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다 아는 해돋이·해넘이 명소에 싫증이 났다면? 관광객이 덜 몰리는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여행작가가 추천하는 해돋이·해넘이 명소로 가자
●양영훈 작가
프리랜서 여행작가. 한국여행작가협회장을 역임했다. <알프스 자동차 여행 66>을 비롯한 개인 저서 13권과 공저 30여권을 저술했다.
부산 송정포구에서 본 해돋이.
해돋이 강원 속초 영금정과 부산 송정포구
속초는 겨울 여행지다. 눈 덮인 설악산과 포효하는 동해바다가 겨울철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더군다나 해 뜨는 동해안이 아니던가. 최고의 해돋이 명소를 꼽으라면, 나는 무조건 속초등대 아래의 널찍한 갯바위에 올라앉은 영금정(靈琴亭)을 선택한다. 큰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거문고 켜는 듯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바로 옆에 자연산 생선회 맛이 일품인 동명항 횟집촌이 있고, 속초 시내도 지척이라 찾아가기가 쉽다.
윈드서핑 명소로 유명한 부산 해운대구의 송정해변. 해변북쪽에는 한쌍의 작은 등대가 밤새도록 깜박거리는 송정포구가 자리 잡았다. 송정해변을 에워싼 고층건물과 갯바위 틈에 간신히 들어앉은 송정포구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아담한 송정포구에서는 장엄하고도 화려한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다. 포구 위의 하늘이 붉게 물들고 아스라한 수평선이 들끓는가 싶더니, 어느새 불덩이 같은 해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이윽고 반달 모양으로 바뀌었다가 순간적으로 ‘오메가(Ω)’ 형상을 이룬 해가 망망한 바다 위로 불쑥 솟는다.
해넘이 경기 안산 누에섬과 전남 순천 와온포구
안산 단원구 선감동의 탄도에서 1.2㎞쯤 떨어진 누에섬. 썰물 때만 열리는 바닷길을 통해 섬 안으로 들어가면 높이 16.8m의 등대전망대에 올라설 수 있다. 탄도항, 화성 전곡항·제부도 등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전망이 좋다. 섬 앞쪽의 갯벌에는 풍력발전기 3기가 세워져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누에섬은 해 질 녘 풍경이 유달리 아름답다. 때로는 천지창조의 순간처럼 장엄하고, 때로는 가슴 저미도록 화려하다. 누에섬의 하늘과 바다, 갯벌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해넘이는 물때에 상관없이 감상할 수 있다.
전남 순천의 순천만 갈대밭도 해넘이를 구경하기 좋은 명소다. 겨울 해가 넘어갈 즈음, 갈대밭 사이를 가로지르는 산책로를 지나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독특한 광경을 만난다. 설핏 기울어진 햇살 아래 갈대밭은 온통 금빛으로 물들고, ‘S’자로 구불거리는 수로는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러나 올해는 AI(조류인플루엔자)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갈대밭 산책로가 일시 폐쇄됐다. 대신 다른 일몰 명소인 해룡면 상내리 와온포구는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 바로 앞 바다에 ‘솔섬’이 떠 있는 상내리 와온마을에선 차분한 해넘이를 볼 수 있다.
●채지형 작가
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한국여행작가협회 기획이사로, 사람냄새 나는 시장구경을 특히 좋아한다.
전남 신안 비금도에서 본 해넘이.
해돋이 전남 장흥 남포마을 소등섬
장흥은 문학의 고장이다. 가사 문학의 효시인 <관서별곡>을 지은 기봉 백광홍 선생부터 이청준·한승원·송기숙 등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들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고즈넉한 일출을 보며, 문학의 기운을 얻기 위해 찾은 곳이 장흥이었다. 득량만 바다를 품은 장흥은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섬을 안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청준 원작,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촬영지인 남포마을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마을은 돌아보는 데 30분도 안 걸릴 만큼 자그마하다. 앞바다에는 작은 섬 하나가 콕 박혀 있다. 소등섬이다. 썰물 때는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다. 긴긴 겨울밤을 보낸 후 맞이한 소등섬 해돋이. 해는 더없이 고운 빛깔로 서서히 올라왔다. 소등섬 앞 갯벌에 널브러진 작은 어선들이 고요 속에 떠오르는 태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은 어촌의 소박한 풍경에 마음이 따스해지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해넘이 전남 신안 비금도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을 닮았다는 비금도. 전남 신안에 뿌려진 수많은 섬 중 하나다. 비금도는 호남 최초로 천일염전을 시작했던 곳이다. 소금이 나는 섬이지만, 풍경은 달달하기 그지없다. 일몰 때가 되면 온통 붉은 하늘에 붉은 비단이 펼쳐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공연이 또 있을까.
잠시 숨이 멎는다. 색은 시시각각 변한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함께 앙상블(조화)을 이루는 비금도의 일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하트(◈) 모양의 하누넘해변을 만날 수 있다. 연인과 함께 가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 이유다.
낮에는 염전을 돌아보고 싱싱한 회로 배를 채운다. 이웃한 도초도와 서남문대교로 이어져 있어 한번에 두개의 섬을 여행하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박동식 작가
글과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길 원하는 작가다. 저서로는 <내 삶에 비겁하지 않기> <여행자의 편지> 등이 있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오름 ‘수월봉’에서 본 해넘이.
해돋이 경남 창녕 우포늪
우포늪에 가면 삶이 깊어진다. 1억4000만년이라는 나이 때문이다. 가늠하기조차 힘든 나이 앞에서 잠시 삶을 돌아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다. 늪은 물도 아니고 땅도 아니다. 느리기는 하지만 호수에서 서서히 땅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면적은 230만㎡(70만평)에 달한다.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철마다 철새들이 날아들기 때문에 거대한 생태 박물관으로 일컬어진다. 우포늪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물안개가 피어나는 일출 무렵이다. 대지를 붉고 노랗게 물들이며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새벽부터 물질을 하는 어부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포늪의 일출 명소는 목포제방 인근이다. 약 14㎞ 떨어진 우포늪생태관은 우포늪의 생태 환경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계절에 따라 식물채집, 철새탐방 등 다양한 체험도 가능하다.
해넘이 제주 수월봉
제주의 동쪽 끝에 성산일출봉이 있다면 서쪽 끝에는 수월봉이 있다. 오름의 일종인 수월봉은 일몰 명소다. 제주에서는 ‘녹고물오름’ 혹은 ‘노꼬물’이라고도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수월’과 ‘녹고’라는 남매가 병든 홀어머니를 위해 수월봉에 약초를 캐러 왔다가 안타깝게도 여동생 수월이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자 슬픔에 겨운 오빠가 17일 동안 울었다고 한다. 지금도 암벽 곳곳에서 맑은 약수가 흐르는데 사람들은 이 물이 녹고가 흘린 눈물이라고 해 ‘녹고물’이라고 부른다.
수월봉 정상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가 시선을 압도한다. 주변 몇몇 섬들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해 질 무렵이면 바다는 보랏빛으로 물든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날에는 황금빛 빛내림도 볼 수 있다. 수월봉에서 차귀도 포구까지 이어지는 엉알해안산책로는 바다와 화산재 지층 절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차귀도 해적잠수함’을 이용하면 아름다운 해저를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