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휴식년으로 정하고
뭔가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것 같아서 생각중에
이렇게라도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되었습니다.
1997년
아버지께서 페암으로 돌아가시는 상을 당하고
그 상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사건이 있었던 이유는 저의 건강때문이였습니다.
그당시 저의 체중은 85키로에 육박했고 허리둘레는 37-8까지 나갔으니 한심한 인간이였지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느라 몇일을 뜬눈으로 보내고 피로한 몸으로 상을 치르는데
갑자기 저의 목덜미에 혈압이 상승하여 뜨거운 피가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이였는데 장례차로 이동중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지옥의 문에 와 있는 기분이 들어서 전 긴급히 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홍천아산병원으로 실려가서 응급으로 혈압저하제를 투여하고 몸을 거두고는 다시 아버지의 장지에 갔을때는
모든 장례절차가 끝난 때 였습니다.
그때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일을 끝까지 하지 못할 자괴감에 빠져있었습니다.
1999년
밀레니엄이니 새천년이니 21세기의 시작이니 그해 12월은 꽤나 시끄러운 년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 역시 새로운 새천년을 맞아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바로 건강관리 였습니다.
처음 시작한 운동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였습니다.
처음 접이식 자전거를 사서 출퇴근을 하고 어디 갈때는 접는 자전거를 접어서 차에 싫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던중 제 눈에 들어온 것이 산악자전거였습니다.
중고로 40만원의 거금을 들여 저의 애마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산악자전거는 우리나라 초창기때 였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멋진 익스트림 운동을 한다는 자부심에 더욱더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그때도 저의 운동하는 장소는 인천대공원 이였습니다.
매일 아침 인천대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관모산 성주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산악자전거의 고수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운동을 잘한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체중이 빠지니 건강미도 멋져 보였고 해서 산악자전거에 푹 빠져서 살았습니다.
2000년 280키로 산악랠리에 참가를 해서 무박3일의 산악코스를 완주하며 더욱더 자신감이 올랐습니다.
2002년
마라톤 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프마라톤대회를 신청해 놓고 인천대공원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혼자 달리는 것이니 가르처 주는 사람도 없고 무작정 뛰었습니다.
처음 1키로도 못가서 걸어야 했고 조금씩 거리를 늘려 인천대공원후문까지 뛸수가 있게 된 것이 기억에 있으니 참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그후 하프를 몇차레 완주를 하고 그해 년말에 철인클럽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 간 것이 지금의 인천클럽인 스포피아철인클럽이였습니다.
mtb를 가지고 나가 싸이클과 함께 태안까지 장거리라이딩을 했을때 싸이클에 뒤지기 싫은 나의 자존심에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지 점심식사할때 수저를 드니 손이 떨렸습니다.
보통 운동을 하고 식사를 하면 입맛이 무척 땡겼지만 그때는 먹는 것도 입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할 정도로 참 미련스럽게 힘든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듀애슬론대회를 몇차레 나가고는 철인클럽에서 나오게 되었고
그후 홀로 외로운 철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2004년
수영을 배웠습니다.
수영이 안되니 철인경기는 구경만하고 저는 구경꾼일 뿐이였습니다.
듀애슬론 몇개 나가는 것으로는 구미에 차지 않았습니다.
수영장에 가서 개인레쓴을 신청하고 난 철인경기에 나가야 하니 다른것은 필요 없으니 자유형만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 개인레쓴을 받은후 매일 수영장에 가서 살았습니다.
일과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수영장으로 향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습니다.
첫대회는 미사리에서 올림픽코스에 머리를 올렸습니다.
그때도 싸이클이 없어서 엠티비를 타고 슝슝~!!! 싸이클을 추월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와이프와 둘이 가서 철인경기를 하고 거기에서 엠티비함께 타던 지인도 만나 반갑게 인사나누고 한 기억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해 하프코스까지 완주를 했던것 같습니다.
2005년
봄부터 제주아이언맨대회를 준비했습니다.
홀로 준비하던 아이언맨대회는 많은 시행착오로 힘들게 제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8월 28일 제주서귀포 중문해수욕장....첫 킹코스
전 정말 죽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복통과 다리에는 경련 그래도 달려야 하는 스스로 얽매인 운명
가족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설음에 눈물흘리며 달렸습니다.
그당시 꼴인지점에서의 감동은 제가 살아가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홀로 철인킹코스를 준비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알게 되어 나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년 나르샤철인클럽 태동
철인운동을 홀로 준비하다 보니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로 인하여 멀리 돌아서 돌어서 온 느낌이 들어
저의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나르샤철인클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후 2006년, 2007년 3년동안 정말 열심히 운동한 것 같습니다.
많은 즐거운 일들과
사람과 사람과의 마찰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시절도 있었습니다.
모두 이야기 하기에는 넘 장황할 것 같아 생략하고
그 많은 일들로 인해 나르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나르샤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님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저의 삶속에는 나르샤 자체가 큰 틀을 잡고 있는 것은 거절할 수 없는 현실이며
저의 나르샤에 대한 열정은 어떻한 삶보다도 선순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2년동안의 휴식년
2008년 2009년은 딸아이가 고3이였고 일산에서 연수동까지 아이의 학교 등하교를 도와야만 했었습니다.
자의반 타의반 운동을 쉬었습니다.
다시 시작한 2010년
이상진고문님, 김종석부회장님, 그리고 전 싸코의진이 저 4명이 참석한 2010년 아이언맨대회의 추억이 새롭게 가슴에 파고 듬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던 제주대회였습니다.
