형태이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내려간 여덟 글자는 안 의사 특유의 힘 있는 필세가 돋보인다.”라고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박정혜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 없던 특유의 힘 있는 필세는 안 의사의 숭고한 의연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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