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눈
김병연(金炳淵)
천황이 죽었나 인황이 죽었나
나무도 청산도 모두 상복을 입었네
내일 아침 해님이 와서 조문하면은
집집마다 처마 끝에 눈물방울 떨어지리
雪(설)
天皇崩乎人皇崩(천황붕호인황붕) 萬樹靑山皆被服(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명일약사양래조) 家家簷前淚滴滴(가가첨전누적적)
[어휘풀이]
-天皇(천황) : 태곳작 삼황오제(三皇五帝) 시기의 중국 전설 속의 임금. 천황은 복희(伏羲)씨. 지황은 신농(神農)씨 인황은 황제(皇帝)
-被服(피복) : 상복을 입다. 힌 눈을 상복을 입은 것으로 비유.
-簷前(첨전) : 처마 끝.
[역사이야기]
김병연(金炳淵:1807~1863)은 조선 헌종 때의 방랑시인이며 호는 난고(蘭膏)이다. 세상에는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집안은 선천(宣川) 부사였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멸족을 당했다. 노복 김성수의 구원으로 형 김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서 공부했다. 후일에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었으나 부친 김안근(金安根)은 화병으로 죽고 그 어머니는 자식들의 폐족으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에 응시하여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을 죄인으로 평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다. 그 뒤 할아버지의 내력을 그의 어머니에게 듣고서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의 집안이라는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 처자식을 남겨 둔 채 방랑의 길에 올랐다. 이때부터 그는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하여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전국을 떠돌았다. 서울과 충청도 경상도를 유랑한 후 충청도, 평안도, 전라도를 유랑했다.
김병연이 전라도 지역을 유랑하다 동복(同福:전남 화순군 동복면)에서 쓰러졌는데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회생시켰다. 그는 다시 지리산을 두루 유랑하다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으로 돌아와 1863년 5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치게 된다. 그의 둘째 아들 김익균이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하여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한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많은 한시를 남겼는데, 그의 시는 시대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으며 파격적 요소를 보여 주고 있다.
출처 : 한시와 함께하는 우리나라 역사 『노을빛 치마에 쓴 시』
지은이 : 고승주. 펴낸 곳 : 도서출판 책과 나무