함께 하신 분들이 멋졌던 것도 있었지만 2년의 휴식후 맞이하는 아이언맨대회여서 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1년 2012년 2013년
숨가뿌게 달려 왔단 생각이 듭니다.
보통 아이언맨코스는 1년에 1회완주하는 분들이 80% 넘는것 같습니다.
3년을 연속으로 년2회의 킹코스를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가정적으로 그리고 일적으로도.
2013년은 내몸에서 그만하자는 신호가 여기저기에서 왔습니다. 족저근막염, 자잘한 부상들, 그리고 마음의 흔들림(사고에대한 두려움)등이 왔지만 갑자기 커진 나르샤로써는 중요한 해란 것을 생각하고 올 2013년을 열심히 달렸던 것 같습니다.
전 누누히 시간날때마다 이야기 했습니다.
2014년은 휴식하겠다고.
계획에 있었고 그 계획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운영진들이 내게는 필요했습니다.
제게 휴식을 줄수 있는 든든한 운영진들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그 운영진들이 잘 꾸며진듯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봉사자로써의 운영진을 맞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나르샤~ 저에게는 무척이나 열정의 시간들을 보냈던 장소이였던 만큼 그리워지기도 하겠지만 서서히 멀어져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철인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멀지 않은 2014년 11월에 다시 복귀할 생각이지만
그때에 멋지게 복귀신고를 할수 있길 고대합니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2013.11.22
첫댓글 그동안의 삶의 과정속에 철인운동 입문해서 지금까지 오신길에
열정과 나르샤의 애착이 느껴집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한해 잘 쉬시고 복귀하시기를 기대하겄습니다.
저도 열정을 가지고 노력혀서 풀코스 제주대회 완주할 수 있도록
노력과 열정의 자세라는 가르침을 잊지 않도록 할께요!
내년 제주대회..기대한다~~!
그럼 제주대회는 나랑 동기냐...이런...젠장...ㅠㅠ
그려 옛날이그립구먼 나의사부.수고많이했다. 복귀하면은 멋진킹코스대회 함 같이가자.
싸부셨어요?...좀 꼬셔봐요...더 하자고~~!
회장님 내년에 저랑 같이 킹코스 뛰신다고 하고...
이추운 겨울을 더 춥게 만드시네요~^^
따로 만나야겠어요~ 다들...
나는?
힝~~~
이노무 주책이...
나 왜 이리 짠하지ㅡㅡ
화장 다 지워졌네요ㅠㅠ
이우진고문님!
휴식 잘 즐기다가 오세요~
잘 쉬는것도 약이지요^0^
알라뷰~♥
30대 중반으로 가니까 눈물샘이 막 터지지..ㅋㅋ...
중반 아닙니다~
^^
갑자기 밀려오는 책임감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고문님 정말 수고했습니다
잠시 쉬고 오세요
눈물이 왜 나지 ㅠㅠ
너두 40대 중반으로 가냐?ㅋㅋㅋ
전 회장님...수고 하셨어요...
이케 크게 만드신데에 초석이 되었다 봅니다...
내년에 더 알찬 날샤가 되도록..저도 열심히...ㅎㅎ
그동안 고생많으셨고요~
내년 11월에 뚱뚱보 고문님으로 오시면 아니되옵니다~~^^
가끔 가게 놀러가면 맛난거 사쥬세요~ㅎㅎ
왜케 슬프게 쓰셨어요...아 찡하네..암튼 몸도 맘도 잘쉬시길 바랍니다..
가슴이 찡합니다..정말고생많으셨습니다!
잠깐 쉬구오세요!!!함께꼭운동하고싶네요!
영원한 짱님 이십니다.!!
회복잘하시고 젊어지셔서 복귀하세요~
화이팅!!
끝이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ㅜㅜㅜㅜㅜㅜ
푹 쉬고 오세요!!!
멋지다! 힘든 결정이었겠지만 더욱더 풍성해질 당신의 인생 향로에 부러움과 그리고 찬사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몇해전이었지요. 나에게 갱년기(?)가 찾아왔을 때( 나의 자서전에 갱년기로 표현했기에...ㅎ) 나는 철인에 도전했습니다. 그 때 당신을 만났지요. 만약에 다시 제2의 갱년기가 찾아온다면 아마도 사하라 사막을 걷고 있겠지요.... 함께....ㅋ 알고는 있지요?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ㅎ 돌이켜 보면
인천클럽에서 나와서 나르샤를 만들고 또 미출홀 떨어져 나가고 그리고 독고다이 떨어저 나갔을때
전 정말 멘붕이 왔었지요. 그때 두형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게 태출형님과 상진형님이였습니다.
저에게는 형님이 없었기에 뒷빽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많이 기대였고 두 형님들이 힘을 주셨습니다.
그때가 아마는 나르샤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저의 강직한 성격으로 몇몇분들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밑걸음이 되어 지금의 나르샤가 탄생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담에 복귀할때는 더욱 살갑고 부드러운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ㅎㅎ
항상 팀 훈련 때 새벽에 집근처 오셔서 태워다 주신 게 생각나요. 뜻하신 대로 잘 다녀오세요. ^^. 사랑합니다.
쉼은 또다른 시작인듯 해요~~ 그간 라르샤에 리더로써 고생많으셨네요~~ 화이팅!!!
짧은 만남 아쉬워요 ㅠㅠ 나르샤 회원이 되면서 이상진 전 회장님.이우진현회장님.모두떠나가고 아쉽고 서운하고 등등
2014년 빡쎄게 운동해서. 2015년 제주대회 참석할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을께요 조금만 쉬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