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새로운 야경명소 여수해양공원의 여수밤바다 종포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3월이 가고 4월이 시작된다. 가족단위, 연인단위, 교회기관별 단위의 상춘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수밤바다 새 야경명소로 종포가 각광을 받고 있다. 종포의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여수시의 새로운 야경명소 여수해양공원의 여수밤바다 종포를 찾는 이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장군도 앞바다의 넘실대는 파도와 거북선의 상판모형을 형상화 한 조형물을 해양공원에 설치하고 여기에 여수밤바다와 어우러지는 조명시설을 더했다. 설치 이후 기존에 조성돼 있던 ‘이순신 장군의 열두 자루 칼 조형물’과 조화를 이뤄 해양공원의 또 다른 야경명소가 됐다.
조형물은 ETFE(Ethylene Tetra Fluoro Ethylene) 재질로 만들어 완성시킴으로써 여수밤바다의 새로운 랜드 마크로 자리매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불꽃축제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란 재난으로 2년여에 걸쳐 축제개최를 중단하고 있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여수밤바다 불꽃축제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다.
여수밤바다의 낭만 불꽃축제가 이순신광장과 장군도 해상 일원에서 진행될 것이다. 낭만적인 밤바다를 배경으로 차별화된 불꽃과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필자도 한신@옥상에서 주민들과 함께 몇 번 감상했지만 타워크레인 불꽃, 동백꽃 모형 불꽃 등을 잊을 수 없는 불꽃축제였다는 것이다. 아카펠라와 LED 난타공연, 낭만 버스 킹으로 막을 열었다.
예술적인 퍼포먼스와 신캐릭터, 볼케이노, 꽃다발, 오로라, 분수, UFO, LOVE 등 다양한 모양의 불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타 악 퍼포먼스 팀이 펼친 타 쇼가 축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상했던 적이 있었다. 또한 컬러 레이저, 특수조명, 불새, 음악, 내레이션 등으로 불꽃쇼에 입체감을 더해 더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종포에는 하멜일행이 비밀리에 구입한 배를 탓 던 자리에 세운 하멜등대가 있다는 것이다. 13년 28일의 기록으로 유명한 하멜표류기의 주인공 하멜을 상징하는 등대와 하멜기념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에 건립한 하멜전시관(HAMEL MUSEUM)을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입구에는 풍차가 있고, 하멜동상과 함께 주변 화단에는 튤립이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하멜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전시되어 있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하멜이 조선에 거주하는 동안 체류기를 쓴 이유는 조선을 유럽에 알리기 위한 탐험을 기록한 게 아니라 체류하는 동안 급여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하멜이 1653년 네덜란드 상선을 타고 지금이 자카르타를 거쳐 일본 나사사키를 가는 길에 제주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제주에 표류하게 된다.
표류당시 65명 중 36명이 살아남았으며 그 중 한명이 헨드릭 하멜이었다. 1654년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가 1656년 강진의 전라병영으로 압송되어 7년간 생활하게 된다.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하여 1663년 살아남은 22명을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그리고 남원에 5명씩 분산하여 수용하게 된다. 여수로 온 네덜란드인 12명의 선원과 상인 중 한 명이 하멜이었으며, 여수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생활을 했다고 한다.
1664년 부임한 이도빈 수사는 인자하여 하멜 일행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었으며, 양모장사를 하여 탈출할 배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1666년 새로 부임한 수사 정영은 인자하지 못해 힘든 생활을 하다가 1666년 9월 4일 밤에 평상시처럼 주민들과 함께 지내다가 전라좌수영의 담을 넘어
약속해 두었던 부둣가에 도착해 식수 등을 준비하여 썰물이 시작될 때 군선 옆을 지나 남쪽 끝으로 항해를 하여 저녁 무렵 부산 끝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조선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나는 것이다. 하멜이 체류하는 동안의 고초를 기록하는 과정에 세상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멜일행이 타고 온 선박에 대한 연구와 조총, 총 30문의 대포, 망원경을 통한 과학기술과 항해술과 무역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관심이 없이 놓친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당시 유교와 성리학을 통치이데올로기로 대중국 사대에 매몰되어 있던 조선으로 서구열강의 식민현황과 국제정세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강제노역 및 잡역에만 동원한 일이다.
유럽제국의 구미 선진국들의 문명과 첨단과학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능동적 대응에 대한 전담기구가 없었다는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하멜 등대가 근처에 있으니 힐링 차원의 낭만을 만끽하며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