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루카 1,32 참조).>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7,4-5ㄴ.12-14ㄱ.16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4,13.16-18.22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나탄 예언자가 전하는 다윗가문의 축복된 왕좌는 세상의 권력자로서도 호감을 가질 만 합니다.
그러나 다윗왕가는 과거가 되었고 다윗과 솔로몬이 누렸던 영화는 그의 왕가에 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왕가가 나뉘어졌고 북부 이스라엘이 멸망하는가 싶더니 남부 유다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나탄을 통한 다윗 왕가의 미래의 예언,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6)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늘 미래에 있었습니다.
다윗왕가인 요셉을 통해서 하느님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왕국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세상에서의 말하는 정치적인 것(요한 18,
36)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생각으로는 예수님은 다윗왕가의 후손이시지만 사실은 하느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서기 100년 중반에 이집트에서 저술되었다고 보는 16장 분량의
‘야고보원 복음’으로 알려져 있는 이 고대 문헌은 예수님의 유년시절,
마리아와 요셉의 가족에 대한 보충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만 정경에 포함되지는 못하고 외경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주요 관심사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복음서들이
충분하게 묘사되지 못한 부분을 보충하여 전해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따지고 보면 정경도 여러 정황과 연결시켜 분류했겠지만
정하는 과정에서도 서로의 이견과 함께 논란이 많았습니다.
복음서 자체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적은 신앙의 책이다 보니
역사적 객관성에서는 문제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믿어온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야고보 원복음서가
외경으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사복음서가 전해주는 못하는 부분을 보완 보충하는
여지가 있어 획일적인 원칙의 선 보다는 그 나름대로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원복음서에 따르면 대사제 즈카리야는 천사의 명에 따라
마리아에게 성숙한 여인의 표징을 위해 요셉을 배우자로 간택합니다.
요셉은 의인으로 다윗가문으로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하며
성가정의 가장으로 마리아와 예수를 돌보며 보호합니다.(마태 13,55)
요셉의 역할은 주인공이 아니고 영광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복음이나 야고보의 원복음에서 조차 그에 대한 설명은 많지가 않습니다.
또 그의 역할은 양 아버지로서 가장이며 마리아와 예수님의 보호자였습니다.
교회는 요셉의 일이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그를 종경하고 사랑해왔습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과 희망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요셉도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살았던 그의 삶이 있었기에
성가정에게 희망과 구원이 자라게 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브라함에게 펼쳐졌던 사막과 같은 아주 작고 가난과
어떻게 보면 눈에 뜨이지 않는 시시하고 평범한 삶이 있었습니다.
그는 만삭이 된 마리아와 함께 낯선 베틀레헴에서 뜨내기 신세가 되어야 했고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위해서 머나먼 이집트로 피신하여야 했습니다.
이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처럼 인내와 용기를 잃지 않았으며
성실하게 하느님의 뜻을 끝까지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 천상의 왕국을 펼치게 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교회에서 임종과 노동자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습니다.
성요셉은 오늘도 전 교회의 교우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