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을 실현하는 NGO. 행복한가
나의 엄마는 요리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엄마의 유일한 친구는 싱크대라고 할 정도로 엄마는 싱크대에서 늘 살았다. 날마다 싱크대에서 수많은
음식들을 끝없이 만들어냈다. 엄마가 해 준 것 중에 으뜸은 역시 ‘김치만두’였다. 만두를 빚는 날이면 마치
잔칫날처럼 부쩍부쩍… 큰오빠, 작은 오빠 친구들이 들며 날며 마치 커피전문점의 드라이브쓰루 돌듯이
만두를 먹고 갔다. 엄마의 만두소는 약간 과장을 섞는다면 , 뒷동산의 산등성이만큼 정말 어마어마했다 ㅎㅎㅎ.
그 많은 만두소를 엄마와 나는 하염없이 빚었다. 정말 거의 하루 종일 만두만 빚어 댔다. 쭈그리고 앉아
만두를 빚다가 가끔 일어나 허리 한번 펴고 또다시 쭈그리고 앉아 만두를 빚고 또 허리 펴고,,, 그러다 보면
산등성이 만하던 만두소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지금 생각하면 끔찍할 만한 일이기도 하련만,,, 그때 나도
그 일을 재미나게 했다는 것이 참 놀랍다. 요리하기 좋아하는 엄마의 피가 내 속에 흐르는 듯 ㅋ.
나의 엄마는 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어떤 음식이든 참 맛깔나게 먹었다. 마치 아귀 입 벌리듯 한껏 입을 벌리고 가득히 음식을 넣어 와작와작
씹어 먹는 걸 좋아했다. 특히 밤늦게 돼지껍데기에 소주 한잔 마시는 것을 그리 좋아했다. 아,,, 콜라도 ㅋ. 아,,,
만두도 ㅋ. 그 덕분에 엄마는 허리둘레 44인치의 주인공으로 한동안 살았다. 휠체어 생활을 하면서 이가
튼튼하지 못할 때 그렇게나 좋아하는 마른오징어를 씹을 수가 없다고 울상이던 엄마의 모습이
내 가슴에 아프게 콕 박혀 있다.
나의 엄마는 멋 부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강렬하고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참 좋아했다. 마치 화려한 빛깔의 앵무새를 보는 듯 ㅎ. 빨간색 블
라우스에 초록색 플레어스커트, 비록 이미테이션이긴 하지만 길고 커다란 진주 목걸이를 치렁치렁 매달고
보무당당하게 걸어가는 엄마가 그때는 좀 창피하기도 했는데,,, 엄마는 알았으려나,,, 아마도
‘알았겠지,,,’ 싶다. 그때 ‘예쁘다! 멋있다!’고 할 걸,,, 걸,,, 걸,,, 걸,,, 참 아쉽다.
나의 엄마는 책임감이 강철만큼 엄청 강했다.
혼자이신 엄마의 엄마(내게는 외할머니), 그리고 무능한 아버지, 달랑달랑한 어린 자식 넷. 엄마가
책임져야 할 식구가 엄마 본인 빼고 여섯 명 ㅠ. 그 식구를 책임지기 위해 삯바느질, 뜨개질, 파 장사,
식당 찬모 등 가리지 않고 했다. 담임선생님께 드린다고 파를 머리 가득 이고 학교에 나타날 때면 정말
너무 창피하고 두렵기까지 했는데,,,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가난한 가정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엄마를 외면하고 싶었는데,,, 우리 엄마 아니라고,,,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딸인 나의 부끄러운
마음을 아마도 알지 않았을까,,, 알고도 남았을 텐데,,, 엄마에게는 창피함보다는 서운함보다는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더 중요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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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요즘은 어떻게 지내요?
천국에서도 돼지껍데기에 소주 한잔?
아님 빨간색 장미꽃 심어요?
어디서 얻어왔는지 철 대문에 빨간색 장미꽃을 심던 나의 엄마,
그 빨간색 장미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의 엄마,
엄마,
미안하고 죄송하고 사랑해요.
엄마,
천국에서는 엄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요.
자식 눈치 보지 말고,,,
가족 생각 말고,,,
by 이숙재 https://brunch.co.kr/@child-v/216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행복한가 이외의 공간에 무단 복제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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